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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강용석의 갈팡질팡 정치선전 행보는 어디까지

 

29일 방영된 <썰전>에서 강용석은 앞으로 박원순 저격수가 되겠다고 했다. 그가 과거에 안철수 저격수를 자임했던 건 지난 대선 전후에 안철수가 여권에 가장 위협적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향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권에서 박원순 흠집내기에 포문을 여는 시기다. 그러자 강용석도 타겟을 박원순으로 바꾸겠단다.

 

이렇게 보면 강용석의 동선이 여권의 정치적 이해관계, 스케줄과 맞아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다. 단순히 평소에 보수적 가치관을 갖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여권과 직접 공조하는 수준까지 이른 것으로 느껴진다. 이런 예능은 문제가 있다.

 

강용석은 한때 여권까지 비판해서 네티즌의 환호를 받았었다. ‘강용석을 다시 봤다’는 호평이 줄을 이었는데, 그때도 사실 결정적인 비판은 안 했었다. 최고 권력은 건드리지 않으면서, 비서관이니 고위 관료니 국회의원이니 하는 최고 권력 밑에 있는 사람들이 무능하고 부적격자들이라는 말만 했다. 이건 사실 여권 비판이라기보다, 집권자에게 보내는 자기 PR에 가까웠다. 현재 인물들이 무능해서 자꾸 사고가 터지니 나를 주목해달라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여권 비판으로 오인돼 강용석의 인기를 높인 것인데, 강용석이 사실은 그렇게 합리적 비판을 하는 이가 아니라 철저히 정략적 발언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여권과의 박원순 흠집내기 공조에서 느낄 수 있다.

 

시청자가 토론을 볼 때는, 출연자들이 당파적 입장에서 발언한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다. 그래서 출연자의 발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어느 정도 걸러서 듣는다. 반면에 예능에선 소탈하고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웃어가면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시청자는 무장해제된 상태로, 즉 정신적 ‘쉴드’가 해제된 상태에서 부지불식간에 상대의 메시지를 수신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강용석의 예능엔 문제가 있다.

 

강용석의 말들을 구체적으로 보면 이상한 구석이 많다. 강용석은 29일 방송에서 박원순에게 철학이 없는 것이 문제라고 했다. 철학도 없고 준비도 없이 갑자기 당선 돼서 아무 일도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시장으로서의 일을 할 의지도 비전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다.

 

이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것이 비판이 아닌 그저 막무가내 비하에 가깝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박원순은 아주 오랫동안 한국의 시민운동을 이끌어오면서, 최근엔 도시재생과 관련한 단체활동도 했었고, 대통령을 비롯한 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의 존재감을 가졌던 시민사회 지도자급 인물이다.

 

박원순을 싫어하거나 반대하는 건 상관이 없다. 박원순의 운동노선이나 가치관이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때는 ‘나는 박원순의 철학에 반대한다. 그와 나의 철학은 다르다’라고 말해야 한다. 하지만 강용석은 ‘박원순은 철학이 아예 없다’면서 막무가내로 폄하했다. 이것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준비 없이 갑자기 당선됐다는 말도 그렇다. 박원순은 한국에서 가장 큰 규모로 시민운동을 이끌었던 사람이고, 도시재생과 관련한 여러 연구 및 시찰을 했던 사람이다. 그렇게 해서 그가 정한 노선에 얼마든지 반대할 수는 있지만, 아예 준비가 없었다고 폄하하는 건 사실관계가 틀려도 너무 틀리다. 박원순이 옳고 강용석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관계에 오류가 있다는 말이다. 이 글은 박원순을 지지하는 내용이 아니다.

 

박원순에게 철학이 없다면서 강용석은 서울의 낡은 주택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전에 세운 낡은 주택 대책마저 박 시장이 못하게 한다고 했다. 이건 뉴타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강용석은 토목공사, 부동산 재개발 등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는 것만이 철학이라는 것일까? 그것도 철학의 일종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이 철학’은 아니다. 하지만 강용석은 그런 건설계획을 내놓지 않는 박원순에겐 아예 철학이 없다고 한다. 이런 건 비판이라기보다 인신공격 혹은 중상모략에 가깝다. 그저 예능에서 박원순의 이미지를 무의식중에 흠집 내는 것이다.

 

이건 박원순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것, 혹은 보수-진보 문제하고는 상관이 없는 일이다. 반대할 수도 있고, 자신의 가치관을 피력할 수도 있다. 그런 차원을 넘어서서 정략적 움직임이나 무조건적 폄하는 문제가 있고, 그것이 예능의 인간적 소탈함과 결합될 때 시청자에게 무의식적 영향을 미치는 것에 더 큰 문제가 있다.

 

 강용석은 지금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인다. 원래는 여권 정치인으로 입신하려던 인물이고 어쩌다 TV에 나오다보니 이것을 자기 PR을 위한 절호의 계기로 활용하게 됐다. 그런데 의외로 네티즌의 환호를 받다 보니, 이젠 여권을 향한 정략적 구애만이 아닌 네티즌도 바라봐야 하는 위치가 됐다. 그래서 결국 여권 당파성과 합리적 비판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어떨 때는 정략적인 말을 하고 어떨 때는 그렇지 않은 말도 하면서, 여권 권력층에 줄을 서야 할까 네티즌 스타의 길로 가야 할까,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어떤 쪽을 선택하든 궁극적 귀결은 정치적 이익의 극대화일 것이다. 강용석은 정치적 입신의 꿈을 아직 붙들고 있는 것 같다.

 

현재와 같은 상황에선 강용석의 방송스타 행보가 위태로워보인다. 본인 자신에게도 위태롭고, 그의 ‘소탈한 예능’을 봐야 하는 시청자에 미치는 영향도 위태롭다. 강용석은 선택을 해야 한다. 정치인의 한 길로 갈 것인가, 아니면 방송인 혹은 평론가의 길을 갈 것인가. 지금처럼 예능에서 어중간하게 정치선전을 하는 것은 모두에게 이롭지 않다. 방송이 심지어 강용석의 정치 입신을 위해 이용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하는데, 이렇게 가면 반드시 역풍이 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