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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어셈블리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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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드문 본격 정치드라마였던 <어셈블리>가 시청률 4.9%라는 아쉬운 성적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 드라마는 어딜 가서든 연애한다는 평을 듣는다. 의학드라마는 병원에서 연애하고, 수사드라마는 경찰서에서 연애하고, 직장인 드라마는 회사에서 연애하는 식이다. 정치인 드라마는 으레 국회에서 연애하기 마련인데, <어셈블리>는 연애 코드 없이 정치 그 자체에 집중한 보기 드문 작품이었다.

 

<정도전>을 대박으로 이끈 정현민 작가가 집필해 더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실제로 국회 보좌관 생활을 했던 정 작가의 경험에 <정도전>의 필력이 더해진다면, 한국에서도 정치드라마 대박이 가능할 거란 기대를 받았다. <정도전>에서 가장 찬사를 받았던 이인임 캐릭터는 정 작가가 국회에서 본 중진 의원의 모습을 사극에 투영한 것이었다. 그때 이인임을 연기했던 박영규가 <어셈블리>에선 현대 국회의 중진 의원으로 등장했기 때문에 더욱 기대를 모았다.

 

비록 시청률은 쉽게 오르지 않았지만 중반부까지는 지금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볼 수 없었던 디테일한 정치판 묘사로 열성팬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용접공 노조 간부 출신인 진상필(정재영)이 여당 친청계 실세 사무총장의 정략적 음모로 인해 여권 텃밭에 공천돼 얼떨결에 국회의원이 된다는 설정이다. 진상필은 국회와 정치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그가 국회에서 하나하나 배워가는 설정을 통해 시청자도 정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는 구도였다. 이 과정에서 정치판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등장했다.

 

 

한 명의 국회의원이 정치력을 발휘하기 위해 계파, 그리고 계파 보스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청와대를 사이에 두고 친청계과 반청계라는 계파는 어떻게 권력투쟁을 벌이는지, 이 과정에서 청와대는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여야의 주고받기 협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국회의원들의 일상활동은 어떻게 전개되는지, 선거운동은 어떤 식으로 하는지, 이런 것들이 사실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어셈블리>는 우리 드라마에 중요한 족적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은 묵직한 메시지도 남겼다. 예를 들어, 정치인들을 혐오하는 옥택연을 향해 보좌관은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정치를 혐오하고 부정해도 정치는 언제나 네 인생 전부를 지배하고 있어.”

 

정치를 아무리 혐오해봐야 정치는 절대로 나아지지 않고, 국민이 정치를 혐오해서 방치할수록 정치는 혐오스런 정치꾼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그에 따라 더욱 혐오스런 정치판이 되는데, 이런 상황을 바꿀 책임이 결국 유권자에게 있다는 깨우침이다.

 

진상필은 마지막 연설을 통해 국가가 나를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는, 국가가 내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다는, 이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 내가 지금도 앞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을 갖도록 정치인들이 정치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해줬다.

 

요즘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젊은층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다. 국가가, 정치가 나를 지켜준다는 믿음이 없는 사회, 이 나라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어셈블리>는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인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그런 정치인들을 만들기 위해 유권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런 메시지를 남겨준 작품이었다.

 

 

하지만 결국 상업적으론 실패하고 말았다. 이 작품은 리얼한 정치판 묘사와 판타지의 어정쩡한 타협이었다. 정치적 이전투구가 디테일하게 묘사되다가도 진상필의 열혈 토로 한 방으로 모든 상황이 정리되는 단순한 설정이 반복적으로 이어졌다.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가운데 진상필의 목소리만 점점 커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어차피 한국에선 리얼한 정치판 묘사가 불가능하다. 정말로 정치권 이야기에 육박하려면 결국 각 정파의 정책과 이념을 건드릴 수밖에 없는데, 여기까지 갈 경우 어떻게 묘사하더라도 정치적 견제를 받게 된다. 각 정파의 압력에 정치드라마가 압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런 엄혹한 상황에서 드라마 산업이 찾은 돌파구가 사극이다. 옛날 얘기엔 그나마 정치적 압력이 덜 하기 때문이다.

 

현대를 배경으로 정치드라마를 만들 경우 시청자 입장에선 뭔가 맥 빠진다는 느낌, 뭔가 밋밋한 이야기만 나온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예민한 지점들을 다 피해가기 때문이다. <어셈블리>는 이러한 한국적 상황에서 정치드라마의 최고치를 보여줬다고 할 수 있는데 결국 시청자의 외면을 받았다. 역시 이 땅에서 아직은 본격 정치드라마가 어렵다는 이야기다. 당분간은 사극이 정치드라마 역할까지 떠맡는 구도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