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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치욕적인 KBS 가요대축제



너무 창피했다. 연말에 방영된 KBS 가요대축제를 보자마자 너무 창피해서 한탄이 절로 나왔다. 언제까지 이런 가요대축제를 봐야 하나?


비가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가, 모든 출연자가 차례차례 나와 ‘뉴욕 뉴욕’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시작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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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여기가 미국인가, 한국인가? 미국 가수들인가, 한국 가수들인가? 서울에서 왜 뉴욕을 찾고 있나? 평소에 흔히 있는 쇼프로그램도 아니었다. 연말에 대한민국의 가요계를 결산한다는  자리였다. 왜 그런 무대에서 미국 노래로 막을 열어야 하나?


젊은 가수들뿐만이 아니라 중견가수들까지도 ‘뉴욕 뉴욕’ 앞에 일제히 줄을 섰다.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가 ‘뉴욕 뉴욕‘에 맞춰 도열한 장면은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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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동남아 어딘가에서 연말 대중음악 결산 행사를 하면서, 그 나라 주요 가수들이 모두 나와 ‘서울 서울 서울’을 불렀다고 생각해보라. 이게 상상이 가는 광경인가?


사대모화사상이 골수에 사무쳤다. 조선 사대부들은 우리 고유의 습속을 낮추고 대국의 문물을 들여오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지금 우리나라는 미국의 문화가 한국의 안방을 차지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런 식이면 문화적 ‘주체’가 될 수 없다. 한국의 모든 가수가 연말에 모여 ‘뉴욕 뉴욕’을 부른 건 이 나라가 미국의 일개 문화적 식민지에 불과하다고 선포한 사건이다. 손톱만큼이라도 문화적 자의식이 있었다면 결코 나올 수 없는 설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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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물론 이번 KBS 가요대축제만의 특이한 사건은 아니다. 이 대한민국이라는 주변부 국가에서 과거부터 항상 있어왔던 일이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 어떤 영화시상식을 보며 느꼈던 모욕감을 잊지 못한다. 분명히 한국영화 시상식이었는데 스타워즈 음악으로 막을 열었었다. 한국엔 영화음악이 없다는 말인가? 아니다. 당시에도 영화음악은 존재했다. 하지만 태연하게 미국 음악을 우리 시상식 때 쓰고 있었다. 식민지 근성이다.


그후 그런 경향은 점점 줄어들었다. 2000년대 이후 이른바 ‘한류’라는 것이 유행하고, 우리에게도 문화적 자부심들이 생겨나면서 우리의 창작물로 국가적 행사들이 소화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KBS 가요대축제처럼 조금만 방심하면 일이 터진다. 대국의 것을 편하게 들여와 쓰는 것에 맛들이면 안 된다. 그러면 창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사라진다. 언제까지 2류 국가로 멸시받으며 살 생각인가?


아무리 미국 음악이 좋고, 우리 음악이 형편없어도 연말 결산 같은 국가적 행사에는 무조건 한국의 창작물들을 배치해야 한다. 자꾸 써버릇해야 점점 능력도 향상된다. 음악상에서도 영화상에서도 미국 음악을 지우는 연습을 의도적으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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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룡영화상의 무대를 여는 동방신기>

한국은 따라잡기에 몰두하고 있는 후발주자다. 아직 선진국 따라잡기는 완성되지 않았다. 지난 청룡영화상 때의 시작은 미국 영화음악이 아닌 우리나라 아이돌인 동방방신기가 장식했다. 딱 그 수준만큼 왔다. 어쨌든 이젠 맹목적으로 100% 수입만 할 만큼 형편없는 처지는 벗어났다. 이젠 따라잡기를 계속 하되 거기에 우리의 창작역량을 배가할 때가 됐다.


언젠가는 완전한 문화적 주체가 되겠지만 아직 그 정도는 아니다. 지금처럼 안일한 수입만 계속 하다보면 문화적 주체가 되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드라마는 막장 통속극, 가요는 기획사 제작 아이돌, 연말엔 ‘뉴욕 뉴욕’이 울려 퍼지는 대한민국.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