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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쯔위사태, 박진영은 무얼 잘못했을까?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다. 중국이나, 대만이나, 미국이나, 일본에서 태어났다면 황당한 사과를 안 해도 됐을 것이다. 어중간한 나라인 한국에서 태어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벌인 게 잘못이다. 어중간하다는 뜻은 아예 미발전국이어서 해외 시장하고는 상관없는 처지도 아니고, 완전히 풍요로운 나라여서 중국 정도의 반응은 무시해도 될 정도도 아닌, 애매한 처지란 얘기다.

 

박진영과 쯔위의 사과에 대한 후폭풍의 이야기다. 중국에선 조롱받고, 대만인은 분노하고, 한국인에게도 질타 받는 악수 중의 악수였다는 평이 나온다. 박진영은 중국에 비굴하고, 돈만 밝히고, 미성년자에게 자기 정체성과 상반 되는 사과를 강요한 파렴치한으로 뭇매를 맞고 있다.

 

물론 박진영, JYP의 대응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판매자다. 가장 핵심적인 소비자층의 궐기에 당연히 당황했을 것이다. 더구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한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로는 처음 겪는 사태다. 청와대도 잘 못하는 돌발적 사태에 대한 이상적 대응을 그들이라고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이 판매자로서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대응, 즉 소비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과, 영문을 몰라도 어쨌든 사과, 이런 대처를 선택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상황이다.

 

 

JYP를 탓하는 관점 자체에 문제가 있다. 그들은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집단 정서의 피해자다.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집단 정서는 기본적으로 비이성적이다. 이것은 이성적으로 대처해서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일본 우익이 한국에 대해 망동을 일삼는데, 이에 대해 누군가가 한국의 대처를 탓한다면 이상한 일일 것이다. 한국의 대처가 이상적이었건 아니건 문제는 비이성적인 언행을 일삼는 일본에 있다. 한국은 피해자다. 가해자의 비이성적 행위로 인해 빚어진 사태를 놓고 피해자를 탓하는 건 이상하다. JYP도 그런 피해자다.

 

중국과 대만은 이번에 상상을 초월하는 추악한 모습을 선보였다. 자기들의 국익, 대중정서에 한 소녀를 이용한 것이다. 이것이 국가주의, 민족주의적 폭주의 무서운 점이다. 국가주의 정서가 폭주하면 한 소녀 정도가 아니라 대량학살까지도 가능해진다는 게 인류사의 교훈이다.

 

중국은 중화제국의 유지, 과시에 대단히 민감하다. 신장위구르, 티벳, 대만 등의 독립에 대한 이슈가 제기되면 깜짝 놀랄 만큼 감정적으로 대응한다. 또 중국 네티즌은 오랫동안 중국이 무시당했던 데에 대한 보상심리로 대국굴기에 대한 뜨거운 열망이 있다. 이러한 중국의 자부심에 상처를 주는 일이 발생하면 집단적 응징으로 대응한다. 일단 이런 사태가 터지면 이성적 대응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우리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해외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해외시장은 어차피 중국과 일본이다. 얼마 전 헐리우드 영화 <마션>에선 미국사람 구하러 가는데 난데없이 중국 로켓을 빌렸다. 왜 그랬겠나? 중국에 아부하는 거다. 헐리우드는 중국에 그렇게까지 안 해도 먹고 산다. 그런 상황에도 중국 로켓을 등장시키는데,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우리 입장에선 말할 것도 없다. 이건 특별히 비굴한 것도 아니고, 그저 단순한 경영일 뿐이다.

 

 

일부 중국인들과 대만인들은 자기들 멋대로 쯔위의 마음을 헤아려서, 대만독립분자에 대만판 유관순 열사로 몰았다. 속마음을 속단한다는 점에선 우리도 그렇다. 쯔위의 사과를 두고 소속사가 쯔위의 정체성을 무시하고 사과를 강요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런가? 어차피 쯔위의 속마음은 누구도 모른다.

 

객관적인 상황은 이렇다. 쯔위는 자기 나라를 떠나서 한국에서 걸그룹으로 고생한다. 그건 쯔위에게 한류 스타로 뜨기 위한 강렬한 바람이 있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한류의 최대 시장은 중국이다. 그러므로 한류 스타는 중국시장의 반응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향후 자신이 중국 시장에서 사랑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고민하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쯔위의 트와이스는 애초부터 해외시장을 타겟으로 훈련해왔다. 이것이 쯔위가 처한 상황이다.

 

JYP나 쯔위나 이런 경영적 여건에 따라 단순하게 소비자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행위를 했을 뿐인데, 한국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중국과 대만이 쯔위를 통해 자신들의 국가주의적 정서를 폭발시키는 것처럼, 한국인들도 중국에 대한 자존심이라는 국가주의적 정서를 박진영 질타로 푸는 것은 아닌가?

 

한국, 중국, 일본, 모두 대중예술인들의 활동에 지나치게 국민감정을 개입시키는 경향이 있다. 대중예술인들은 그저 작품활동을 하고 돈을 벌 뿐이다. 그러기 위해서 소비자에게 잘 보이려 한다. 그런데 우리는 싸이에게 독도는 우리땅 선언을 하라는가 하면, 카라에게 독도가 어디 땅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질문하는 등 자꾸 대중예술에 국가적 정서를 개입시키려 한다.

 

방송사의 양식도 문제가 있다. 애초에 이번 일은 방송사의 설정 때문에 빚어진 일이었다. 우리 방송사 제작진들의 인종차별적 정서나 타국인들의 정서에 둔감한 점은 놀라울 정도로 심각하다. 이번 사태는 더 이상 그런 방송인들의 무식이 통용될 수 없는 시대라는 점을 보여줬다. 앞으로 국제문제에 더 비상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무튼, JYP와 쯔위는 마음 편하게 장사하도록 좀 풀어주면 좋겠다. 장사는 비굴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