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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디올 한국여자 사태, 우울하거나 불쾌하거나

 

 

수입 명품 브랜드인 디올이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 서울이라는 미술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그 중의 한 작품이 논란을 일으켰다. 유흥가를 배경으로, 한 여성이 레이디 디올 백을 들고 서있는 사진 합성 작품이다.

 

배경에 룸비무료이라는 글자가 4개 보이며, ‘파티타운이라는 간판 등의 분위기가 유흥가 중에서도 성인 환락가의 느낌을 준다. 그 앞에 서있는 여자는 어깨가 노출된 원피스 차림이다. 마치 환락가에서 일하는 여성이 명품백으로 한껏 치장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작품이야 있을 법도 하다. 사태가 터진 것은 제목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제목이 바로 한국여자. 제목이 어떤 여자만 됐어도 그런 여자가 있나보다하고 넘어갔겠지만, ‘한국여자라고 했기 때문에 황당할 수밖에 없다. 한국 여자 전체를 낙인 찍은 셈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한국 여자들은 명품백으로 치장하고 유흥업소나 다니는 존재란 말인가?

 

작가는 크리스찬 디올의 제품은 효율성 위주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과는 다른데 이런 것들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한국에서 어떤 의미로 소비되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라고 했다.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긴 어렵지만, 배경의 유흥가를 한국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풍경으로 배치했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모습으로 유흥가 사진을 배치하는 건 과거부터 있었던 일종의 관습이다.

 

 

아무리 작가 나름의 문제의식이 있다 하더라도 제3자 입장에선 유흥가 속 여자에게 한국여자라는 제목을 붙인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작가가 경쟁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국 젊은 세대의 초상을 담고자 했다고도 하는데, 이런 말로도 유흥가녀에게 한국여자라고 한 것을 이해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부분의 매체들이 이 사건을, 디올이 한국 여성울 비하한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디올 입장에선 황당할 수도 있다. 문제의 작품이 한국 작가의 것이기 때문이다. 회사가 내용에 개입하고 책임지는 광고와 달리 미술 이벤트는 보통 작가가 알아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회사보단 작가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사건은 기본적으로 외국 회사인 디올이 한국 여성을 비하한 사건이기 이전에, 우리 국내에 만연하고 있는 여성혐오 정서가 전시 작품으로까지 표출된 사건으로 보인다. 명품을 선호하는 일부 여성을 된장녀라고 하다가, 한국 여성 전체를 싸잡아 김치녀로 비하하는 정서가, 명품을 든 여성에게 한국여자라고 명명하는 작품으로 비화한 것처럼 보인다는 뜻이다.

 

설사 작가에게 그런 생각이 없었다 해도, 여성혐오의 의미로 읽힐 여지가 충분히 있다. 우리 사회의 요즘 맥락이 그렇기 때문이다. 김치녀라며 여성혐오를 강하게 표출하는 사람들은, 한국 여성이 성을 팔거나 무기로 삼아 명품 등을 획득한다고 조롱한다. 이 작품은 여성이 유흥가에서 돈을 벌어 명품으로 치장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인터넷상의 그러한 여성혐오의 논리와 일맥상통한 것처럼 보이기 쉽다.

 

작가에게 그런 생각이 있었다면 정말 심각한 문제이고, 전혀 그런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작품을 사회적으로 전시하는 작가가 여성혐오와 같은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이슈를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여자처럼 한국의 여성들 전체를 싸잡아 규정하는 것 같은 제목짓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는 것도 심각한 문제다.

 

물론 디올 측에도 문제는 있다. 아무리 작가의 작품이라고 해도 한국여자처럼 차별적, 비하적 의미로 읽힐 수 있는 것은 걸러냈어야 했다. 한국 회사가 서양에 가서 영업할 때는 서양 사람들의 문화를 철저히 공부해서 그들에게 맞춘다. 반면에 서양 명품 회사들은 동양인들이 그렇게 매출을 올려주는 데도 불구하고 동양의 문화를 특별히 존중한다는 인상을 주지 못하고 있다.

 

만약 그들 세계에서유태인 여자처럼 그들에게 민감한 차별적 주제를 제목에 붙였다면 디올 같은 회사가 방치했을 리 만무하다. 디올은 인종차별 발언을 이유로 수석 디자이너까지 해고했던 회사다. 그랬던 회사가 동양, 특히 한국의 이슈엔 너무 둔감했던 것이 아닐까? 해외 명품 회사들이 동양인들을 그저 매출을 올려주는 으로만 여기는 것 아니냐는 질문은 그전부터 있어왔다. 이번 사건은 바로 그러한 해묵은 감정을 건드렸기 때문에 공분이 일어나고 있다.

 

한 가지 우울한 가능성은, 이 사건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인들의 책임일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즉 한국인 디올 관계자가 기획, 진행하고 한국 작가가 작품을 걸었을 가능성 말이다. 한국인들도 얼마든지 레이디 디올 애즈 신 바이 서울이라는 괴상한 제목의 전시를 하면서 무개념 작품을 아무 생각 없이 걸었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 양식과 개념이 붕괴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디올의 한국 비하라면 불쾌하고, 한국인들의 자폭이라면 우울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