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중에선 <비밀>이 단연 돋보인다. 황정음은 이 작품으로 지금까지 질기게 따라다녔던 연기력 논란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호감도까지 대폭 상승하고 있다. 지성도 폐인을 양산하는 중이다. 잘 만들어진 극은 이렇게 배우들을 살린다.

 

데뷔한 이래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그렇게 강하지 않았던 이보영을 최고의 배우로 만든 건 <내 딸 서영이>였다. 그 작품에서 이보영이 맡은 여주인공 서영이는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여자였다. 그렇게 불쌍한 여자를 남자주인공이 감싸안아주는 설정은 멜로팬들을 설레게 한다. 체구가 가냘퍼서 불쌍한 느낌에 너무나 잘 어울린 이보영은 이 작품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

 

얼마 전엔 아이유가 <최고다 이순신>으로 서영이를 잇는 불쌍녀에 도전했다. 이 작품은 아이유 눈에 눈물이 언제 마르냐는 기사가 뜰 정도로 작심하고 아이유를 울렸다. 하지만 불쌍하다는 느낌보다 답답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는 게 패착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에선 최세영이 불쌍녀로 나온다. 여주인공이 기구한 입양아로 살며, 자기 자리를 대신 차지한 악녀에게 끊임없이 괴롭힘을 당한다는 매우 신파적인 설정이다. 거의 2~3회에 한 번 꼴로 황당하게 당하는 장면이 반복되자 짜증까지 날 지경이다. 그렇게 당해도 큰소리 한 번 안 치는 모습이 답답하기만 하다. 또 아무리 당해도 1~2회 만에 여주인공이 승자가 되며, 친모와 예비 시부의 스펙도 최고이기 때문에 그다지 불쌍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런 류의 신파적 설정에 익숙한 주부시청자들에게만 사랑받고 있다.

 

<불의 여신 정이>에선 문근영이 친부에게 버림받고 양부마저 잃은 기구한 불쌍녀로 나오고 있지만, 워낙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 불쌍하거나 애틋한 느낌이 별로 없다. <루비공주>의 여주인공은 못된 자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심지어 얼굴까지!) 뺏기는 불쌍녀이지만, 그 정서가 잘 전달이 안 된다. 최근 시작된 <상속자들>에선 박신혜가 불쌍녀로 등장했는데, 박신혜가 당하는 고통이 워낙 화사하게 그려져서 이 경우 역시 고통의 정서가 전달되지 않았다.

 

반면에 <비밀>은 정말 아프다. 불쌍한 여주인공을 보며 마음이 아파온 건 <내 딸 서영이> 이후 <비밀> 황정음이 처음이다. 극의 구성과 여주인공의 연기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정말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몰아닥치는 불행과 그 고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황정음이 시청자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이렇게 불쌍한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면 시청자의 찬사를 받게 된다. 스타가 낮은 자리에 서는 구도를 대중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편 지성은 고도의 흑기사 배역이다. <상속자들>의 이민호가 대놓고 흑기사라면, 지성은 괴롭히는 척하면서 도와주는 복잡한 흑기사다. 스토커인 척하면서 목숨 살려주고, 빚쟁이들 떼어내주고, 옷 사주고, 괴롭히는 놈 때려주고, 흑기사가 할 일은 다 하고 있다. 이젠 황정음의 누명까지 벗겨줄 태세다. 흑기사 배역만으로도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이유는 충분한데, 거기에 이렇게 이중성까지 있다면 더욱 인기요인이 커진다. 겉으론 싫어하는 것 같으면서 은근히 챙겨주는 남자 캐릭터를 여성들이 좋아하기 때문이다.

 

지성은 안 그런 것 같으면서 인간미까지 보여주는 캐릭터다. 툴툴대면서 황정음이 차려주는 소박한 밥을 못이기는 척 좋아라 퍼먹고, 된장국이 뜨거워서 괴로워하다가도 도로 뱉지 못하고 꾸역꾸역 삼키는 모습. 고등어 조림 백반을 먹으라니까 슬그머니 앉아서 퍼주는 밥을 받아먹는 모습. 이렇게 인간미를 보여주는 캐릭터는 배우를 살린다.

 

<내 딸 서영이>에서 남자주인공 이상윤은 이보영에게 돈을 갚으라면서 강짜를 부렸는데, 사실은 그게 다 이보영을 도와주는 행동이었다. <비밀>에서도 그런 구도가 똑같이 반복되고 있다. 이런 구도가 이상적으로 형상화되며 여주인공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질 때 시청자의 마음이 움직인다. <비밀> 초반이 바로 그런 드라마의 힘을 보여줬다. <상속자들>이 화사한 하이틴로맨스, <비밀>이 심금을 울리는 비극적 로맨스로 수목드라마 시장을 양분하는 모양새다. 앞으로의 전개가 기대된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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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 연희 2013.10.23 23:2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비밀 넘재밌네요

  2. 안녕하세요. Daum view입니다.
    축하합니다. 2013년 10월 4주 view어워드 '이 주의 글'로 선정되셨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리며, view 활동을 응원하겠습니다. ^^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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