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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간호사는 성적 대상으로 희화화하면 안 되나



얼마 전 이효리의 뮤직비디오 예고편이 물의를 빚었다. 표절 논란도 있었지만 간호사 비하 논란도 있었다. 이 동영상 속에서 이효리는 짙은 립스틱에 가슴골을 드러낸 간호사 복장을 하고 나왔다. 그것이 파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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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네티즌들과 대한간호협회가 이를 문제 삼았다. 간호사를 성적인 대상으로 희화화한다는 지적이었다.


이효리 ‘유고걸’ 뮤비 간호사 비하 논란

[서울신문 2008-07-14]

(한 네티즌은) "간호사란 직업에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 그 사진을 찢어버리고 싶었다."며 "간호사를 섹시하다고 말하는 남자들을 저주한다."고 말했다.

...

(다른 네티즌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간호사 장면 편집을 요구한다."며 다음 '아고라-이슈 청원'란에 글을 올려 공론화를 꾀하고 있다. 그는 "언론에서 간호사가 (섹시한)이미지로만 부각되다보니 간호사를 비하하는 사회현상이 지속된다."며 "간호사도 전문직이니 제발 대접 좀 해달라."고 호소했다.


과거 2004년에도 박미경이 비슷한 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는 간호사 복장과 여경 복장으로 선정적인 장면이 연출됐다.


당시 대한간호협회는 박미경의 소속사를 상대로 방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법원이 "성적인 면을 과장해 표현한 것으로 보이기는 하지만 한도를 넘어설 정도로 선정적이거나 음란해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정도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기각했다고 한다.


그때 대한간호협회는 여경 단체와 함께 대응하려고 했으나 여경측에서 표현의 자유인만큼 상관하지 않겠다고 해 단독으로 대응했다고 보도됐다. 국가권력인 경찰이 민간단체보다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더 존중하고 있다.


이효리 뮤직비디오 사건(?)은 결국 본편에서 문제의 장면이 삭제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효리의 소속사 엠넷미디어 권창현 실장은 15일 "오전에 대한간호협회측과 통화했고, 본편에는 문제의 장면을 삭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스타뉴스 2008-07-15]


- 과민, 과민, 과민, 숨이 막힌다 -


얼마 전 있었던 드라마 ‘온에어’에서의 카메라감독 비하 파문과 똑같은 진행이다. 그때 여배우의 몸을 재미로 훑고 조명감독의 핀잔을 듣는 존재로 표현된 극중 카메라감독 캐릭터가 직종을 희화화했다며 관련 단체가 집단행동에 나섰다. 결국 ‘온에어’ 측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됐다.


아니, 카메라감독이 장난을 좀 치던, 간호사가 섹시한 컨셉으로 나오던 뭐가 문제란 말인가? 한국 영상물 속에서 카메라감독은 언제나 근엄한 전문인으로, 간호사는 숭고한 나이팅게일로 나와야 한다는 ‘수령님’의 계시라도 있었는가?


이제 희화화되는 캐릭터는 집단 실력행사를 하기 힘든 사회적 약자들로 한정되고, 협회를 구성할 수 있는 버젓한 직종에 대해선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조심 표현해야 할 판이다. 무서워서 어디 영상물 제작하겠나?


독재가 사라진 자리에 민간이익집단의 과도한 이익추구행위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재벌과 대형언론의 발호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민간이익집단 중심 체제로 재편된 것이다. 이젠 표현의 자유 영역에까지 신종 독재가 시작되고 있다. 독재 아닌 독재. 통제 아닌 통제. 민간의 자율적 실력행사에 의한 표현의 제한이다.


그 결과 힘 있는 집단 순서대로 멋있게 표현되고, 힘 없는 순서대로 비하될 처지에 처했다. 민간자율에 의한 시장통제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독재 때의 ‘무식한’ 통제보다 훨씬 교묘한 통제다. 무식한 통제든 교묘한 통제든 숨 막히기는 매한가지다. 숨 막혀 못 살겠다.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직종을 통틀어 희화화돼선 안 될 직종이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간호사가 성적 대상으로 표현되는 것이 ‘금지’ 되어야 할 이유가 도대체 뭐란 말인가? 간호사 이미지의 성적 소비를 비난할 순 있지만 금지할 순 없다.


지금처럼 전문인집단이 표현의 자유를 윽박지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명예라는 이익을 지키려 한다면, 전문인으로서의 진정한 위신은 추락할 것이다.


전문인은 단순한 전문기능자이기에 앞서 사회주도층으로서 국가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집단이다. 그런 집단은 사회적 약자의 희화화에 분노하며, 자신들의 희화화엔 관대하고, 강자의 희화화엔 통쾌해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문화가 집단의 힘에 휘둘리지 않고 융성할 수 있다.


이효리 뮤직비디오에 난데없는 간호사 비하, 간호사 희화화 논란과 이어지는 제작사의 영상삭제사건은 정말 숨이 막혔다. 우리의 21세기는 문화적으로 너무 가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