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이 이번 주말에 천만 관객을 돌파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어떤 한국 영화의 흥행이 천만까지 갈 전망이 보이면 TV방송을 비롯한 매스컴의 강력한 지원을 받고,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일어날 정도로 배급력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변호인>은 상대적으로 방송의 후광도 입지 못했고, 스크린 독과점 논란도 없는 상태에서 천만 직전까지 왔다. 그만큼 관객의 호응이 열렬했다는 이야기다.

 

눈물을 쥐어짜는 감성팔이라는 일부의 비난과는 달리, 초중반 잔잔하게 진행되던 영화는 후반에 폭발한다. 후반 법정씬에서 주인공의 감정이 점점 고조되어 어느 순간 격정적으로 대사를 외치는 것이다. 바로 그 순간, 주인공의 감정이 정점에 달했을 때 포효하듯 터뜨리는 대사가 바로 이것이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이것은 그리 특별할 것이 없는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2항에 국가란 국민입니다란 말을 덧붙인 것에 불과하다. 중학교 사회 시간에서나 배울 법한 건조하고도 진부한 말을 <변호인>은 포효하듯 외쳤고 수많은 관객이 눈물 흘렸다. 바로 그런 힘이 천만 관객의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일반 서민들 중에 내가 이 나라의 주권자이고 이 나라의 권력이 나로부터 나온다라고 자각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보통은 권력으로부터 소외되거나 무시당한다고 느끼기 십상이다. 대표적인 권력기관인 검찰은 국민에게 멀고도 두려운 존재다. 내가 바로 검찰의 주인이라고 느끼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난 15일 초등학교 4학년 여학생의 손등에 입을 맞춘 남성에게 1500만 원의 벌금과 성폭력치료프로그램 40시간 이수가 선고된 것이 다른 사건과 비교되어 사람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여성 기자들에게 "뽀뽀 한번 할까"라고 여러 차례 말했고 실제로 손등에 입을 맞췄으며 허리를 껴안고 만지기도 한검사에겐 정식 징계도 아닌 경고 처분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참여연대는 솜방망이에 그친 이번 봐주기 처분을 규탄한다며 스스로 검사직에서 사퇴하라고 했다.

 

성추행을 해도 국민은 처벌을 받는데 권력기관 검사는 그냥 넘어가는 세상일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을까?

 

 

 

 

작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갑을관계논란은 갑들의 특권, 횡포와 거기에 치이면서 살 수밖에 없는 다수 서민 을의 처지가 너무나 선명하게 대비되면서 발생한 것이었다. 이렇게 갑과 을이 선명하게 구분되는 나라를 국민의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현실이 이렇다면 국민의 나라라기보단 갑의 나라, ‘주권은 갑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갑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더 설득력 있게 느껴진다.

 

에미미 성형수술 부작용 민원에 검사가 해결사로 나선 사건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신문사까지 관련 사설을 낼 정도로 중대하게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국민에겐 한없이 멀고, 어렵고, 고압적으로 느껴지는 검사가 에이미에겐 왜 그렇게 친절했을까? 사실여부와 상관없이 사건의 구도자체가 유명인, 유력인사 등의 민원을 검사가 직접 나서서 처리해준 것처럼 느껴진다. , 상층부 갑들이 끼리끼리돕고 사는 것 같은 모양새인 것이다. 당연히 국민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일반인이 병원을 상대로 의료사고 보상을 받으려면 정말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통은 그 과정에 질려 그냥 포기해버리고 만다. 그런데 검사가 나서자 에이미는 바로 보상을 받았다. 그만큼 검사의 권력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 권력은 원칙적으론 우리 국민이 만들어준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민은 그 권력에서 소외된 듯한 느낌이다. 권력을 소유하고 활용하는 건 갑들뿐인 것처럼 느껴진다. 정작 권력의 주인인 국민이 권력에서 소외된 상태. <변호인>의 주인공은 그 상태에 분노해 외쳤다.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이 외침이 소외감, 상실감을 느끼던 국민의 가슴을 움직였다. 21세기 들어 양극화가 맹렬히 진행됐다. 국민들이 힘없는 순서대로 떨려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만약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고 여겼다면 국가가 그런 현실을 방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국가가 그동안 힘 있는 갑들만을 주인으로 여겼던 것 같은 의심이 짙다.

 

점점 떨려나가는 국민들. 권력을 두려워해야 하는 처지가 된 국민들. <변호인>은 말한다. ‘당신들이 주인입니다! 우리가 바로 진정한 주인입니다!’. 이것이 마치 복음처럼 가슴을 울렸다. 뭉클했고, 통쾌했다. 그래서 고작 헌법에 천만이 운 것이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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