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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상상플러스 최악으로 풍덩

 

상상플러스 최악으로 풍덩


 참으로 못 볼 꼴을 보고 말았다. KBS 2TV <상상플러스> 얘기다. <상상플러스>가 시즌2로 새 출발했다. 그러면서 ‘풍덩! 칠드런 송~’이란 새로운 코너를 선보였다. 출연자들이 우리 동요를 영어로 바꿔 부르는 설정이다. ‘롱롱디스턴스’, ‘티쳐’, ‘1st', ’2nd' 등 영어가 난무했다. 케이블TV도 아니고 공중파에서 벌어진 일이다. 탄식이 절로 나오는 사건이다.


 <상상플러스>는 원래 우리말 교양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이었다. 공익성과 오락성이 조화된 보기 드문 예능프로그램으로 KBS의 간판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그랬던 것이 이번에 주요 출연진 5명 중에 셋이 빠지고 전혀 엉뚱한 영어 소재를 채용하면서 <상상플러스>라는 이름은 버리지 않았다. 일반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영어 잔치판을 벌려도 탄식이 나올 일인데, <상상플러스>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니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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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플러스>측도 뭔가 부담을 느꼈는지 ‘풍덩! 칠드런 송~’을 시작하면서 전문가의 소개를 먼저 배치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정당화해야 하는, 즉 복잡한 소개가 없으면 상식적인 선에서는 정당화가 안 되는, 그런 일을 왜 굳이 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동요를 영어로 바꿔 부름으로서 영어에 대한 낯설음과 부담감을 줄일 수 있습니다.외국의 동요를 우리가 부르는 경우는 많지만 우리의 동요가 세계에 알려져 있는 곡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동요는 굉장히 아름다운 가사와 쉬운 멜로디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번역작업이 되어있는 것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뒤이어 이효리가 “그래서 우리 동요를 영어로 개사해서 부르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 우리(상상플러스 MC들)가 여기 앉아있는 겁니다.”라고 하면서 자신들이 이제부터 하려는 일을 정당화했다. 제작진에겐 미안하지만 여기까지만 봐도 전혀 정당화가 안 된다. 물론 그 뒤 전개된 프로그램 내용은 더욱 가관이었다. 서두 소개부분만 봐도 ‘풍덩! 칠드런 송~’을 기획한 측은 문제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첫째, 우리 동요를 영어로 바꿔 부르는 것이 좋건 말건 그런 건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왜 그것을 남녀노소 온 국민이 다 보는 TV에서 강요하냐는 데 있다. 외국어 연습은 공부할 것을 선택한 사람들이 교육방송을 통해 하면 될 일이다. 저녁 시간 부담 없이 피로를 풀러 TV 앞에 앉은 국민들에게 왜 영어 스트레스를 줘야 하나?


 영작연습이 영어공부에 좋다는 건 누구나 아는 일이다. <상상플러스>는 이런 하나마나한 얘기 말고,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 영어가 난무하는 세태가 과연 한국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동요를 영어로 바꿔 부르는 일의 유용성으로 방송을 정당화하는 건, 마치 도로 한 복판에서 오징어를 파는 일에 문제제기하자 ’오징어가 몸에 참 좋다‘라고 답하는 것과 같은 일이다. 영어광풍이 몰아치고 있는 상황에서 공중파 방송사가 그 광풍을 더욱 조장하는 것에 어떤 사회적 의미가 있는가? ’풍덩! 칠드런 송~‘의 소개부문엔 이런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았다.


 둘째, 번역을 누군가 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건 문제가 아니다. 황당한 것은 우리 동요를 영어로 번역하는 ‘막중한 일’을 왜 예능프로그램 진행자들이 해야 하냐는 데 있다. 공중파 예능은 국민 오락이다. 예능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체험하는 것은 국민에게도 유사한 것을 권하는 일이다. 왜 국민이 영어 번역을 신경 써야 하나?


 번역은 번역자의 일이다. 국민은 각자 자기 할 일만 하면 된다. 외국어 번역은 여러 가지 사회활동 중에 한 부분에 불과한 일이고, 영어 번역은 그중에서도 또 한 부분에 불과한 일이다. 모든 국민이 영어 번역 문제를 고민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러나 새 정부는 전 국민에게 영어를 강요해 한민족의 관광가이드화를 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능프로그램이 그 나팔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인가?


 셋째, 영어광풍은 그렇다고 치고, 이런 식으로 해서 과연 ‘영어에 대한 낯설음과 부담감‘만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공중파에서 영어, 영어, 영어, 노래를 부르면 아마도 ’낯설음‘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낯설음이 줄어드는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부담감‘은 증폭될 것이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에서까지 영어를 내세우는 건, 영어가 전체 국민의 의무라는 메시지를 암묵적으로 전파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한국인이 영어에 대해 갖는 거의 병적인 부담감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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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는 특수한 기술일 뿐이다. 절대로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 아니다. 한국사회는 정말 이상하게도 영어가 인간 지성의 가장 중요한 잣대라도 되는 양 전체 국민이 영어 강박증을 앓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인수위 시절부터 영어, 영어 노래를 부르면서 이 신종 정신병을 강화하고 있다. <상상플러스>가 이번에 거기에 맞장구를 치고 나섰다. 다른 프로그램도 아니고 우리말 제대로 쓰기 운동을 펼쳤던 바로 그 <상상플러스>가 말이다.


 <상상플러스>에서 과거에 우리말을 소재로 프로그램이 진행됐을 때, 우리말을 잘 모르는 사람은 핀잔을 들었다. 이번에 영어가 소재가 되자 영어를 모르는 사람이 창피해하는 구도가 됐다. 한국인이 한국말을 잘 모르는 건 창피한 일이 맞지만, 영어를 모르는 건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상상플러스>는 영어를 국어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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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회엔 진행자들이 영어시험을 보고, 그 시험지가 공개됐다. 최근 시행돼 물의를 빚고 있는 ‘진단평가-평가결과공개’의 예능판을 보는 것 같았다. 점수가 공개될 때 “아 창피해”라는 대사가 나왔다. 다시 말하지만 영어 못하는 건 전혀 창피한 일이 아니다. <상상플러스>는 영어 못하는 게 창피한 일이라고 국민들을 세뇌했다. 이렇게 되면 영어 못하는 것이 부끄럽고 열등하고 모두의 놀림감이 되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신병’이 증폭될 것이다.


 ’풍덩! 칠드런 송~‘에는 단순 시험뿐만 아니라 일종의 듣기평가라고도 할 수 있는 원어민 노래 듣기가 나왔다. 그리고 영어노래 부르기에서는 발음이 암묵적으로 평가된다. 즉 번역에 사용되는 문법, 단어에 이어 듣기, 발음까지, 일종의 영어종합평가다. 모든 국민에게 이런 것이 요구되면 당연히 이런 것을 잘 하는 사람들에게 유리한 사회가 된다. 바로 자기 자식을 고액유치원과 미국에 보낼 수 있는 상위 5% 국민들이다. 영어에 주눅 든 국민은 결국 상위 5%에 주눅 든 국민이 되어 양극화, 불평등 구도를 추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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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시작된 <상상플러스 시즌2>는 최악의 방송이었다. 국민의 영어 울렁증을 고쳐준다는 명분으로 영어광풍을 부채질하면서, 영어에 포획된 국민들의 관심사를 이용해 편안히 시청율이란 과실을 먹겠다는 구도로 보일 소지가 다분했다. ‘풍덩! 칠드런 송~’이 ‘풍덩! 칠드런 영어사교육~’으로 느껴질 만큼 황당했다. 국민 전체에게 영어가 강요되면 국민은 그 스트레스를 자식 영어사교육을 풀 것 아닌가? 정말 최악이었다. 제정신으로 돌아오라, <상상플러스>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