<오로라 공주>의 동력이 최근 들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욕을 하든 어떻든 최소한 보는 재미는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특징이었는데, 요즘에 그 재미마저 사라지는 것이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이 작품은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병맛. 둘째, 롤러코스터. 셋째, 하품. 이렇게 세 시기다. 첫째 병맛 시기는 오로라네 집이 잘 살았던 무렵이다. 이때 오로라는 정말 공주처럼 보였다. 그럴 정도로 잘 살았는데, 너무 잘 살아서 황당했다.

 

뭔가 현실성이 거세된, 비현실적인 느낌이 극을 지배했다. 황당하게 잘 사는 집에 이상한 부모와 오빠 캐릭터들. 거기에 남자주인공인 황마마네 집에선 세 누나들이 밤마다 염불을 외는 기괴한 모습까지 선보여 정신병 드라마 같은 느낌을 줬다. 거대한 개를 끌고 다니며 개 점까지 본다는 설정도 황당함을 가중시켰다.

 

둘째, 롤러코스터. 초반에 설정이 너무 황당해서 거부감을 초래하고 몰입이 방해됐지만, 그 설정이 제시되는 시기만 지나면 해당 설정은 기정사실이 돼버리고 중요한 건 스토리 전개가 된다. <오로라 공주>는 기가 막히고 극단적인 스토리의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줬다.

 

 

기가 막힌다는 건 이런 거다. 오로라 둘째 오빠의 불륜녀 집에 오로라네의 네 여자가 쳐들어가 상대편의 여자들과 집단 맞짱을 떴는데, 그 여자들이 식당에서 우연히 또 만나 그 자리에서 맞짱을 또 떠서 119가 출동했다. 그런데 그렇게 맞짱을 뜬 두 집안의 어머니가 알고 보니 과거에 불륜 경쟁자였고, 한쪽 어머니는 자신의 양성애자 아들의 며느리로 과거 자기 딸과 맞짱을 떴던 상대편 집안 딸을 점찍는데, 그 상대편 딸은 자기 딸이 점찍은 남편감과 결혼을 약속한다. 기가 막히게 황당하다. 너무 황당하니까 이상하게 재밌다.

 

그 재미를 만들어내는 핵심 요인은 바로 속도다. <오로라 공주>는 눈을 못 뗄 정도로 빠른 전개를 보여줬다. 잠깐 불륜을 하는가 싶더니 바로 들통나 집안 대 집안의 난투극으로 돌입하고, 오로라 공주네가 황당하게 잘 사는가 싶더니 어떻게 된 일인지 ‘앗’ 하는 사이에 망해서 주인공은 미운 오리 신세가 됐는데,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재벌 매니저가 생긴다는 이야기가 쉴 틈 없이 전개됐다.

 

황당하고 현실성 없어보였던 오로라네 인물들이 망하자마자 갑자기 현실성 있고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로 변신하며 극에 훈훈함을 부여한 것도 재미졌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확확 변했다. 오로라가 황마마를 쫓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었고, 설설희가 오로라에게 잘 해주는 것도 재미있었다. 물론 오로라가 왜 황마마를 그렇게 이상하도록 쫓아다니는지, 냉담하던 황마마가 왜 오로라를 좋아하게 되는지, 그런 이유나 과정 따위는 제시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속도였고, 그 미친 듯한 속도가 재미를 만들어냈다.

 

 

셋째, 하품. 겹사돈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던 극이 어느 날 갑자기 오빠들이 사라져버린 후 완행열차가 됐다. 마냥 잘해주는 설설희. 집착하는 황마마. 방황하는 오로라. 이 구도로 질질 끌면서 하품이 날 지경이다.

 

극도 표류하기 시작했다. 겹사돈 설정이 사라진 후 누구와 누구를 엮어야 할지 작가가 고심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다하다 이젠 주변 인물이었던 피디와 분장사, 그리고 양성애 아들의 엄마와 황마마의 누나까지 사각(!)으로 엮으려는 조짐마저 보인다. 기존 설정을 바탕으로 질주하던 극이 서버리고, 새로운 설정을 모색하는 단계가 되자 김이 빠져버렸다.

 

캐릭터의 매력도 무너져간다. 계속 같은 톤으로 일관하는 설설희도 무미건조해지는데, 더 심각한 건 남녀 주인공의 추락이다. 설설희와 황마마 사이에 방황하는 오로라는 어장관리녀의 인상을 풍기고 있고, 설설희의 헌신적인 보살핌을 받으면서 황마마와 포옹하는 건 배신녀의 성격까지 느끼게 해서 비호감이 강해졌다. 남자주인공인 황마마는 마마보이보다 더 꼴 보기 싫다는 누나보이인데, 누나들이 눈에 불을 켜고 있는데도 무작정 오로라에게 시집오라고 강요하는 무책임성을 자랑하는 중이다.

 

이렇게 극이 무너질 거면 차라리 지탄 받았던 4중 겹사돈 설정이 더 나았다. 4중 겹사돈을 향해 달려갈 때는 비록 황당했지만 극에 생기가 있었다. 지금은 황당한 건 여전하지만 극에 생기가 사라져버렸다. 그 황당함도 초기의 황당함은 세 집안 사이에 합이 착착 맞아들어가는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중구난방으로 퍼져나가는(피디, 분장사, 미용사, 무차별이다) 황당함이어서 사람을 나른하게 만든다. 언제나 욕은 먹지만 시청률 면에서는 한국 최고인 임성한 작가다. 어떻게 이 상황을 돌파할지 궁금해진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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