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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90년대는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세시봉과 함께 불었던 7080 복고 열풍이, <응답하라> 시리즈와 함께 90년대 열풍으로 넘어갔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7080 시대에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자 그들에게 추억을 전해주는 것들이 인기를 끌고, 90년대에 청춘을 보냈던 사람들이 나이를 먹자 그들의 추억인 90년대가 부각되는 것이다.

 

그런데 90년대 복고는 지금까지와의 복고와는 전혀 다른 차이점이 있다. 바로 젊은 사람들까지 90년대에 반응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7080 주점의 손님은 대체로 중장년층에 한정되어있는 반면에, 강남과 홍대 앞에서 성업 중인 90년대 클럽엔 20대까지 몰려든다. 90년대 가수들도 젊은 층에게 인기 있는 토크쇼에서 맹활약중이다. 바로 90년대의 특수성 때문이다.

 

90년대는 과거이지만 ‘흘러간’ 과거는 아니다. 과거이지만 여전히 진행중인 현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1990년대에 한국의 21세기가 진정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90년대에 시작된 흐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90년대는 현재의 기원, 현재의 출발이다.

 

 

 

오늘날과 같은 특성을 보이는 젊은이들이 한반도에 처음 등장한 것이 바로 90년대였다. 배고픔을 모르고, 어렸을 때부터 풍요로운 팝문화의 세례를 받았으며, 이념에 대한 강박이나 전쟁에 대한 공포가 없는, 표현과 소비와 즐김에 거침이 없는 젊은이들 말이다. 이들이 처음 등장했을 때 한국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그 황당한 아이들에 대해 설명하는 ‘신인류 담론’이나 ‘엑스세대 담론’ 등이 등장했다. 그때의 신인류적인 특징이 지금까지 이어진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한 이후 한국 가요계는 댄tm 음악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고, 바로 뒤이어 ‘서태지와 아이들 현상’ 중에서 음악적 진정성을 거세하고 외모를 강화한 HOT가 나오면서 지금까지 이어지는 흐름이 확립된다. 박진영이 나와 욕망을 외치면서 B급 캐릭터의 선구 역할을 했고, 듀스는 힙합을 개창했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트렌디 드라마도 그때 등장했고, 영화계에서 한국형 블록버스터인 <쉬리>도 그때 등장했다. <사랑을 그대 품 안에>는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재벌2세-신데렐라’ 설정 트렌디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근육 키우고, 부드러운 성격의, 영어 잘 하는 실장님‘(차인표)가 등장했는데 이런 남성상도 80년대보단 2000년대의 이상형에 더 가까웠다.

 

90년대에 인기를 끌었던 최진실, 신은경, 이영애 등도 그 전엔 없던 새로운 여성상이었다. 당돌하고 당당하고 당찬, 그 전까지의 소극적이고 조신한 느낌하고는 결별한 여성상 말이다. 최진실은 당돌한 새댁 이미지의 CF로 신세대의 표상이 되었고, 신은경은 전형적인 여성성에서 벗어난 중성적 이미지, 이영애는 ‘산소같은 여자’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사회진출을 표상했다. 김혜수가 당당한 노출로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린 것도 90년대 말의 일이었다.

 

디지털 데이터 통신, 개인 휴대통신, IT벤쳐붐, 클럽, 노래방, 조직적인 팬덤 등등이 모두 90년대에 생겨났다. 이런 흐름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지기 때문에 현재는 ‘장기 90년대’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층이 90년대에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다.

 

90년대에 시작된 대중문화의 흐름이 현재 극성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이젠 그런 문화의 탄생설화를 찾을 때가 됐다. 아이돌의 조상, 힙합의 조상, 초창기 이동통신, 초창기 PC통신, 이런 것들을 돌이켜보고 계보를 구성할 때가 된 것이다. 현재 누리는 것들의 탄생설화를 찾는 작업은 3040 세대뿐만이 아니라 젊은 세대에게도 상당한 재미를 준다.

 

1990년대는 그렇게 현재적이면서도 동시에 과거 아날로그의 느낌도 남아있는 복합적인 시기여서, 대단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또 90년대는 한국 대중문화 폭발의 시기였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90년대는 앞으로도 계속 회고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