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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건강정보 프로그램 넘쳐나면 정말 건강해지나

 

 

TV에서 건강정보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다. 올 한 해 가장 두드러진 방송 트렌드 중의 하나가 바로 건강정보 부문의 약진일 것이다. 종편이 건강정보를 다루는 다양한 토크쇼들을 편성하며 인기를 끌자, 지상파에서도 의사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집단토크쇼에 나왔던 의사가 CF 모델이 되는가 하면, 심지어 어떤 의사는 지상파 1인 토크쇼의 초대손님으로까지 등장했다. 1인 토크쇼의 초대손님은 당대 최고의 저명인사들인데, 그럴 정도로 방송가에서 의사들의 위상이 수직상승한 셈이다.

 

신체건강을 다루는 의사뿐만 아니라, 상담전문가나 정신과 의사, 심리학자처럼 마음의 건강을 다루는 전문가도 많이 선보인다. 또 각종 건강식을 소개하는 식품영양학전문가, 요리전문가, 외모를 관리하는 피부과, 성형외과, 비만클리닉 의사 혹은 헬스트레이너 등 수많은 인물들이 TV에 나와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쏟아내는 시대다.

 

건강에 대한 욕구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건강정보는 방송계에서 중요한 아이템이었다. 그러다 최근 들어 더욱 그 위상이 강화된 것은 일단, 연예인 토크쇼의 몰락과 관련이 깊다. 이제 시청자는 연예인들의 시시콜콜한 사생활 토크에 반응하지 않는다. 뭔가 인간적으로 공감할 만하거나, 실생활에 유용한 지식을 얻어가길 원한다. 그래서 올 한 해 연예인 토크쇼가 지고 인포테인먼트 토크쇼가 뜨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건강정보가 그 핵심에 있었다.

 

최근 한국인들의 건강염려증이 특히 심해지기도 했다. 한국인은 과거에 자기 몸을 그다지 돌아보지 않고 살았었지만, 최근엔 자기 몸이나 자기 가족의 안녕 등이 최고의 관심사가 됐다. 산업과 국제교역이 고도화되면서 갈수록 음식을 믿을 수 없고, 공업물질로 인한 환경문제가 심각해지는 것도 건강불안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사스, 조류독감, 신종플루, 광우병 등 건강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에선 깜짝 놀랄 정도로 히스테릭한 반응이 나타났었다. 건강정보 프로그램은 이런 시청자의 불안감을 파고 들며 시청률을 올렸다. 그 외에, 고령화도 건강 정보에 대한 관심을 한껏 높였고, 외모 강박증도 보기 좋은 몸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고 하겠다.

 

그래서 수많은 전문가들이 나와 수많은 건강정보를 쏟아내는 시대가 됐는데, 그렇다면 이제 시청자는 건강 불안에서 해방되고 ‘장수만세’할 수 있게 된 걸까?

 

올 초에 건강정보 프로그램들이 경쟁적으로 효소를 신비의 만병통치약처럼 부각시키면서 효소 광풍이 불었었다. 그때 이후 여러 쇼핑몰에서 효소 상품을 본격적으로 팔기 시작해, 말하자면 ‘효소 산업’이 생겨났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가을 들어 효소의 효능이 그렇게 크지 않다는 얘기가 전해졌다. 비싼 돈 들여 효소 상품을 산 소비자들은 결국 방송에 놀아났던 셈이다.

 

방송은 한때는 효소의 효능을 극단적으로 과장해 시청률을 올리더니, 그 효능이 떨어진다고 하니까 이번엔 여러 프로그램에서 효소를 극단적으로 깎아내리며 시청률을 올렸다. 효소는 단지 설탕물에 불과하며, 몸에 해롭기까지 하다는 극언도 나왔다. 이렇게 자극적인 내용으로 계속 시청자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이다.

 

이런 정보들에 휘둘리다보면 건강 불안, 식품 불안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불안에 빠진 시청자는 그럴수록 건강정보 프로그램에 더 집착하며 거기에서 제시해주는 식품을 찾아다니게 된다. 건강보조식품 산업의 ‘봉’이 되는 것이다.

 

건강정보 프로그램들은 막상 볼 때는 건강에 대한 정보가 쑥쑥 들어오는 것 같은 위안을 주지만, 수많은 출연자들에 의해 난삽하게 쏟아지는 정보는 시청자의 머릿속에서 의미 있는 지식체계를 형성하기가 어렵다. 그저 뭐는 좋고 뭐는 해롭다는 막연한 인상과 몇 가지 자극적인 사례들이 기억 속에 남으며 건강염려증을 부채질하게 된다.

 

물론 성실하고 차분하게 과학적인 정보 위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도 있고, 그런 프로그램들 위주로 적절히 본다면 시청자에게 나쁠 것은 없다. 하지만 언제든지 문제는 과도할 때 나타나는 법인데, 올해 벌어진 효소 광풍은 지금 상황이 과도하다는 것을 말해준다. 불과 얼마 전에도 주말 예능에서 건강한 집밥의 비결로 효소가 부각됐었는데 이런 게 다 건강정보 프로그램의 영향이다. 최근엔 하수오 열풍이 불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건강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보다, 그저 골고루 먹고 마음 편하게 적당히 운동이나 하며 걱정을 잊고 사는 것이 진정 건강해지는 지름길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