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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변호인 송강호, 삼천만 대기록 가능할까

 

 

영화 <변호인>이 기대를 모았던 대로 개봉하자마자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순항하고 있다. 이로써 송강호는 한 해 2000만 관객 동원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게 됐는데, 앞으로 또다른 대기록이 남아있다. 바로 세 편 연속 900만 관객 돌파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의 여부다.

 

<설국열차>가 934만 명, <관상>이 913만 명을 동원한 데 이어 <변호인>까지 900만 관객을 동원할 경우 3편 연속 900만 흥행이 되는데, 이건 앞으로 또다시 나오기 힘든 대기록이다. 그리고 또하나, 두 편 연속해서 1000만 관객 직전에 좌절했던 송강호의 영화가 이번엔 1000만 돌파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관객들 사이에선 벌써부터 1000만 돌파 예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1200만 관객까지 간다면 송강호는 최근작 세 편의 총 흥행이 30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과연 <변호인>은 그 정도의 신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구도 자체는 좋다. 첫째, 한국에서 1000만 관객 돌파라는 사태가 생길 땐 대체로 해당 영화가 우리 사회의 문제나 역사를 건드리는 경우가 많다. <변호인>은 많은 부분에서 여기에 해당된다.

 

이 영화는 우리 현대사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그리고 있다. 이미 시간이 많이 흘러 잊혀진 것만 같지만 사실 겉딱지만 떼어내면 그 속에 아직도 피가 선연히 고여 있다. 1000만 사태는 이렇게 우리 역사의 상처를 제대로 그려줄 때 터진다.

 

요즘 역사교육도 제대로 안 되고 사회과학 학습도 별로 안 하기 때문에 의외로 젊은 층 중에 우리 현대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에겐 현대사의 실체, 우리가 지금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는 민주주의가 이룩되기 위해서 얼마나 처절한 희생이 있었는지를 배우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영화가 이렇게 사회적 학습의 계기로 자리매김하는 것도 신드롬적 흥행의 이유가 된다.

 

현재의 사회 정서도 건드린다. 이 영화는 어느 평범한 변호사가 ‘법으로부터의 보호’라는 극히 당연한 상식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내용이다. 영화 속에서 서민의 어머니는 법에 의한 권리를 전혀 누리지 못한다. 법이 힘없는 자를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분노는 이 시대에 매우 넓게 펴져있기 때문에, 영화의 설정에 공감하는 관객이 많을 것이다.

 

 

 

 

둘째, 이 시대의 키워드와 맞는다. 지금은 휴머니즘이 통하는 시대다. <변호인>은 시대의 아픔을 그리지만 그것을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정도로 무겁게 그린 것이 아니라, 따뜻한 가족 휴먼드라마의 틀에 시대를 녹여냈다. 이것은 폭넓은 관객들에게 감동, 위안, 힐링을 줄 수 있다.

 

일단 이 영화의 중심에 아버지가 있다. 사법고시를 포기하려 했던 남자는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고는, 마음을 다잡고 공사판에서 공부해가며 변호사가 된다. 그 아버지는 협박전화에 떠는 가족을 지켜야 하고, 또 양심도 지켜야 한다. 용공조작에 휘말린 자식을 바라봐야 하는 애끓는 어머니의 심정도 있다. 이런 아버지와 어머니는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키워드이기도 하다. <내 딸 서영이>나 <7번방의 선물>이 이 지점에서 터졌다.

 

영화에서 용공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주인공 가족이 ‘알콩달콩’ 살아가는 모습은, 따스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요즘은 복고, 아날로그적 정서가 사랑받는 시대다. 그렇기 때문에 <변호인>이 주는 따뜻한 느낌도 국민적 흥행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이 영화는 시국사건을 다루지만 절대로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그저 인간적인 차원에서의 상식을 말할 뿐이다. 야학에 나가 봉사하던 어느 청년이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구금에 고문까지 당한 황당한 사건에 대해 주인공은 말한다.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이 버젓이 벌어졌던 세상. 그건 ‘잘못됐다’라고 당연한 말을 하는 주인공. 딱 여기까지다. 영화는 이렇게 인간적인 상식선에게 전개되기 때문에 보편적인 공감과 흥행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주인공이 법적인 권리를 하나하나 찾아나가고 법정에서 상대측에 논박해들어갈 때는 마치 서민의 보호자를 만난 것 같은 통쾌감까지 안겨주는데 여기에도 공감할 관객이 많을 것이다.

 

이런 점들을 종합하면 <변호인>이 국민적인 규모의 흥행을 이룩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위험 요인이 있다. 정치적인 이유로 이 영화를 집단적으로 공격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중장년층이 영화를 기피한다면 흥행열기가 일찍 사그라들 수도 있다. 이런 적대적 반응은 친노세력에 대한 반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를 친노세력을 위한 정치선동 정도로 치부하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것처럼 이 영화는 우리 현대사의 상처를 휴먼드라마의 틀에 녹여 담담히 그린 작품일 뿐이다. 폭력이, 몰상식이 그저 ‘빨갱이’란 말 한 마디로 정당화되고 ‘국가에 대한 충성’이란 말로 미화됐던 그 시대는 여야를 떠나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한다. 그게 우리 헌법정신에 입각한 상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한 마디로 헌법적 상식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따뜻한 휴먼 시대극이다. 지금 현재의 정치적인 입장이 어떠하든, 이런 작품이 주는 인간적인 감동에 인색할 필요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