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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윤식당 한국인이 내지르는 비명의 판타지

 

tvN '윤식당이 다른 방송사들의 동시간대 프로그램 시청률을 일제히 끌어내리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5월 예능 프로그램 브랜드 평판에서 절대 강자인 무한도전에 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다. ’라디오스타‘, ’복면가왕등 지상파 프로그램들까지 모두 제친 것이다. 

이 프로그램은 느리다. 그것이 우리네 현실과 달랐다. 신구가 서빙을 시작했을 때 음식을 고르는 손님들 앞에서 기다렸다. 그러자 이서진이 그렇게 급할 거 없다고 천천히 하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이 한국 시청자들 가슴을 쳤다. ‘, 세상을 그렇게 동동거리며 사는 길만 있는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이다. 

우리는 여행조차도 전투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를 들고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며 기념사진 실적을 올리는 것이다. ‘윤식당속의 외국인 여행자들은 전혀 달랐다.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며 대화하고, 음식이 하나씩 나올 때마다 맛을 음미했다. 왜 이렇게 음식을 늦게 주느냐고 타박하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윤식당출연자들만 바빴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음식이 너무나 늦게 제공됐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보통 10분 내외의 시간에 거의 모든 음식 차림이 완료된다. 이 프로그램에선 간단한 식사 종류가 수십여 분이나 걸렸다. 당연히 출연자들은 좌불안석으로 불안에 떨며 음식을 바삐 만들었다. 하지만 외국 손님들은 태평했다. 

제작진이 해당 지역의 다른 식당에 가서 음식이 제공되는 시간을 측정했다. 놀랍게도 두 곳 모두에서 주문한 것들 중 첫 번째 음식이 나오는 데에만 30분 이상이 걸렸다. 우리로선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곳. 시계를 들여다보며 사람을 닦달하고 얼굴 붉히지 않는 곳. 바로 그런 곳의 정취를 프로그램은 전해줬다. 여기에 한국 시청자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인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외국인이 한국 공사장 같은 곳에 취업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라는 말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경주마처럼 달렸다. 그래서 한강의 기적도 가능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다음엔, 오히려 더 달렸다. 산업발전기엔 국가경제를 살리는 산업전사로서 달렸다면, 한강의 기적 이후엔 내가 죽지 않기 위해 달려야 했다. 외환위기로 죽느냐 사느냐의 극단적인 경쟁사회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2000년대까지는 죽을 각오로 달리면 한 밑천 잡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닥친 건 한 밑천이 아니라 탈진 증후군이었다. 이제 아무리 동동거리며 일해도 경쟁의 승자가 되는 것이 어차피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래서 승자와 패자를 가르는 패러다임 그 자체로부터의 탈출을 꿈꾸는 이들이 늘어간다. 

윤식당의 느림이 호응을 받은 건 그런 이유에서다. 느림도 탈출이려니와, 외국에 식당을 열었다는 점도 역시 탈출이다. 정서적으로, 공간적으로, 모든 면에서의 탙출을 그린 것이다. ‘헬조선 탈출트렌드하고도 맞물린다. 

프랑스 철학자인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통해서 느림의 가치가 주목 받았었다. 일본의 환경운동가인 쓰지 신이치의 슬로 라이프를 통해 캔들(Candle)이란 신조어가 알려지기도 했다. 캔들족이란 하루 한 번이라도 밤에 촛불을 켜고 삶의 여유를 음미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슬로비(Slobbie)도 있다. 천천히 그러나 더 훌륭하게 일하는 사람(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의 약칭으로 속도를 늦추고 성공보단 마음의 행복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이런 신조어들은 세계가 무한경쟁 체제로 재편된 후 피로사회가 대두했고 어디서나 사람들이 느림을 꿈꾸게 됐다는 걸 말해준다. 우리에게도 그런 흐름이 전개되다가, 최근 들어 폭발적으로 강해졌다. 피로가 울화가 되고 우울에 무기력으로까지 발전했는데, 그 댓가로 자신이 얻을 보상이 별로 없다는 것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림을 간절히 꿈꾸기는 하지만 막상 현실에서 실천하진 못한다. 한국사회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편의점 간편식 매출 상승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여전히 사람들은 발을 동동거리며 끼니조차 순식간에 때운다. ‘윤식당이 판타지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윤식당의 인기는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도록 헐떡거리며 뛰어야 겨우 밥벌이를 하는 한국사회의 비명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