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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천재소녀 거짓말 파문, 누가 만들었나

 

최근 메르스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이슈가 묻혔다. 심지어 국무총리 청문회마저도 언론의 주목을 못 받을 정도였다. 그 와중에 모든 언론에서 크게 다룬 소식이 있었다. 바로 천재소녀 거짓말 파문이었다.

 

재미 한인 여고생이 하버드대와 스탠퍼드 대학에 동시 합격했다고 했는데 그것이 거짓말이었다는 내용이다. 처음에 합격 소식을 크게 전했던 매체들은 오보를 낸 것에 대해 사과하며 여학생의 거짓말을 개탄했다.

 

여학생은 국민을 속인 사람이 되어 아버지가 ‘큰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했다. 매체들은 한국의 학벌주의로 인해 여학생이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이런 거짓말을 낳았다며, 학벌주의의 문제를 지적했다.

 

바로 이것이 메르스 사태로 대통령이 방미 일정을 연기할 정도로 국가적 비상시국인 와중에 터져 나온 천재소녀 거짓말 파문의 전말인데, 이 파문을 만든 것은 누구일까? 그 소녀는 정말 국민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어렸을 때 부모님에게 성적을 속이는 일이 종종 있다. 그 일이 큰 파문이 되거나 대국민 거짓말이 되지 않는 것은, 그 사건 자체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번 ‘천재소녀’의 일이 큰 파문이 된 것은 국민이 그 거짓말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뉴스 채널이 한인 여학생의 하버드대와 스탠포드 대학 합격 소식을 비중 있게 전했다. 메르스 사태 관련 소식을 전하는 중에 시간을 내서, 국무총리 자격은 검증할 시간이 없더라도 고등학생의 일류대 합격 소식은 크게 전한 것이다.

 

그렇게 보도하지 않았다면 그 여학생의 거짓말은 부모와 친구들 사이에서만 문제가 되고 끝났을 것이다. 보도 매체들이 여학생의 합격 소식을 크게 다루면서 한 방송에선 그 여학생과 인터뷰까지 했다. 바로 그 인터뷰를 통해 여학생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보도와 인터뷰가 없었다면 대국민 거짓말도 없었을 것이고, 아버지가 국민에게 사과할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학생이 자기 학업에 대해 거짓말한 일로 부모에게만 책임지면 그만이지, 왜 그 집안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단 말인가?

 

 

매체들이 앞다투어 보도했기 때문에, 애초에 크게 될 일이 아니었는데 국가적 파문이 되고 말았다. 여학생의 합격 소식을 뉴스마다 크게 전해 국민적 관심사로 만들었고, 거짓말이 드러난 후엔 국민이 속았다며 역시 또 메르스 사태와 국무총리 검증을 뒤로 한 채 이 소식을 크게 전했다.

 

그나마 신문은 이 사건을 한 박스기사 정도로 다뤘다면 방송뉴스는 메인뉴스 수준으로 부각시켰다. 그 과정을 거쳐 한 소녀의 거짓말이 국가적 파문으로 격상됐다. 그러므로 이 파문을 만든 것은 언론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언론사, 특히 방송국은 학벌 이슈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고등학생이 어느 대학교에 들어가건, 그런 것에 뉴스가치가 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우리 방송사들은 일류대에 입학한 학생의 사연을 중요하게 전한다. 과거엔 서울대가 중심이었다가 최근엔 미국 일류대에까지 관심이 확장됐다.

 

방송국들은 성적, 명문 학벌, 영어 등을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 프로그램들을 수시로 방송한다. <스타킹>에선 일류대 학벌을 가진 사람에게 지성를 가진 사람이라고 했었다. 일류대 학벌이란 고등학생 때 시험을 잘 봤다는 뜻일 뿐 지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데도 방송국이 이런 오도된 가치관을 주입한다.

 

지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학벌이나 성적, 영어 실력 등이 사람의 가치 자체를 결정짓는다는 식의 내용도 수시로 방송한다. 최근 tvN <성적욕망>처럼 입시강사를 등장시켜 사교육경쟁을 부추기기도 한다.

 

이렇게 방송이 성적지상주의, 학벌주의를 고취하고 명문대 합격 소식이 국무총리 검증 같은 국가중대사보다도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면 당연히 입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가정에서의 더 큰 압력을 초래하게 되고 학생은 더 큰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에 거짓말을 한 여학생은 그런 압박을 너무나 크게 받다보니 정신적 안정성까지 무너져내린 것으로 보인다. 매체들은 그 여학생의 소식을 국가파문으로 격상시킴으로 해서 명문대 입시 소식이 얼마나 중대한 일인지를 다시 한번 국민들에게 각인시켜줬다.

 

이런 매체들의 학벌이슈 초민감 관행이 유지되는 한 입시 부작용은 언제든 또 터져나올 수 있다. 매체사들은 학생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학벌주의를 개탄하기 전에 자신들의 학벌주의부터 돌아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