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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피고인, 재심, 조작된도시, 억울한 사람들의 시대

최근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주인공의 이야기들이 인기를 끈다. 대표적으로 드라마 피고인이 그렇다. 현역 검사가 부인과 딸을 죽인 살인자로 몰려 사형수가 된다는 내용이다. 황당한 설정이지만 시청자들은 뜨겁게 반응했다. 감옥 안에서 대부분의 내용이 전개되기 때문에 분위기가 단조롭고 어두워서 높은 시청률을 기대하기 어려웠지만, 놀랍게도 미니시리즈로서는 보기 드물게 20%선을 돌파하는 이변을 만들어냈다. 

17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재심도 그렇다. 목격자인 소년이 억울하게 살인범으로 몰려 10년 감옥살이를 한 후 진실을 밝힌다는 내용이다. 이 작품도 어두운 내용이고 제작비도 적어서, 제작사가 흥행에 대한 걱정으로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그러나 개봉하자마자 흥행 1위에 올라서는 이변을 낳았다. ‘재심개봉 전에 흥행 1위였던 조작된 도시도 역시 살인 누명을 쓴 주인공의 이야기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주인공의 이야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뜬 것이다. 오락 영화인 조작된 도시야 흥행의 가능성이 있었지만, ‘재심같은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1위를 차지한 것이 놀랍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차츰 순위가 올라간 것이 아니라, 개봉하자마자 1위에 오른 것은 관객들이 처음부터 작정하고 찾았다는 이야기다. 

재심은 개봉하기 전부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을 모델로 했다는 것이 알려졌었다. 그렇다면 어두운 내용일 것이 뻔하고, 결말도 이미 알려졌기 때문에 관객들이 기피할 가능성도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관객은 가벼운 오락물이 아닌 이 작품을 선택했다. ‘재심의 무언가가 시대정신과 공명한 것이다. ‘피고인20% 돌파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만큼 이 시대에 억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뭔가 이 세상이 정당하지 않은 것 같고,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같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차갑고도 거대한 벽처럼 느껴진다. 이런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세상이라는 거대한 벽에 부닥쳐 깨진 주인공에 대한 사회적 공감이 나타났을 것이다. 

힘없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무도 들어주지 않고, 결국 약자가 책임을 뒤집어쓴다는 인식도 있다. 우리의 공적인 시스템이 그만큼 불공정하고, 우리 사회가 약자에게 냉혹하다는 뜻이다. ‘피고인의 주인공은 검사라서 완전한 약자는 아니지만 그 상대편에 있는 재벌에는 비교가 안 된다. 

이 세 작품 모두에서 공권력은 주인공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않거나, 진범과 공모해 범인을 조작하기까지 한다. 차장검사부터 경찰, 교도소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강자의 편이다. 심지어 조작된 도시는 지금까지 터진 모든 강력사건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존 증거를 완전히 지우고 새롭게 증거를 만들어내는 해결사 조직이 공권력과 언론에 뻗어있어서, 강자들이 그 조직을 활용해 약자에게 자신들의 죄를 덮어씌워왔다는 것이다. 이쯤 되면 거의 음모론 수준인데 이런 설정에조차 공감한다는 목소리들이 나온다. 

그동안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이나 삼례 3인조사건 등이 널리 알려지면서 공분이 일었다. 20년 만에 진범을 잡은 이태원 살인사건도 공권력의 신뢰를 추락시켰다. 약자의 억울함을 헤아리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최순실 사태 초기에 미적미적하는 검찰의 태도에 검찰은 믿을 수 없다는 말이 하나의 공리처럼 통용되기도 했다 

그 결과 억울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붐을 형성하게 된 것이다. ‘피고인에서도, ‘조작된 도시에서도 억울함을 푸는 건 결국 주인공의 자력구제다. ‘조작된 도시에선 게임을 같이 하던 평범한 누리꾼들이 주인공을 도와 진실을 밝힌다.

공권력의 정당성이 심각한 수준으로 의심 받는 현실이 그 배경이다. ‘피고인은 전관 변호사를 기립해서 맞이하는 검사들과, 패딩 입고 조사 받는 범털의 모습으로 최근 법꾸라지논란을 상기시켜 박수 받기도 했다. 이런 것에 대한 분노가 한편으론 촛불집회로, 또 한편으론 억울한 주인공들의 이야기로 터져 나온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