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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이영자 컴백, 대폭소



개그프로그램을 보며 배를 잡고 웃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올 봄에 <웃찾사>가 대대적인 개편을 할 당시가 개그프로그램 최후의 활성기였던 것 같다. 그때 잠깐 <웃찾사>와 <개그야>가 <개그콘서트>와 함께 웃겼었다.


그후 <웃찾사>와 <개그야>의 웃음은 잦아들었다. <개그콘서트>만이 꾸준히 웃음을 주고 있다. 앞의 두 프로그램에도 물론 간간이 터지는 웃음은 있었으나 폭소가 아닌 ‘잔잔한 미소’ 정도였다. 여전히 자리를 지키는 <개그콘서트>의 웃음도 그리 폭발적이진 않다.


중견(?) 개그맨인 이영자가 돌아왔다. 그런데 예능이 아니라 개그프로그램으로 돌아왔다. 개그맨의 꿈이 개그프로그램 탈출(?)이 된 이 척박한 시대에 정말 희귀한 사례다. 이영자의 컴백 자체도 흥미롭고, 과거의 코미디스타가 예능계에서 개그맨으로 돌아온 것은 더 흥미로운 이야기다.


컴백 무대는 <웃찾사>의 ‘내일은 해가 뜬다’라는 코너다. 첫 회가 방영됐다. 이영자의 컴백이라고 해서 혹시나 이영자 원톱은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전혀 아니다. 이영자는 주요 등장인물 중의 하나일 뿐이다. 개그프로그램으로 돌아온 것도 희귀하지만, 이영자 정도의 스타가 ‘등장인물 중 1인’을 맡은 것도 희귀하다. 이쯤 되면 초심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좋을 듯싶다.


‘내일은 해가 뜬다’는 ‘이영자 + 서울나들이(이동엽, 박영재) + 김늘메 + 신인개그맨’의 구성이다. 1990년대 최고 코미디 스타인 이영자 입장에서 봤을 땐 모두 까마득한 후배들이다. 그런 그들과 이영자는 나란히 섰다.


이영자의 너무 강한 이미지는 그에게 손해요인이었다. 과거 ‘원톱스타‘들은 요즘 예능에서 약세다. 대신에 집단 진행이 주류로 떠올랐다. 개그프로그램에 돌아와서도 이영자가 옛날처럼 전 출연진들을 휘어잡으며 ’안 계시면 오라이~‘를 연발했다면 이미지 쇄신이 안 됐을 것이다.


이영자는 현명하게도 몸을 낮추는 길을 선택했다. ‘내일은 해가 뜬다’엔 주연이 없다. 주연의 원톱 개그가 아니라 극 자체의 구성으로 웃기는 코미디극이다. 이영자는 후배들과 함께 ‘연기’로 웃기겠다고 했다. 첫 회만 봤을 때 그 약속은 확실히 실현됐다.


‘서울나들이’에서 위력을 발휘했었던 이동엽의 센스와 이영자의 절제된 코미디는 잘 어울렸다. 거기에 김늘메의 능청스러움과 홍윤화의 연기력이 작열했다. 개그프로그램을 보며 모처럼 크게 웃었다. 이영자가 박태환 맛을 보라며 수영 흉내를 내고 장미란 흉내를 낼 땐 얼마나 웃기던지.

극은 서민 코드를 잡았다. 달동네에서 가난한 아이들 사이에 벌어지는 애환(?) 담긴 코미디다. 이전 <웃찾사>의 대박 코너였던 ‘행님아’도 이런 코드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MBC의 오리지날 ‘행님아’도 이랬고, 서경석과 조혜련의 ‘울엄마’도 이런 코드였다.


서민 코드는 국민 대박 코너로 가는 단골 코스 중의 하나다. 우리 국민의 보편적인웃음은 역시 서민의 애환과 설움 속에서 탄생한다. 물론 서민 코드를 잡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성공한다는 뜻은 아니다. 관건은 그 속에서 얼마나 웃기느냐에 달렸다.


이영자는 ‘연기’로 웃기겠다고 했다. 코미디극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말이다. 첫 회는 나무랄 데 없는 코미디극이었다. 과거 ‘울엄마’도 이랬었다. ‘내일은 해가 뜬다’가 ‘울엄마’와 ‘행님아’를 잇는 국민코너가 될 진 지금으로선 속단할 수 없다.


분명한 건 적어도 첫 회 만큼은 ‘아주’ 웃겼다는 거다. 이영자도 자기 몫을 했고, 이동엽, 박영재도 ‘서울나들이’에서 다져진 호흡을 선보였고, 신인개그맨 홍윤화도 빠지지 않았다. 앞으로도 웃길 수 있을 것 같은 가능성을 보였다.


이영자 개인에게는 대폭적인 이미지 쇄신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영자에겐 그동안 비호감의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인물들 속에서 이영자는 체구로 봐도 전혀 위압적이지 않다. 초심으로 돌아가 몸을 낮춘 것이 시각적으로도 각인되는 구도다.


개그프로그램엔 다시 활기를 되찾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박준형, 정종철 등이 <개그야>로 옮기면서 방송 3사 개그프로그램의 약진을 기대했으나, 여전히 침체된 상태를 못 벗어나고 있다. 예능만 잘 나간다.


개그프로그램이 활성화돼야 창조적 웃음이라는 자원이 축적돼 예능도 더 발전할 수 있다. ‘웃음’의 세계에선, 말하자면 개그프로그램은 기초종목에 해당한다. 기초종목이 잘 돼야 여타 종목도 장기적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영자의 11년만의 개그프로그램 컴백이 개그프로그램 활성화의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 일단 첫 회에서 대폭소가 터졌으니 조짐은 좋다. 이영자,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