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수목드라마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의외의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다. 7%대 시청률로 지상파까지 포함해 수목드라마 전체 1위에 올랐고, TV화제성 순위에서도 드라마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남주인공 박서준은 남자 출연자 화제성 1위(남녀 전체 1위), 여주인공 박민영은 여자 출연자 화제성 1위(남녀 전체 2위)에 올랐다.
요즘 법조드라마 전성시대라고 할 정도로 법조물이 대세다. 법조물을 포함해 사건을 해결하는 장르물이 드라마계를 장악했다. 변호사, 검사, 판사, 형사, 법의학자 등이 나서서 사회악을 척결하는 것이다. 이런 드라마들에선 흔히 재벌이 사회악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재벌을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최근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이다. 재벌 2세 ‘왕자님’과 캔디 신데렐라의 로맨스는 그동안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닳고 닳은 식상한 설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야말로 우려내고 또 우려낸 ‘사골’ 설정인 것이다. 이 작품은 캐릭터 성격도 사골이다. 재벌 2세 이영준 부회장(박서준 분)은 까칠하고 엄격하지만 사랑하는 상대에겐 다정한데 과거 사고 때문에 트라우마가 있다. 상대역인 김미소 비서(박민영 분)는 가난한 집의 소녀가장격이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씩씩한 캔디다. 너무나 익숙한 캐릭터인 것이다. 로맨스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사골이다. 까칠한 재벌 2세가 자기도 모르게 보잘 것 없는 평범한 여성에게 빠져 혼란스러워 하고, 평범한 여성이 오히려 철벽을 치는 게 초반 로맨스의 핵심이자 재미 포인트인데, 이 역시 대단히 익숙하다.
요즘 트렌드에도 맞지 않고, 너무나 많이 봐서 식상하기까지 한 왕자님 캔디 로맨스 판타지인 것이다. 그래서 성공을 예측하기 어려웠는데 예상 외로 시청자의 지지를 받았다. 주로 여성들의 지지가 뜨겁다.
너무나 익숙한 데도 불구하고 시청자가 반응한 것은, 왕자님 판타지 로맨스가 단순한 한때의 트렌드가 아님을 말해준다. 한때의 트렌드라면 뜨거운 유행 후에 사그라들겠지만, 기본 품목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컨대 밥이 그렇다. 밥은 유행과 상관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연이어 먹을 경우 질릴 수는 있는데, 그럴 때 다른 음식으로 기분전환하면 다시 밥을 찾게 된다.
왕자님 판타지 로맨스가 바로 밥 같은 존재, 즉 대중문화계 기본품목이다. 왕자님 판타지 로맨스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잠시 질릴 뿐이다. 연출인 박준화 PD는 “원작 안에 여심을 자극할 만한 코드가 함축돼 있다”고 했다. 그럴 정도로 여성의 욕망 포인트를 저격했다는 것인데, 왕자님 로맨스 판타지의 기본 속성이 바로 이것이다. 한때의 유행이 아닌 여성의 기본적인 욕망의 한 자락을 담았다는 것. 그래서 아무리 익숙해도, 아무리 비난과 조롱이 가해져도 이 장르의 생명력이 이어지는 것이다.
다만 질릴 수는 있기 때문에 연이어 등장하면 안 된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에겐 요즘 법조물 또는 장르물 전성기라는 점이 바로 최대의 기회였다. 최근엔 로맨스물도 88만원 세대의 현실적 정서를 담는 추세였다. 바로 그럴 때 뻔뻔하도록 전형적인 왕자님 판타지 로맨스가 등장하자 시청자가 반응한 것이다. 앞으로도 우린 왕자님 로맨스를 끝도 없이 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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