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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무한도전 토토가, 눈물겹게 행복했던 90년대

 

보통 세상이 각박하고 경제사정이 안 좋을 때 복고가 유행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복고 트렌드 속에서 그려지는 과거는 보통 낭만적으로 미화되기 때문에 더욱 더 ‘아, 그때가 좋았지’ 같은 향수 어린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국제시장>이 그려주는 과거에 우린 정말 힘들게 살았었지만 영화를 통해선 낭만적으로 회상되면서 관객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해주는 것이 바로 그런 현상이다. 인간은 대체로 추억을 그리워하며 과거를 아름답게 회상하는 경향이 있는데 복고 트렌드는 이런 인간의 기본정서와 맞닿아 있다.

 

그런데 90년대는 다르다. 그때는 그저 막연히 ‘아 그 시절이 좋았지’라며 낭만적으로 미화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실제로, 물리적으로 좋았던 시절이었다. 바로 여기에 90년대라는 시대의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

 

 

90년대는 산업화와 민주화라는 한국 현대사 발전의 양대 축이 모두 일단락되는 시기였다. 80년대에 한국경제는 중화학공업이 안착하면서 80년대말 3저 호황을 통해 배고픔에서 완전히 벗어났고, 87년 6월 항쟁을 통해 군사독재로부터도 벗어났다. 90년대는 그런 상황에서 열린 풍요와 자유의 시대였다.

 

90년대에 개인주의와 소비주의로 무장한 신세대가 나타난 것은 이런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그 풍요의 시대는 불과 10년도 가지 못하고 종언을 고했다. 90년대 말에 외환위기 사태가 터진 것이다. 부자가 된 줄 알았던 우리는 외환위기로 다시 가난해졌다.

 

 

외환위기는 처음에 달러 유동성 부족 때문에 생긴 단순한 경제위기였지만,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 시스템이 바뀌면서 거대한 현대사 전환의 변곡점이 되었다.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비정규직, 정리해고, 실업 등의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 그런 문제들이 전면화되면서 우린 행복의 시대에서 불안의 시대로 진입하게 된다.

 

21세기 불안의 시대를 10년 이상 겪은 지금 돌아보는 90년대는 그야말로 찬란하기만 하다. 당시엔 88만원 세대도, 미생도 없었다. 그런 시대가 앞으로 또 올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시대적인 매력이 사람들로 하여금 90년대를 자꾸 회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시절을 겪어보지 못한 20대들도 90년대의 풍요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그 시절을 동경하게 된다.

 

<무한도전> ‘토토가’ 특집에서 나타난 가수들의 활력은 바로 그렇게 자유와 풍요가 만개하던 시절의 문화적 폭발이 반영된 것이었다. 90년대에 나타난, 가난과 억압을 모르는 신세대는 한국대중문화의 판을 완전히 바꿔버리며 향후 2000년대까지 그 영향력이 이어지는 대중문화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90년대는 한 마디로 신해철 같은 사람까지 인기가수로 군림했던 시대였다. 프로그레시브 록을 비롯해 전혀 대중적이지 않은 장르를 거듭 실험한 아티스트까지 스타로 만들어준 엄청난 문화적 활력이 있었다. 신해철과 윤상이라는 당대의 스타들이 만나 테크노 실험 음반을 낼 만큼 도전정신과 다양성이 충만했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문화적 폭발성과 다양성,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했던 사회의 풍요. 지금 돌이켜보면 모두 눈물겨운 것들이다. 우린 어쩌다 이렇게 불안한 21세기를 살게 된 것일까? <무한도전> ‘토토가’ 열기가 단지 과거의 풍요를 회상하며 잠시 위안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 사회 자체가 다시 90년대의 풍요와 활력으로 돌아가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90년대로 돌아가자!’ 이것은 예능PD뿐만이 아니라 대통령 이하 정치인들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할 문제다. 미생의 눈물이 없던 시절, 그래서 문화가 폭발했던 시절. 정말 돌아갈 수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