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2 주말드라마 <왕가네 식구들>에서 셋째딸 왕광박이 데려온 사윗감 최상남이 중졸 학력에 중장비 기사라고 집안 식구들이 반대하는 설정이 그려졌다. 이것 때문에 드라마가 학벌주의, 직업차별 등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대학 나와서 교사까지 했던 딸이 중졸 중장비 기사에 이혼 가정 출신인 남자를 데려오면 많은 경우 부모님들이 마땅치 않게 여기는 것이 사실이다. 만약 왕광박의 식구들이 아무 반대도 안했다면 그게 오히려 극의 리얼리티를 해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드라마가 학벌주의나 직업차별을 조장했다고까지 하기는 좀 힘들다. 어차피 왕광박 커플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것이 확실시되고(작가가 임성한이 아닌 이상), 그때 되면 학벌-직업 등을 뛰어넘은 인간적 가치를 그렸다는 자평이 나올 것이다.

 

이런 일시적인 차별 조장 문제보다 심각한 것은 극 자체가 너무할 정도로 말이 안 된다는 데 있다. 중졸 중장비기사를 마땅치 않게 여기는 부모 심정은 리얼하게 그렸는데, 그 외에 리얼하지 않은 설정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일단 대졸 교사 출신 여자에 중졸 중장비기사 이혼 가정 출신 남자를 붙인 것부터가 리얼하지 않다. 재밌는 전개를 위해서 과도하게 극단적인 대비를 설정한 것이다. 마치 <개그콘서트>의 ‘시청률 박대표‘가 평범한 직장인 남녀 등장인물을 보더니, ’야 왜 이렇게 밋밋해 더 자극적인 구도로 바꿔!‘라고 호통이라도 친 듯한 설정이다.

 

그런데 그 남자(최상남)의 아버지는 중요한 남성 부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왕광박과 부딪힌 이래 사사건건 왕광박과 부딪히는 관계다. 문제는 이 모든 부딪힘이 우연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즉, 남자와 왕광박 집안의 기막힌 관계를 위해서 극단적인 직업 대비를 설정했다면, 여자와 최상남 집안의 기막힌 관계를 위해서 아버지와의 극단적인 우연을 설정한 것이다.

 

최상남의 이모는 또, 왕광박의 형부와 옛 정인 사이로 얽혔다. 심지어 최상남 이모의 딸이 왕광박 형부의 친딸일 듯한 분위기마저 풍긴다. 재미를 위해 극단적이고 기구한 설정을 마구 난사하는 셈이다. 정말 ‘박대표’가 극을 지휘하는 것일까?

 

극단적이기만 하고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설정은 이밖에도 많다. 왕가네의 어머니부터가 말이 안 된다. 예쁜 것만 챙기는 큰딸을 여렸을 때부터 극단적으로 편애하고, 수더분하고 성실한 둘째 딸을 그렇게 미워해왔는데, 딱히 큰 이유가 없다. 그냥 극을 자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밖에는 이해할 길이 없다

 

성격이 너무 비정상적이어서 일반적인 가정을 꾸리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또 왕가네의 대가족을 제대로 이끌어온 어머니이기도 하다. 한 마디로 말이 안 되는 설정인 것이다. 사업하던 사위가 망해 택배 기사를 하면 일반적인 어머니는 걱정을 하지만, 이 비정상적인 어머니는 사위 밥 먹는 것도 타박하며 은근히 이혼을 종용한다. 재벌가 등 상위 1% 집안도 아니고 평범한 중류층 대가족일 경우, 자식에게 이혼을 종용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

 

첫째딸 왕수박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나 미스코리아 나갔던 여자야’를 달고 살며 도무지 말이 안 되는 허영을 부린다. 집안 사업이 망했는데 자기 외모밖에는 챙길 줄을 모른다. 너무 얄미워서 손에 주먹이 쥐어질 지경이다. 남편이 겨우 시아버지에게 20만 원 부쳤는데 거기에 대고 ‘나 피부관리도 못 받는 판인데 어떻게 20만 원을 부쳐, 미친 거 아냐!’라고 소리친다. 이 얼척없는 부인이게 남편은 아무 이유도 없이 쩔쩔 맨다. 둘째딸 왕호박의 시모, 시누이도 ‘꼴보기 싫을’ 정도로 얄밉다. 자기 아들 먹여살리는 며느리를 어떻게 하면 더 괴롭히고 부려먹을까만 연구한다. 둘째딸은 또 쩔쩔 매며 당한다.

 

말도 안 되게 얄미운 사람들, 말도 안 되게 착한 사람들을 대비시켜, 말도 안 되는 상황으로 극의 자극성을 높이는 것이다. 그야말로 박대표의 재림이다.

 

집에 문이 잠겨 왕수박의 남편이 문 앞에서 잠을 잔다는 에피소드도 그렇다. 열쇠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그 사건 때문에 집안에 파란이 일어났는데 열쇠를 맞추자고 얘기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왕수박의 남편이 밤에 집에 들어와 먹을 게 없어서 쩔쩔 맨다는 이야기도 그렇다. 노동일하는 사람이 몇 천 원 짜리 밥도 안 먹어가면서 일한다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대가족이 사는 집에서 밥통에 밥이 없는 건 더 말이 안 된다. 극단적으로 기구한 상황을 만들어 사위의 불쌍한 처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극단적이기만 하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재미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 그런 설정을 받아서 시청률 30% 이상을 만들어주는 시청자. 이런 구조에서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이 발전할 수 있을까? 제2, 제3의 박대표만 나올까 두렵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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