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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가습기살균제, 회사만 문제인가

 

믿기 어려운 사건이 벌어졌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다.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게 믿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그런 엄청난 사건이 이제야 조명 받고 있다는 것이 믿기 어렵다. 사람 목숨을 얼마나 우습게 알면 이런 일이 벌어질까?

 

가습기 살균제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것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그래서 요즘엔 청소하기 쉬운 가습기가 인기를 끈다. 가습기가 내뿜는 습기를 마시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살균제는 쓸 수 없으니 청소가 쉬운 제품을 고르는 것이다. 그런 시장변화로 인해 가습기의 형태도 청소하기 쉬운 것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소비 트렌드를 바꿀 정도로 큰 충격을 안겨줬던 것이 과거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었다. 그 정도 사건이 벌어졌고 대한민국이 정상적인 국가였다면, 당연히 진상조사와 더불어 관련자 처벌과 피해자 보상이 이루어졌어야 했다. 그런 줄만 알고 살았다.

 

이번에 놀란 것은 그 중에서 어느 것 하나도, 즉 진상조사와 처벌 및 보상, 이 중에 어느 것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간이 흘러온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간 대형 참사인데도 해결된 것이 없었던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문제가 크게 제기됐던 것은 20114월이었다. 그해 8월에 질병관리본부가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지목했는데 11월에 가서야 관련 제품 수거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그 훨씬 전부터 소비자들이 문제를 제기한 정황이 있다.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제품의 경우 2001년부터 450만 개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이 정도로 광범위하게 사용됐으면 네티즌이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기업과 정부는 너무나 둔감했다. 현재 매체에 의해 옥시라고 불리는 레킷벤키저코리아는 유해성이 있다는 실험결과를 은폐했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게시글을 삭제 또는 무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정부는 1990년대에 독성물질인 PHMG를 카페트 항균세탁용으로 허가해준 후 이것이 가습기용으로 전용되는데도 손 놓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레킷벤키저는 유럽과 달리 규제가 느슨한 한국의 허점을 이용해 문제가 있는 제품을 팔아놓고, 역시 사후 처벌도 느슨한 한국의 허점을 믿고 피해자들에 대한 대처도 불성실하게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다. 만약 유럽에서 이런 대규모 참사가 벌어졌어도 지금까지처럼 모르쇠로 대처했을까? 한국을 정말 무시하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문제는 이번에 드러난 것을 보면, 한국이 무시당할 만하다는 데에 있다. 2011년에 대형참사를 인지했는데 어떻게 2016년에 들어서야 본격수사가 진행됐단 말인가? 아직까지 제대로 된 피해자 집계조차 안 된 상황이다. 환경부는 다음 달부터 추가 피해 조사에 들어간다고 한다. 정확히 피해자가 몇 명인지, 사망자가 몇 명인지조차 모른다. 제대로 조사할 경우, 가습기 살균제가 워낙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사용됐기 때문에 사상초유의 대형 참사로 밝혀질 지도 모른다. 한 환경시민단체는 피해자 수가 수십만에서 최대 수백만 명에 이를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 생명이 존중받는 나라였다면 어떻게 이런 사건의 방치가 가능했을까?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이제라도 철저한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 독성물질이 어떻게 가습기에 쓰이게 됐으며,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별다른 제재조치가 없었는지, 사건이 불거진 후에도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사후조치에 진척이 없었는지, 뇌물이나 유착 혹은 잘못된 관행 등은 없었는지, 왜 레킷벤키저라는 회사가 서양보다 한국을 우습게 아는 것처럼 보이는지, 우리의 어떤 점이 허술한 건지, 이런 대목들을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해당 회사의 도덕성 중심으로 이번 사건에 접근하는 매체들의 태도는 문제가 있다. 대형참사 인지 후에도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건 그 회사가 아닌 우리 국가 시스템의 문제다. 뭔가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또하나, 회사 이름을 옥시라고 보도하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 영국에 있는 문제의 본사는 레킷벤키저다. 우리가 옥시라고 문제삼으면 영국 회사는 아무런 타격도 받지 않는다. 레킷벤키저라고 국제적으로 크게 알려야 영국 회사도 깜짝 놀라서 우리 피해자들에게 성의 있는 태도를 보일 것이다.

 

이번 살균제 참사는 역사에 남을 대형 사건일 수 있다. 반드시 정확한 진상조사와 문제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