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숨바꼭질>의 흥행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역대 스릴러 영화의 오프닝, 데일리, 최단기간 100만, 200만, 300만, 400만, 500만 기록을 세웠으며 역대 한국영화 중 최단기간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현재 스릴러 영화 역대 2위였던 <추격자>를 제쳤고, 1위인 <살인의 추억>을 제치는 것도 시간문제로 보인다. 500만 관객 돌파에 <추격자>가 73일, <살인의 추억>이 약 60일 걸린 데 비해, <숨바꼭질>은 불과 19일이었다.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것도 아닌 영화가 유력한 스타 하나 없이 일군 성과라서 더욱 놀랍다.

 

이 작품은 ‘우리 집에 괴한이 나타난다’는 설정을 기본 뼈대로 하고 있다. 그 괴한은 우리 집에 몰래 숨어들어, 내 가족을 해치고 집을 차지한다. 이런 설정에 한국인이 뜨겁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에선 관객들의 비명 소리가 터져나온다. 무섭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 영화를 두고 공포영화라고 하는 이도 많다. 하지만 이 작품은 공포영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귀신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귀신영화보다 더 무섭다. 왜 그럴까?

 

 

귀신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나온다. 지금은 사람이 제일 무서운 시대다. 자기 방에 하얀 소복을 입은 긴 머리의 귀신이 나타났을 때와, 시커먼 옷을 입은 사람이 흉기를 들고 나타났을 때, 어느 때가 더 무서울까? 요즘 사람들은 후자의 상황에서 더 무서움을 느낀다. 특히 여자일수록 더 그렇다.

 

흉악범죄가 점점 더 많아지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과거 1990년대 범죄와의 전쟁을 치를 때만 하더라도, 일반 국민이 범죄에 대해 갖는 정서는 공포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공포다. 밤거리 골목에서 마주치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 사람이 너무 무서워서 귀신을 무서워할 겨를이 없다.

 

최근 극장가에서 공포영화는 이렇다 할 흥행이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에 <추격자>를 비롯한 흉악범죄 이야기엔 관객이 뜨겁게 반응한다. 이쪽이 더 실질적인 공포를 자극하기 때문이고, <숨바꼭질>이 그 지점을 제대로 건드렸다.

 

사실 <숨바꼭질>은 말이 안 된다. 어떻게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 그 집 사람들을 죽이고 버젓이 살 수 있단 말인가? 한두 번 잠깐이면 몰라도 계속 그렇게 살긴 힘들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말이 안 되지만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사람에겐 냉정히 따져볼 여유가 없다. 바로 그래서 불안한 시대엔 괴담이 득세하기 마련이다. <숨바꼭질>은 이 시대의 불안을 제대로 찌른 괴담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의 불안이란 나의 안전, 내 가족의 안전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공포다. 삶의 안전에 대한 확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미약한 시대에 우린 살고 있다. 사회가 아무리 살벌해져도 그나마 내 안전을 지켜줄 최후의 보루가 집인데, 이 영화는 집마저도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 가족은 평화로운 중산층 가정이다. 한국에서 중산층의 보루는 아파트인데, 이 영화에선 그 아파트가 위협당한다. 무산자의 분노에 의한 유산자 가정의 붕괴. 자산을 뺏으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 아파트 공화국인 한국에서 유혈 낭자한 아파트 자산 쟁탈전은 관객을 긴장시킬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부동산 스릴러’이기도 하다.

 

 

한국엔 범죄에 대한 공포와 아파트로 상징되는 경제적 안전이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있는데, 이 영화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건드린다. 그 공포의 원인이 되는 자는 무산자인데, 우리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며 계층 분리가 심화될수록 무산자에 대한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리는 사람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느낌. 무산자들에 의한 묻지마 범죄 기사들을 접하면서 그런 느낌은 점점 더 강화되는데, 영화는 바로 그 무산자에 대한 이질감과 공포심을 그렸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버지라는 테마도 요즘 한국인이 좋아하는 주제다. <내 딸 서영이>를 비롯해 요즘엔 헌신적인 아버지가 인기를 끈다. 예능에서도 아버지가 인기다. 이것도 <숨바꼭질>이 성공할 만한 요소였다. 공포, 불안이 기승을 부릴수록 가족이 중요해지며, 가족을 보호하는 가장의 역할도 커지는 법이다.

 

이것으로 <숨바꼭질>이 어떻게 국민 스릴러로 등극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바로 지금/여기 한국인의 심정을 그렸기 때문이다. 귀신보다 무서운 사람, 무산자에 대한 이질감, 아파트를 둘러싼 혈투,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 불안에 떠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현실이 무서워지니까 무서운 영화가 득세한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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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동감입니다.
    때론 현실이 영화보다 무서웠지만,
    이제는 너무나 당연하게 현실이 더 무섭죠.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은 이미 고유 명사처럼 되었구요.

  2.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더 무섭고 긴장감있게 본 것 같아요 ㅎㅎ

  3. 한국 공포의 가장문제인 마지막 부분이 약한 것만 뻬고는 괜찬은 영화죠

  4. 우리 집은 항상 안전한 곳이었는데, 이제는 우리 집에도 믿을 수 없다니..ㅠ.ㅠ
    영화보다 무서운 현실이라는 것이 제일 무섭네요.
    지금부터라도 안전에 대해서 좀 더 경각심을 가져야겠어요.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5. 호로곤 2013.10.05 23:0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이 영화 재밌게 봤어요.
    하재근님의 평론도 공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