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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삼디프린터 논란 유치한 퇴행일까

 

문재인 후보가 지난 달 30SBS경선토론에서 전기차, 자율 주행차, 신재생에너지, 삼디프린터 등 신성장 산업을 적극 육성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김종인 후보가 5일 출마선언 때 이를 비판하면서 논란에 불을 지폈다. 

국가 경영은 쓰리디프린터를 삼디프린터라고 읽는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잠깐 실수로 잘못 읽었다고 하기엔 너무도 심각한 결함이라며 국정 책임자에게 무능은 죄악이라고까지 한 것이다. 

안철수 후보는 6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이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받자 용어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또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발음들이 있다. 일반적으로 누구나 보면 스리디프린터라고 읽는다고 말했다. 삼디가 아닌 쓰리디가 맞는다고 한 셈이다. 

안철수 후보까지 문제를 지적하자 문재인 후보는 SNS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우리가 무슨 홍길동인가. ‘3’이라고 읽지 못하고 쓰리라고 읽어야 하나라고 한 것이다. 

그러자 정의당이 참전했다. 임한솔 정의당 선거대책위원회 부대변인이 문 후보, 안 후보 양 진영 간 경쟁이 퇴행으로 치닫고 있다. 이른바 ‘3D 프린터논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단순 말실수를 두고 후보까지 직접 나서 공방을 벌이는 것이 과연 촛불시민의 염원에 부응하는 개혁 경쟁인지 양 후보 측에 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맥락상 삼디발언을 단순 말실수로 폄하하는 느낌이다. ’유치하고 한심한 논쟁이라며 쓰리디냐 삼디냐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하기도 했다 

과연 중요하지 않은 문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21세기 들어 한국어가 사라져가고 있다. 교육계에서 영어가 국어 위로 올라가고 일반 상업 영역에서 영어 간판이 한국어 간판을 밀어내더니, 이젠 언론과 정치행정 영역에서까지 영어가 득세한다. 

과거엔 언론에서나마 영어를 자제하려는 의식이 있었지만 요즘은 완전히 사라져간다. ‘팩트워딩이니 하며 기자들이 앞장서서 영어를 퍼뜨리는 현실이다. 관공서에서도 정체불명의 영어구호를 툭하면 내건다. 

이렇게 영어가 우리말을 몰아내는 데에 큰 역할을 하는 것이 첨단기술의 발전이다. 서양에서 첨단기술이 나타나면, 우리는 해당 기술과 함께 당연하다는 듯이 말까지 수입해서 그대로 쓰고 있다. 이러다보니 영어가 매우 앞서 가는 세련된 말이고 전문적인 표현이라는 느낌까지 생겨난다. 반면에 우리말은 뭔가 뒤쳐져 보인다고 사람들이 여기게 됐다. 

쓰리디삼디는 바로 그런 변화 속의 한 가운데에 있는 표현이다. 우리말에 숫자 표현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첨단기술과 관련된 숫자는 으레 영어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방송에서도 마찬가지여서 한글날마다 심각한 문제로 지적됐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아니다. 한국인이 한국에서 3을 쓰리가 아닌 삼이라고 읽었다는 이유로 매도당한 사건이다. 전문가들이 일반적으로 쓰리라고 한다는 것도 한국인이 3을 쓰리로 읽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런 문제를 유치한 이슈로 여긴다는 것도 황당하다. 3을 삼으로 읽은 것이 말실수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그렇다. 

과거에 3에스 정책은 삼에스였고, 4H사에이치였으며, M16에무십육이었다. 당시엔 1라운드가 1회전이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영어가 너무 당연해졌다. 현대 인문, 사회, 자연과학 학문은 모두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다. 근대시기에 주요 개념을 그대로 외국어로 받았으면 우리말은 엉망진창이 됐을 것이다. 그때와 달리 요즘은 첨단기술과 관련된 용어를 그대로 외국어로 받아 우리말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다. 이대로 방치해선 안 될 문제다. 

유치한 논란이라고 치부할 게 아니라, 이번 일을 계기로 정말 진지하게 우리말을 되살릴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언론계부터 우리말에 대한 인식을 제고할 일이다. 첨단 전문용어를 어떻게 우리말로 표현할 것인지를 연구하는 특별 기구를 만드는 방안도 생각해봄직하다. 적어도, 한국인이 한국에서 3을 쓰리로 읽지 않았다고 공격당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