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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최진실이 국민배우였던 이유

 

 최진실은 얄밉도록 똑 떨어지는 미소로 기억된다. 그 미소로 CF계의 여제가 됐었다. 사실 그렇게 예쁜 얼굴은 아니다. 본인도 눈밑 그늘이 마음에 안 든다며 얼굴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다. 몸매도 대단히 늘씬하다고는 보기 힘들다. 하지만 최진실은 그 똑 떨어지는 미소로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될 수 있었다. 한때 최진실의 인기는 대단했다. 지금으로 치면 전지현과 김태희를 합친 것과 같은 위상을 과시했었다.


 ‘최진실‘은 예쁘고 귀엽고 매력적인 여자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였다. 요즘 ’장동건‘, ’전지현‘, ’김태희‘가 보통명사처럼 사용되듯이 말이다. 가만히 있는 모습을 찍은 정지사진은 그리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움직이는 화면 속에서의 최진실은 가장 빛나는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최진실은 대단히 심오한 연기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러운 감정을 표현할 수 있었다. CF퀸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최진실을 최고의 연기자로 만들어줬다. 최진실에게는 기이할 만큼 작품운도 따랐다. 전지현이나 김태희와 최진실의 다른 점이다. 연예인 생활 초반부에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주어졌던 엄청난 작품운, 연예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되고 보니 모두 다 허망하다는 느낌뿐이다.


 최진실의 인기는 어느 날 벼락처럼 폭발했다. 1988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을 통해 데뷔했을 때부터 심상치 않은 반향이 있었다. 나는 최진실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이미지가 20여 년이 지난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건 내가 최진실의 특별한 팬이어서가 아니다. 당시 최진실이라는 대단한 신인이 등장했다는 소문이 엄청났었다. 하도 귀에 쟁쟁 울려 최진실의 등장 장면을 유심히 봤던 것이다. 본 감상은 ‘나에겐 별로’였다.


 난 최진실이 청춘스타였을 당시 그녀를 좋아했던 적이 없다. 당대 최고의 스타였는데 왜 그랬는진 모르겠다. 최진실이 좋아 보이기 시작한 건 나이를 먹고 트렌디 스타가 아닌 연기자의 모습을 보이고 나서부터였다. 김혜수도 비슷한 경우다. 과거 김혜수는 학생들이 김혜수 책받침이나 김혜수 연습장을 가지고 다닐 정도로 엄청난 스타였는데, 난 김혜수도 좋아했던 적이 없다. 연기자로서 나이를 먹고 나서 좋아 보이기 시작했다.


- 시대와 공명하다 -


 내가 그랬건 말건 간에 최진실은 등장하자마자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됐다. 그것을 확고하게 만든 것은 저 유명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카피의 광고였다. 이 광고로 최진실은 야무지고 당찬 신세대 여성의 표상이 됐다. 많은 문화평론가들은 최진실의 캐릭터를 새로운 시대의 서장으로 읽어냈다.


 이런 것이 최진실의 기이한 작품운이다. 단지 재미있거나, 단지 흥미있는 작품이야 해마다 숱하게 쏟아진다. 최진실의 작품운은 그런 수준이 아니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현상으로서의 작품을 그녀는 생애에 세 번 만났다. 이건 기적이다. 그 기적 사이사이에 흥행이 성공한 ‘재미있는’ 작품들이 빼곡히 들어찼다.


 그 현상으로서의 작품 첫 번째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광고였다. 이것은 대중과, 업계와, 저널과, 평단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전설이 되었다. 최진실은 보릿고개의 배고픔을 모르는, 청소년기에 칼라TV의 세례를 받고 자란 세대의 첫 번째 표상이 되어 90년대의 반란을 예비했다. 이 칼라TV 세대는 1990년대에 한국 대중문화사를 새로 쓰게 되는데, 최진실의 당찬 미소는 ‘칙칙했던’ 80년대를 밀어버리고 다가올 풍요의 90년대를 준비하는 새벽 별빛이었던 것이다.


 최진실 자신은 이런 한없이 밝고 발랄한 신세대 이미지와는 달리 처절한 ‘전통적 방식’의 가난을 겪은 사람이었다. 이런 실체와 이미지 사이의 묘한 괴리가 향후 최진실이 개인적으로 감당해야 할 ‘우울’을 예고했는지도 모르겠다.


 최진실에게 두 번째 다가온 기적적인 작품은 1992년의 MBC드라마 <질투>다. <질투> 역시 단순히 인기 있는 드라마 중 하나가 아닌, 한 시대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당시 20대 여자들은 <질투>에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본격적인 트렌디 드라마 시대의 개막이었다.


 ‘넌 대체 누굴 보고 있는 거니’라고 시작하는 주제가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드라마를 건성으로 봤던 나도 노래만큼은 외울 정도였으니까. 최진실과 최수종이 키스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빙빙 돌아가며 잡았던 엔딩신은 하나의 전범이 되었고, 그후 숱하게 인용됐다. 최진실은 만인의 연인이라고 불렸다.


 <질투>는 1980년대 말에 예고됐던 신세대의 시대가 드디어 도래했음을 알리는 선언식이었다. 이 1990년대 초에 한국 대중문화는 폭발한다. 저 유명한 서태지가 등장한 시기가 바로 이때다. 대중문화의 폭발을 주도한 건 작업복을 입고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나라를 만드세’라며 한국산업을 건설했던 세대의 자식들이었다. 그들은 한국 전통의 인습에서 자유로웠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웠으며, 능력이 있었다. 그리하여 자신만의 생활방식, 자신만의 사랑방식, 자신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시대를 표상하는 드라마가 <질투>였다.


 <질투>의 설정은 이후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안정된 생활공간을 가지고 있는 전문직 남녀가 아슬아슬하게 엇갈리며 사랑을 키워가는 과정을 감각적인 화면과 빠른 템포로 보여주는 것은 1990년대에 최고의 인기 주제가 되었다. 이 흐름은 2000년대 초반에 와서야 끝난다. 현재 우리는 트렌디 드라마 시대가 끝나고 전문 소재 중심 드라마 시대가 시작되는 과도기에 살고 있다. 요리, 클래식, 그림 등의 전문적 소재가 작품의 전면에 나서고 있다. 이것은 우리 대중문화가 양적 화려함에 취하는 수준을 넘어 보다 다양하고 깊은 세계로 진일보했다는 걸 뜻한다. 최진실은 이 전문 소재 드라마 시대를 선취하지는 못했다.


 2008년에 최진실은 전혀 다른 것으로 신드롬을 일으켰다. 바로 ‘아줌마판 트렌디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다. 이것이 최진실의 세 번째 기적 같은 작품이다. 작품 자체의 인기 이상으로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은 대단한 주목을 받았다. 그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무언가를 표현해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한국 ‘아줌마’들의 ‘환상’을 그려낸 상징이 되었다. 비슷한 내용을 담은 드라마들은 많지만 유독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이 ‘줌마렐라’ 열풍의 대표작으로 인식됐는데, 이런 것이 바로 최진실의 기적 같은 작품운이다. ‘줌마렐라’ 열풍은 요즘 <맘마미아>의 기이한 흥행바람으로 극장가에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 있다.


 이렇게 최진실은 1980년대 말,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이르러서까지 시대와 공명하는 캐릭터들을 연기해냈다. 그것이 만인의 연인이요 국민배우인 최진실을 만들어낸 힘이었다.


 하지만 그 결말이 이런 것일 줄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1980년대 말에 벼락같이 등장했던 그 밝은 미소는 이제는 다시 볼 수 없는 전설이 되었다. 왜 이렇게 되어야만 했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안타까울 뿐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온갖 루머들이 나돌고 있다고 한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세상이 점점 더 두려워지는 느낌이다. 최진실을 추억하며, 보다 평온한 세상으로 갔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