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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패밀리가 떴다’ SBS, 효리의 분투가 재밌다


 

‘패밀리가 떴다’ SBS, 효리의 분투가 재밌다


 SBS가 다시 야심찬 출사표를 던졌다. ‘일요일이 좋다 - 패밀리가 떴다'이다. 굳이 ’야심찬‘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것은 SBS 예능의 처지가 그만큼 절박해보이기 때문이다. MBC의 ’무한도전‘, ’황금어장‘, ’우리 결혼했어요‘와 KBS의 ’1박2일‘, ’해피투게더‘가 예능 천하를 호령하며 나라를 들었다 놓는 이때 SBS의 입지는 위태롭기 그지없다.


 고려와 후백제가 쟁패할 때 한쪽 구석에서 다소곳이 중원을 바라만 보던 늙은 신라 같았다고나 할까? SBS에게도 한때 ‘일요일이 좋다 -X맨’으로 질주하던 시절이 있었다. ‘X맨’은 ‘당연하지’ 코너로 파란을 일으켰고, 각자매와 유재석의 춤으로 시청자를 쓰러지게 만들었다. 베이비복스의 ‘일개 멤버’였던 윤은혜는 ‘X맨’을 통해 몸을 일으켰고 ‘궁’으로 승천했다. 하하는 ‘X맨’으로 예능계의 다크호스가 됐다.


 ‘X맨‘은 유재석과 강호동이 진행했었다. 둘은 지금 예능천하를 양분하고 있다. 특히 양대 리얼 버라이어티인 ’무한도전‘과 ’1박2일‘을 그 둘이 장악하고 있다. 유재석은 ’해피투게더‘를 최고 반열에 올려놓으며 MC계의 ’지존‘이 되었는데, SBS의 비참함은 바로 그런 유재석이란 최고 병기를 장착하고도 성적이 형편없다는데 있었다.


 ‘X맨’이후 방영된 ‘일요일이 좋다 - 옛날TV’는 소리 소문 없이 끝났다. 방영기간이 불과 6개월이 채 안 되는 굴욕작이었다. ‘옛날TV’엔 유재석과 하하가 함께 나와 ‘무한도전’ 아류작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한도전 패밀리’ 부록 같은 인상을 줬다.


 그다음 내놓은 것이 ‘일요일이 좋다 - 기적의 승부사‘였다. 역시 유재석이 계속해서 진행했다. ’기적의 승부사‘가 내던진 승부수는 아나운서였다. 아나운서들을 대거 등장시켜 당시 떠오르던 아나테이너 열풍에 편승하려 했다. 마치 MBC ’지피지기‘와 같은 설정이었는데 결국 둘 다 암울한 운명을 맞았다. ’기적의 승부사‘는 ’X맨‘의 기억을 되살려 연예인 게임쇼의 포맷으로 전환했다. ’당연하지‘와 비슷한 말장난도 시도했다. 그러나 ’X맨‘ 때의 ’퀸 오브 당연하지‘ 탄생 같은 영화는 다시 오지 않았다. 이 프로그램도 약 6개월여만에 폐지되는 비운에 처했다.


 그리고 이번에 나온 것이 ‘일요일이 좋다 - 패밀리가 떴다'이다. SBS 입장에선 야심차지 않을 도리가 없다. 유재석이 여전히 이어진다. 유재석 입장에서도 이 프로그램에 자존심을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SBS는 ‘무한도전’식 리얼 버라이어티의 대세에 맞춰 이미 한번 출사표를 던졌었다. ‘이경규 김용만의 라인업’이다. ‘라인업’은 굴욕이랄 것도 없이, 아주 간단히 말해 ‘망했다’. 그보다 더 망하기도 힘들었다. 이번엔 리얼 버라이어티의 본좌인 유재석에게 SBS 리얼 버라이어티 2차 시도를 맡겼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SBS의 처지는 ‘확실히’ 비참해진다.


 ‘라인업’과 ‘1박2일’은 ‘무한도전’ 짝퉁이었는데 하나는 망했고 하나는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다. ‘패밀리가 떴다’는 ‘무한도전’의 유재석을 내세워 ‘1박2일’을 카피한다. 그런데 제목엔 패밀리가 들어간다. ‘라인업’식 발상이다. 멤버 사이의 인간적인 ‘정’을 부각시킨다. ‘라인업’은 제목만 그랬지 시청자에겐 서로 부대끼는 모습만 보여줬다. ‘패밀리가 떴다’는 멤버들이 하나의 ‘패밀리’라는 것을 아예 전제하고 시작한다.


 패밀리가 1박2일 동안 야외에서 즐겁게 어울려 지내는 것. 딱 ‘1박2일’이다. 하지만 ‘1박2일’에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여자다. 양대 리얼 버라이어티가 모두 남성집단인데 반해 ‘패밀리가 떴다’는 최초의 혼성 리얼 버라이어티다. 이 점에 차별성을 둔 것으로 보인다. 대신에 ‘1박2일’에 있는 것이 없다. 여행이다. ‘패밀리가 떴다’는 어딘가에 가서 잠만 잔다. 앞뒤 과정이 없다.


 또 ‘패밀리가 떴다’에는 묘하게 흐르는 짝짓기 분위기가 있다. 짝짓기 예능을 통해 당대 최고 MC로 부상한 이가 강호동이다. SBS는 강호동이 MBC에서 짝짓기로 성공을 거두자 같은 포맷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강호동에게 맡겼던 적이 있다. 짝짓기 예능이 리얼과 만나 탄생한 것이 요즘 장안의 화제인 ‘우리 결혼했어요’다.


 ‘패밀리가 떴다’에는 강호동이 진행하는 ‘1박2일’ 분위기에 ‘우리 결혼했어요’ 느낌이 살짝 섞였다. 거기에 유재석이 버티고 있으니 ‘무한도전’ 분위기까지 섞인 셈이다. 요즘 잘 나가는 트렌드는 다 투입됐다.


 이렇게 쓰다 보니 표절고발처럼 됐는데, 그런 뜻은 전혀 없다. 세상에 완전한 창작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류의 발전은 모두 앞사람의 어깨를 밟고 선 데서 나온 것이다. 안일한 베끼기인가, 기존 흐름을 수용하면서 독특한 무언가를 첨가했는가에 따라 범작과 수작이 갈린다. 처음엔 ‘1박2일’을 짝퉁이라며 우습게 봤었지만 ‘1박2일’만의 개성이 드러나자 ‘1박2일’은 곧 산맥이 되었다. 이제 와서 누가 ‘1박2일’더러 아류작이라고 폄하하겠는가. ‘무한도전’과 함께 당대의 흐름으로 읽혀질 뿐이다.


 ‘패밀리가 떴다’도 얼마나 기존 트렌드를 생동감 있게 변주하느냐에 사활이 걸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까지 예능에서 익숙했던 사람들을 빼고 새 얼굴로 팀을 구성한 건 일단 성공적이다. ‘옛날TV’ 때처럼 타 버라이어티 출연진을 중복 출연시켰으면 최악의 평을 받았을 것이다. 또 ‘라인업’처럼 멤버 간 대립만 부각시키지 않고 패밀리라는 ‘정’을 내세웠다. 그리고 ‘야생’을 내세웠다. ‘라인업’의 비운을 반복할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패밀리가 떴다’의 멤버가 처음 발표됐을 때는 유재석-이효리-김수로 3인 체제로 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자 의외의 인물이 솟아올랐다. 일명 예진아씨인 박예진이다. 박예진의 좌충우돌은 ‘패밀리가 떴다’를 매우 ‘리얼’답게 만들었다. 이렇게 의외의 대박이 등장하는 건 좋은 조짐이다.


 개인적으로 ‘패밀리가 떴다’를 통해 이효리가 호감으로 돌아섰다. 그동안은 비호감에 가까웠다.(개인적으로) 이효리는 소녀 아이돌에서 시작해 섹시스타를 거쳐 나이를 먹으며 포지션을 잃은 것으로 보였다. 한 프로그램에서 시민의 가감 없는 악평을 듣고 우는 모습이 나왔던 걸로 보아 본인도 그것을 의식했던 것 같다. ‘패밀리가 떴다’에서 이효리는 밝다. 박예진과 좋은 댓구를 이룬다. 프로그램을 위해 또 본인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다만 한 가지 너무 과하게 몸을 던지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소탈하고 진실된 모습으로 정면돌파하는 것은 좋다. 그런데 그것이 예능용 컨셉이라는 것이 부각되면 역효과가 난다.


 강호동의 ‘연애편지’ 때 ‘일지매’의 이영아가 게임에 몰두하다 말도 안 되는 몸개그를 보여 준 적이 있다. 황당한 포즈로 넘어진 것이었는데 그전까지 아무 존재감도 없던 신인 이영아가 그 순간 빛났다. 그런데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 그걸 보고 넘어지기 경쟁을 벌였다. 과하게 몸을 던지다가 실수를 빙자해 쓰러졌는데 역효과만 낳았다. ‘리얼’의 위력은 ‘리얼’에 있다. 대놓고 넘어지고 망가지는 것보다 정말 잘 하려고 열심히 하다 실수로 망가질 때 ‘리얼’의 묘미가 나오는 것이다. 작심하고 일부러 몸을 던지는 티가 조금 보이길래 노파심에서 한 말이다.


 김수로는 너무 나대지 않는 것이 좋았다. 김수로는 ‘남자 이영자’같이 원맨쇼로 폭주할 때가 있는데 ‘패밀리가 떴다’에선 든든히 받쳐 주는 역할을 했다. 집단체제에선 팀플레이가 역시 보기 좋다.


 SBS의 절치부심이 보는 입장에선 재밌다. 성공하길 바라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허전한 곳이 보인다. ‘1박2일’은 각본 없는 드라마다. 강호동의 씨름, 게릴라콘서트 등 멤버와 시청자가 함께 감동하는 이벤트가 역동적으로 등장한다. ‘패밀리가 떴다’는 시골 빈집에 가 즐겁게 놀다 오는 신선풍류놀이 분위기다. 이러면 쉽게 질릴 수 있고 감정이입의 깊이도 얕을 수밖에 없다. 주민과의 스토리도 약하고 그냥 즐거운 휴가다. 야생은 야생인데 ‘리얼’감이 떨어진 야생이라고나 할까? ‘1박2일’은 심장으로 잔재미를 눌렀는데 ‘패밀리가 떴다’에선 심장보단 잔재미만 보인 것이 허전했다. 장대한 성공을 위해선 이 부분이 고민할 지점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