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화장실 살인 사건 이후 여성혐오 논란이 뜨겁다. 사실 피의자가 정말로 여성혐오 신념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 때문에 여성을 죽이려고 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그럼에도 한국사회는 이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사건이 여성들 마음 속에 있던 공포와 불안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젊은 여성들이 대단히 많이 오가는 강남역 일대에서 벌어졌다는 점이 충격을 안겨줬다. 여성들에게 자신의 일처럼 느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유동인구가 많은 곳의 상가 건물에까지 살인범이 도사리고 있다면, 대한민국의 어디에서도 안전할 수 없다는 한탄이 퍼져갔다.

 

멀쩡한 정신의 소유자였다면 범행 장소를 한적한 곳으로 찾았을 것이다. 똑같은 옷을 입고 범행 도구인 칼을 그대로 소지한 채 범행 장소 근처에 다시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처음부터, 정신이 온전한 지에 대해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음 날, 피의자가 정신분열 진단을 받은 후 무려 4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웠했었고, 최근 2달 전부터는 약도 먹지 않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만약 정상적인 사고를 못하는 정신상태라면 누구를 혐오했다고 보기도 어려워진다. 혐오도 정신이 멀쩡해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의자 머리 속에 어떤 생각이 있었던 간에, 어쨌든 사망한 건 여성이다. 화장실에서 기다릴 때 남성이 등장했다면 범행을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정신이 온전치 못해도 남성과 싸우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 정도는 본능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여성은 훨씬 만만하게 느껴진다. 실제로도 남성들을 그냥 보내고 여성에게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는 CCTV 분석 기사들이 나오고 있다.

 

피의자가 여성을 기다린 것인지, 만만한 약자를 기다린 것인지는 더 조사를 해봐야겠지만 어느 쪽이든 결론은 여성 피해자다.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만만해보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래서 여성은 범죄 대상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높다. 가해자에게 여성혐오 정서가 있건 없건 말이다. 이런 상황이므로 여성들 입장에선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최근 들어 여성혐오 정서가 우리 사회에 크게 번져가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지난해 15세 이상 35세 미만 남성 1200명과 여성 300명을 설문한 결과를 보면, 남성 54.2%'김치녀', '된장녀', '김여사', '성괴'(성형괴물) 등의 표현에 공감한다고 했다. 한 신문이 서울 신촌에 오가는 젊은 남성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도 상당수가 인터넷에 나타나는 여성혐오 표현에 공감한다고 했었다. 우리나라의 한 청소년이 페미니즘을 탓하며 IS행을 택한 일도 있었다.

 

이러한 여성혐오 정서의 확산은 여성들의 공포를 더 부추길 수밖에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의 내막이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혐오 논란이 터졌던 것이다.

 

 

여성이 강력범죄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체감된다. 얼마 전엔 남성이 엘리베이터에 탄 모르는 여성을 단지 화풀이 차원에서 폭행한 일이 있었고, 올 초엔 골목길을 걷던 여성이 이유 없이 구타당한 일이 있었는데 범인은 연약해 보이는 여성을 골라 범행했다고 진술했다. 2012년엔 오원춘 사건이 있었다.

 

통계청의 한국 강력범죄와 여성 피해자에 따르면 2000년 강력범죄 건수 8765건 중에 여성피해자는 6245(71.3%)이었다. 2011년에는 28097건에 여성피해자 23544(83.8%)으로 크게 증가했다.

 

유엔 산하기구 범죄사무소 연구에선, 각국 살인사건 피해자 중 여성 비율이 한국 51%, 프랑스 34%, 영국 33%, 중국 30%, 인도 26% 순이었다. 여성 10만 명 당 피해자 수도 한국이 2.3명으로 G20 가운데 1위다.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범죄 위험에 대해 불안하다고 답한 여성은 201067.9%에서 2014년엔 79.6%로 크게 늘어났다.

 

 

바로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얼마 전 맥심이라는 잡지에서 여성을 범죄대상으로 묘사한 듯한 화보를 내놨을 때 강력한 반발이 있었던 것이다. 여성은 첫째 여성이라서 불안하고, 둘째 약한 사람이라서 불안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번 화장실 살인 사건의 원인이 첫째이건 둘째이건, 아니면 둘 다이건, 여성들의 불안은 고조될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우리 사회가 비상한 관심을 가져야 할 때다. 특히 무분별하게 나타나는 인터넷 여성혐오에 대해선 강력한 자정노력이 있어야 한다. 인터넷에서의 여성혐오 표현들이 여성들의 불안을 가중시키기도 하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식의 말을 하다가 그것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당장 상황이 반전되고, 여성이 안심할 수 있게 될 가능성은 극히 낮아보인다. 현실적으로 소외감과 울분에 찬 사람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그 중에선 화풀이 대상으로 여성 혹은 약자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대안은 남자로 태어나는 것뿐이란 말인가? 답답한 상황이다.

 

Posted by 하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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