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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김구라 막말대왕에 등극하다


 

 올 것이 왔다. 김구라가 ‘막말대왕’에 등극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발표한 심의결과에 따르면 김구라는 프로그램 1회당 평균 48.3회의 막말을 난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에 올랐다. 막상 공식적인 통계가 발표되니 새삼스럽다.


 ‘리얼‘이 대세인 시대다. 독설의 왕비호가 뜨고, 악마 캐릭터인 박명수가 대기만성의 스타가 됐다. 발라드 가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막말 순위에서 당당히 2위를 차지한 윤종신은 예능 늦둥이로 각광받고 있다. 김구라의 등장은 이런 시대의 화룡점정이다. 김구라는 막말의 끝장으로 리얼의 끝장을 보여주고 있다.


 김구라의 부흥이 단지 독한 막말의 힘 때문만은 아니다. 예능 프로그램의 출연자 중엔 때때로 돌출적인 막말이나, 직설적인 표현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막말로 튀는 것이 유행인 시대인지라 의욕충만인 출연자 중에 이런 경우가 나타나는 것이다. 그럴 때면 프로그램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단순히 막말을 위한 막말은 불편한 폭력이다. 무작정 진실을 까발리는 것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예능 프로그램은 ‘싸움판’도 ‘고발판’도 아니니까.


 대중이 원하는 건 즐거운 막말, 웃기는 막말, 통쾌한 막말이다. 아무 생각 없이 막무가내로 들이대는 걸 좋아할 정도로 시청자들이 ‘변태’적이진 않다. 사실관계를 까발리는 것도 그렇다. 안 웃긴 진실을 들이대는 건 반갑지 않은 친절이다. 김구라의 막말과 폭로는 통쾌하다. 김구라가 인기를 끄는 건 독한 막말을 해서만이 아니라 웃음의 급소를 집어내는 그 탁월한 감각 때문이다.


 최근 김구라의 막말신공은 절정에 달한 느낌이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팀플레이가 아닌, 토크쇼의 단독플레이로만 봤을 때는 김구라가 단연 빛나는 요즘이었다.



- 절친노트에서 발휘된 김구라 막말의 마법 -


 김구라의 부흥을 말하려면 <절친노트>를 빼놓을 수 없다. 김구라는 이 프로그램에서 최초로 공중파 메인 MC를 거머쥐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것도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이나 맡는다는 ‘리얼 버라이어티’ 포맷의 메인이다. 삼국지로 치면 대륙을 전전하던 유비가 이제 막 촉에 터전을 닦는 모양새다.


 물론 아직 불안하기는 하다. <절친노트>는 서로 싸우거나 어색한 관계인 연예인을 ‘절친’으로 만들어준다는 포맷이다. 그런데 국민이 관심을 가질 정도로 사이가 안 좋으며 동시에 유명하기까지 한 연예인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 ‘인력풀’의 한계가 <절친노트>의 위험요인이다.


 그러나 적어도 <절친노트> 첫 번째 에피소드였던 이지혜, 서지영 편만큼은 김구라의 막말이 마법처럼 작렬했던 한 편의 드라마였다. 다음 회를 기다리며 봤을 정도다. 과거에 서로 싸웠던 이지혜와 서지영이 MC와 함께 1박2일의 여행을 떠나며 서로 화해한다는 설정이었다. 만약 김구라가 아닌 다른 진행자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조금만 방심하면 가식적이고 작위적으로 비칠 수 있는 설정이었다. 프로그램 상의 설정에 맞추기 위해 마음을 여는 척하는 것인지, 실제로 심경이 변화하는 것인지 시청자는 예민하게 알아챈다. 단순히 이런저런 이벤트와 게임을 진행하며 화해하는 척했다면 절대로 재미를 느낄 수 없는 구도였다. 또, 화해를 정말로 해도 그렇다. 무슨 심리 감동 다큐가 아니다. 예능이다. 화해를 진실 되게 하며 동시에 웃기게 해야 한다.


 김구라의 막말이 이것을 가능케 하는 ‘마법‘으로 작용했다. 절대로 남을 배려하는 법이 없는 김구라의 폭군형 진행은 자연스럽게 화해를 해야 할 당사자들을 동지로 만들어 유대감을 형성시켰다. <1박2일>처럼 오래된 팀도 아니고 초대손님에게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말로 일관한 진행자는 김구라가 처음일 것이다.



 김구라는 직설적으로 이지혜와 서지영의 상처를 까발렸다. 그것은 무겁고 아픈 상처를 가볍게 객관화하는 효과를 거두었다. 동시에 웃겼다. 두 여자 연예인의 얼굴이 점차 환해지는 것이 확연했다. 김구라의 직설화법이 최고조에 달한 것은 출연자들에게 ‘이따 모닥불 피우면 울어! 그래야 프로그램에 감동이 있지.’라고 대놓고 말하는 장면이었다. 이런 어이없는 ‘막진행‘에 출연자들은 마음을 열어갔다.



 김구라는 흔히 금기시되는 타 프로그램, 타 진행자와의 비교를 서슴지 않았다. 타 방송사 프로그램은 아예 그 제목조차 거론하지 않는 것이 하나의 예의로 여겨지던 분위기에서 이런 막말도 시청자에게 통쾌감을 준다. <절친노트>에서 김구라의 진행은 프로그램의 재미와 리얼리티를 동시에 살린 ‘마법’이었다.




- 밉지 않은 신기의 막말 -


  <명랑히어로>에선 정준하의 치부를 건드렸다. 나오자마자 ‘가라오케’를 거론한 것이다. 옆의 동료 진행자들이 쓰러졌다. 김구라는 자신이 그러는 것은 상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어 가학적인 재미를 느끼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 지점을 드러냄으로서 상대를 도와주려는 것이라고 했다.


 김구라의 막말이나 폭로에서 거부감이 덜한 것은 그의 이런 말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단지 상대를 괴롭히려는 의도로, 혹은 무책임하게 시청률만을 위해서 폭로를 일삼는 거라면 시청자는 반드시 그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김구라의 폭로엔 재미와 함께 배려가 깔려 있다. 모두가, 그리고 본인이 방송에서 아무리 ‘쉬쉬’해봐야 이미 시청자들이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오히려 문제를 드러내고 당사자가 시청자들 앞에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일종의 처벌효과로 작용해 문제를 털고 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된다.


 <야심만만-예능선수촌>에서 연예인들의 실명을 거론했던 것도 그렇다. 염경환의 결혼식에서 황당한 축시를 발표한 것이 화제가 되었는데, 김구라는 그것이 다 염경환에게 이슈를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연예인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무관심 속에 잊혀지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일리 있는 얘기다. 염경환은 전성기에 비해 확실히 잊혀진 존재다. 결국 김구라를 통해 염경환은 다시 부각됐고, 이런 글에까지 이름이 오르고 있다. 김구라는 “밤 11시 프로에서 염경환을 언급하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저밖에 없습니다.”라고 했다.



 뜬금없이 양배추와 찰스를 비하하며 그들 정도는 아무리 싸워도 <절친노트>에 출연할 수 없다고 해서 좌중을 쓰러지게 만들었는데, 사실은 그런 말을 통해 그 둘을 <예능선수촌>에 간접 출연시킨 셈이다. 이런 것이 느껴지므로 시청자는 김구라의 말을 들으며 웃을 수 있다.



 최근 <놀러와>에 이경규와 출연했을 때도 이경규에게 조금도 눌리지 않는,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인 막말의 내공을 과시했다. 김구라가 나오면 재밌다.
 
아무리 직설적인 것도 좋지만 너무 돈, 권력, 위세, 일류대를 숭상하는 면이 있기는 하다. 신해철에게도 전문대, 일류대 운운했었다. 이런 점만 주의하면 김구라의 막말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웃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