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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시발비용 질러서 탕진잼으로 푼다

 

시발비용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한다. 말하자면 홧김에 쓰는 돈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으면 쓰지 않았을 비용이란 뜻이다. 한 트위터리안이 트위터에 이 말을 쓴 뒤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욕설이 포함돼 단어 자체는 살벌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자신을 위로하는 비용이다. 복잡한 아침 출근길 또는 힘들게 야근을 하고 난 후 평소에는 돈 아끼느라 차마 타지 못했던 택시를 탄다든지, 아니면 이미 볼펜이 있는데 굳이 새로 나온 캐릭터 볼펜을 하나 더 산다든지 하는 식이다. 곡당 500원 씩하는 코인 노래방이나 한 게임에 천 원 짜리 인형뽑기방에 들르기도 한다. 

원래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가 쇼핑 등의 소비활동이다. 갑은 을에게 화풀이할 수 있지만, 을은 화풀이할 대상이 없다. 결국 작은 곳에 하고 돈을 쓰면서 울화를 달래는 것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조사에선 81%순간적으로 하는 마음이 들거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불필요한 소비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런 비용을 굳이 시발비용이라고 이름 붙일 정도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스트레스가 크다는 뜻이다. 비용 자체도 울화를 푸는 것인데, 그 비용을 가리키는 말에도 욕설을 집어넣어 울화를 더 강하게 푸는 것이다. 최근에는 시발칼로리라는 말도 등장했다. 홧김에 시켜먹는 닭튀김 같은 것들이다. 그 외, ‘빡침비용이라는 말도 있다. 

시발비용전엔 탕진잼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이것은 탕진하는 재미라는 뜻인데, 그렇다고 정말로 재산을 탕진한다는 얘기는 아니고 소소하게 낭비하듯 돈을 쓰며 작은 재미와 위안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보통 만 원 내외의 액수를 쓴다. 색깔별 양말, 세일하는 립스틱 등을 사는 식이다. 

탕진잼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가성비파, 득템파, 기분파 등으로 나뉜다고 한다. 가성비파는 다이소나 드럭스토어 등에 가서 생활용품을 산다. 득템파는 캐릭터 상품 등을 수집한다. 기분파는 인형뽑기방에 불쑥 들어가서 주머니속 남은 돈을 탕진한다. 

더러운 꼴 참고 개고생하면서 돈을 버는데, 이 정도도 못하면 우울하고 서럽다는 심리가 있다. 그런 작은 액수로라도 위안을 받아야 계속 사회생활을 할 힘을 얻을 수 있다. 여행에 돈을 쓰는 재미를 알게 된 후 회사를 계속 다닐 이유를 찾았다는 사람도 있다. 

돈을 모으면 미래에 괜찮은 삶을 살게 될 거란 보장이 전혀 없기 때문에 현재의 만족을 추구하는 측면도 있다. 이런 세태의 반영으로 욜로족 현상도 있는데, 욜로족은 상대적으로 좀 더 여유롭게 생활을 즐기는 쪽인 반면 탕진잼이나 시발비용은 정말 푼돈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소소하게 탕진하며 재미를 찾는 세태와 캐릭터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캐릭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상품은 2000개를 넘어섰다고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캐릭터 그림이 그려진 일상용품에 돈을 탕진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엔 퍽유머니가 있다. 이것은 직장에 퍽유라고 하면서 때려 칠 수 있는 돈이다. 당연히 액수가 크다. 우리 시발비용은 끽해야 몇 만 원이다. 돈 몇 만 원 쓰는 걸 탕진이라고 표현하면서 엄청난 호사라도 누린 양 뿌듯해 하고, 다시 일터로 나가 개고생하는 것이 우리 젊은이들 풍경이다. 직장 때려 칠 액수까지는 상상도 못한다. 그렇게 궁핍한 현실 때문에 더더욱 시발비용이 필요한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