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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연아의 약점은 결국 국적이었나

 

김연아가 소치올림픽에서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은메달을 획득하며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국내외에서 비난이 잇따랐다. 어째서 김연아가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이냐는 문제제기였다. 워낙 압도적인 실력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김연아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금메달이라고 세계 외신이 예상했던 터였다. 그리고 그녀는 본 게임에서 실수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쇼트 프로그램에서 그녀보다 훨씬 둔한 움직임을 보였던 러시아 선수에게 금메달이 간 것에 많은 사람들이 경악했다.

 

러시아가 이번 올림픽을 국가의 영광을 과시하는 장으로 삼으려 하고, 또 올림픽 성과를 푸틴 대통령의 지지율과 연동시키려 한다는 지적이 많았었다. 러시아의 그런 국가 전략에 김연아가 희생된 것으로 보인다. 한 미국 언론인은 ‘아이스하키를 놓친 러시아는 금메달이 하나 필요해졌고 한국의 것을 희생시켰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아이스하키의 결과와 상관없이, 동계올림픽의 꽃으로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피겨 여자 싱글 종목을 러시아 입장에선 놓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안현수 파문으로 네티즌의 질타를 받아왔던 한국 빙상연맹은 이번 김연아 파문으로 더욱 사면초가에 몰렸다. 잘못된 판정 결과에 대해 국제빙상연맹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 등에 이렇다 할 시정조치 요구를 못한다는 불만 때문이다. 과거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당시 북미 빙상계는 잘못된 판정에 맹렬히 항의해 뒤늦게 공동금메달을 이끌어냈다. 그때 공동금메달을 받은 캐나다의 제이미 살레도, 이번 피겨 여자 싱글 결과에 대해 ‘나는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결과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김연아를 두둔했다.

 

그런데 한국의 빙상계가 북미 빙상계처럼 올림픽 판정을 번복시킬 수 있을까? 네티즌은 그러기에는 한국 빙상연맹이 너무 소극적이고 또 힘도 약하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럴 정도의 힘이 있었다면 애초에 소치올림픽에서 그렇게 박한 점수를 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연아는 쇼트 프로그램 점수가 나온 후 ‘아, 짜다~’라며 탄식했는데, 만약 힘이 센 북미 빙상계에서 ‘점프의 교과서’라고 불릴 정도로 압도적인 선수가 나와 실수를 안 했는데도 올림픽에서 그렇게 ‘짠’ 점수를 받았을까?

 

결국 피겨 약소국이라는 우리의 처지가 마지막까지 김연아 선수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전부터 네티즌 사이에선 김연아의 최대 약점은 바로 국적이라는 말이 돌았었다. 세계 무대에서 심판들이 유독 김연아에게만 현미경 판정을 들이댄다는 불만 때문이다. 백인 빙상계가 한국인에게 올림픽 피겨 2연패를 안겨주기 싫어하는 마음이 작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그렇게 텃세를 당하면서 김연아는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실력으로 그 모든 난관을 돌파해왔다. 국제적 텃세뿐만이 아니다. 지속적인 부상과 원인을 알 수 없는 고통,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까지, 김연아가 넘어야 할 산들은 높고도 험했다.

 

이웃나라 일본은 피겨에 막대한 지원을 하며 국가적으로 육성했다. 아사다 마오만 하더라도 개인 전용 링크가 두 개나 있을 정도다. 김연아에겐 그런 지원이 박했다. 개인 전용 링크는커녕 피겨 링크 자체가 아예 없는 나라에서 김연아는 얼음판을 찾아 먼 길을 다니며 체력을 소진했다. 열악한 시설로 몸이 굳어 그것이 부상과 고통을 유발하기도 했다. 그래도 김연아는 훈련에 매진했고 마침내 피겨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었다.

 

김연아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홀로 이룬 성취. 그것에 국민은 감동한다. 그 열정에 대한 감동, 도와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움, 마지막까지 불이익당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 의연함에 네티즌은 ‘연아야 고마워’, ‘연아야 사랑해’, ‘연아야 수고했어’ 등을 실시간 검색어에 올리며 그녀를 응원했다.

 

김연아는 우리의 서구형 체형 콤플렉스, 피겨 종목 콤플렉스 등을 떨치게 해준 ‘국민영웅’이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국민여동생’이기도 했다. 한국인은 김연아와 함께 행복한 꿈을 꾸었다. 여왕 김연아가 퇴장한 지금, 꿈은 사라지고 피겨 약소국이라는 쓸쓸한 현실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