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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16

 

<하재근의 문화읽기> 88년 '열풍'..당시 시대상은?

EBS | 문별님 작가 | 입력 2015.11.16. 21:20

[EBS 저녁뉴스] 

[EBS 뉴스G]

용경빈

한 주간의 문화이슈를 짚어보는 시간입니다. 

오늘도 하재근 문화평론가와 함께 하겠습니다. 

[스튜디오]

용경빈

요즘 이 드라마가 정말 굉장히 뜨거운 인기몰이를 하고 있죠. 

1988년을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 이 드라마 때문에 

또 다시 복고 열풍이 불 정도라고 하는데 어느 정도입니까?

하재근

이 ‘응답하라’라는 드라마 시리즈인데,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 1988. 

응칠, 응사, 응팔, 이렇게 되는 건데. 이 드라마가 방영이 될 때마다 

역대 우리나라 케이블 TV 시청률 신기록을 깨고, 그리고 우리나라 문화계에 하나의 현상, 

사회현상으로 일컬어질 만큼 큰 현상을 만들어왔었는데. 

1997 같은 경우에 방영 첫 주 시청률이 1.2%, 1994는 방영 첫 주 2.5%, 

그런데 지금 1988, 현재 방영되는 것은 방영 첫 주에 6.8%, 

기존 것보다 거의 3배 이상, 훨씬 큰 관심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도 우리나라 케이블 TV 신기록을 깬 것은 물론이려니와 

상당한 정도의 사회적 파장이 있을 것으로 지금 예상되는 상황입니다. 

용경빈

정말 어마어마한데요. 그런데 사실 1988년이면 

지금부터 약 한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거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가 이렇게까지 인기몰이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하재근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그러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뉴노멀 시대다. 뉴노멀의 뜻이 뭐냐면, 저성장, 저소비, 고실업. 

한마디로 살기가 어려워졌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비해서. 

그러니까 이제 사람들이 과거를 더 아름답게 추억하는 그런 현상이 있는 거고 

80년대 개봉했던 백 투 더 퓨처, 이 영화가 최근에 미국에서 재개봉해서 흥행 1위, 

그리고 독일에서 백 투 더 퓨처 1, 2, 3가 재개봉해서 흥행 1, 2, 3위 다 휩쓸었죠. 

이런 식으로 복고 현상이 나타나는 건데, 우리나라도 1988년 당시가 삼저호황, 

단군 이래 최대 호황, 정말 경제가 불같이 일어났던, 

은행에 돈을 집어넣으면 이자가 한 10%, 12%, 이 정도까지 나왔던 바로 그런 시대였고, 

그리고 당시에는 이 드라마 속에서 그려지는 것이 이 골목길 문화. 

지금은 골목길 문화가 사라졌죠. 왜냐하면 골목길을 자동차가 점령했으니까. 

옛날에는 골목길이 지금보다 자동차가 적었기 때문에, 평상에 앉아서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웃 간의 정을 나누는 이런 모습들, 그리고 가족 간의 정을 나누는 이런 모습들, 

이런 것들이 요즘 시청자들한테 따뜻한 어떤 인간미를 느끼게 하는 거고. 

그리고 옛날 모습들, 뭐 연탄불 가는 모습이라든가, 연탄가스. 

그리고 옛날에 석유 곤로라고 했었는데 거기에 밥을 해 먹는 모습이라든가. 

이러한 옛날 풍경들이 지금 시청자들한테 하나의 힐링의 어떤 체험으로 다가가고 있습니다. 

용경빈

이게 연도가 내려갈수록 더 폭넓은 시청자들을 확보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드라마를 보면 당시 어떤 향수를, 방금 말씀하신대로 그런 향수에 죽 젖어드는 그런 느낌을 받는데, 

그때로 좀 돌아가보죠. 대중문화적으로는 어떤 것들이 배경이 되었는지 살펴볼까요? 

하재근

이 응답하라 시리즈가 일종의 대중문화 박람회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때 그 시절에 대중문화에 어떤 게 있었는지 일제히 다 보여주는 그런 시리즈인데. 

여기에서도 이제 1988년 당시에 대중문화 코드들이 계속 나오는 거죠. 

일단 당시는 요즘에는 거의 유명무실화된 대학가요제가 아직까지 인기가 있던 시절, 

그래서 그때 대학가요제 대상이 신해철 씨, 무한궤도. 

그리고 강변가요제는 이상은 씨 ‘담다디’. 열풍이 일어났었고. 

그리고 그때는 학생들이 FM라디오를 듣던 시절이죠. 그래서 별밤지기 이문세 씨. 

그리고 당시에 국민 코미디, 유머 1번지. ‘음메 기죽어’, ‘음메 기 살어’, 쓰리랑 부부. 쓰리랑 부부가 인기 있었고. 

그다음에 당시에 초콜렛 CF 이미연, 청바지 CF 박중훈, 

그리고 한 스포츠브랜드인데 춤추다가 의자를 타고 이렇게 넘어지는 CF 있었습니다, 옛날에. 이종원 씨. 

이런 분들이 하이틴 스타. 그리고 헐리우드, 장국영, 주윤발, 왕조현, 이런 분들이 스타였고. 

그다음에 소방차에서 박남정으로 넘어가는, 우리나라 춤이 방송 율동에서 브레이크 힙합 댄스로 넘어가는, 

바로 그 시절이 1988년. 그리고 휴대폰도 처음 만들어졌고, 

우리나라 트로트 한 맺힌 트로트에서 간드러지고 즐거운 트로트로로 넘어가는 그 시기가 88년. 그

래서 그때 가요대상을 신사동 그 사람 주현미 씨가 받았던, 바로 그런 시절입니다. 

용경빈

정말 좀 아련한데요.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런데 이제 대중문화적으로는 그런 분위기였지만, 

또 사회적으로도 살펴보면 그때 좀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굉장히 좀 많이 알려지기도 했던 때였고, 어떤 문제들이 있었는지 짚어볼까요?

하재근

일단 88년에는 88올림픽이 있었죠. 80년대 대한민국의 국시는 88이라고 할 정도로 

88년 올림픽이 우리가 정말 목을 매다시피 했는데. 성공적으로 이것을 치루고, 

금메달 12개나 따서 그때 종합순위 1위 소련, 2위 동독, 3위 미국, 4위 한국. 국가적으로 난리가 났던 해였고. 

이때부터 우리가 자부심을 갖게 됐죠. 그런데 그 직후에 지강헌이 탈주하면서 

지강헌이, 나는 5백만 원 훔쳤는데, 왜 70억 횡령한 전경환, 그러니까 전두환 전 대통령 동생, 

전경환이 나보다 형량이 작냐, 라고 하면서 유전무죄, 무전유죄 이걸 외쳐서, 

이게 그 이후로 아직까지도 한국 사회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용경빈

그렇습니다. 전교조가 출범하는 그런 배경도 있었죠. 

88년 하면 서울 올림픽의 화려함 뒤에는 사실은 좀 안타까운 배경이 조성된 시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당시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사실. 

더 각박해진 현실에 그때가 참 그래도 좋았어, 이런 말씀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계속 눈에 밟히게 되는군요.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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