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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유승준 용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유승준 용서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포털 메인에 ‘유승준을 용서해야만 하는 이유’라는 글이 떴다. 군대의 야만성, 독재의 폐해 등을 들어 유승준을 옹호하는 글이었다. 군대 갔다 왔다고 강조하는 것이 일종의 열등의식과 보상심리라는 지적도 있었다. 군대에서 배울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고, 사람의 가치관을 망가뜨리기만 하는데 그런 군대가 뭐가 그리 잘났다고 병역을 신성시하느냐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한국사회 군사문화, 전체주의에 대한 절망도 언급했다. 이런 식이면 민주주의가 요원하다는 절망과 함께.


한국현대사, 한국사회에 대한 성찰은 없는 상태에서 ‘어설픈 평등’과 ‘허울 좋은 투명성’만을 이유로 유승준을 희생양 삼는 것 아니냐는 지적. 유승준 말고도 병역 뺀 사람은 많다는 얘기. 그러면서 유승준을 용서하고 군사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사회적 공분은 지도층 인사에게 집중하자고 했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포털 메인이 웬만한 중앙일간지 기사보다 더 사회적 영향력이 큰 시대다. 포털 메인에 말도 안 되는 기사가 걸리면 사람들의 판단력에 말도 안 되는 영향을 미친다.


유승준을 용서하지 않으면 군사주의-전체주의, 민주주의의 절망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유승준을 용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절망이다.


만약 유승준이 어떤 신념을 가지고 자신에게 가해질 모든 불이익을 감수할 각오를 한 상태에서 군대를 거부했다면 그때의 병역기피는 비난 받을 사안이 아니다. 그는 그러지 않았다. 그가 병역을 기피한 이유는 ‘신념’이 아니라 ‘사익’이었다. 그리고 그 방법은 ‘국적포기’였다. 이것은 공동체에 대한 배반이다. ‘사익’을 위해 우리 공동체의 ‘주권’을 포기한 사람을 용서 안 하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망가진다? 말도 안 된다.


민주주의는 ‘사’를 이기고 ‘공’에 복무하는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실행되는 공화국을 ‘공공의 일’이라고 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사익을 앞세운 사람을 옹호하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 민란도 보상심리인가? -


군대에서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심리, 혹은 열등의식 아니냐는 지적은 황당하다. 그렇게 따지면 조선민중이 사대부를 원망한 것도 고생하며 사는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된다. 민초의 억울함으로 인한 ‘공분’을 보상심리, 열등의식으로 폄하하는 건 놀랍도록 반역사적이다.


이건 군사주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얘기다. 그건 다른 맥락에서 논의할 사안이고, 유승준 문제에서 중요한 건 그가 일반 국민이 보편적으로 지고 있는 의무를 저버렸다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에서 병역은 이렇다.


입대 - 국민

면제 - 특권


‘면제 - 특권‘ 에 대한 거부감은 열등의식이나 전체주의 따위가 아니라 국민의 정의감이라고 봐야 한다. 특권에 대한 거부감이 강렬한 국민일수록 민주주의를 향유할 가능성이 높다. 유명 연예인이 병역을 기피하고도 멀쩡히 한국에서 연예활동하는 것을 묵인할 정도로 분노하지 않는 국민이라면 이 땅에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


민주주의는 어떻게 보면 역설적으로 전체주의다. 즉 전체가 모두 다 1/N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전제를 수용하고 출발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여기엔 이유가 없다. 묻지마 전체다. 유승준은 자기가 전체의 1/N이 아니라 예외라고 주장하고 있다. 나머지 1/N에 속하는 사람들이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열등감‘이 아니라 ‘정의감‘이다.


유승준은 가시밭길 교묘히 우회하면 꽃길만 펼쳐질 줄 알았다가, 가시밭길이 펼쳐지자, 왜 남들은 꽃길을 가는데 나만 가시밭길이냐며 눈물을 흘리고 있는 거다. 이것이 용서가 된다면 나 하나의 이익을 위해 옆길로 새는 것이 공식적으로 승인되는 사태가 벌어진다. 유승준은 상징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병무청이 병사들의 사기저하를 염려하는 것이 절대로 과장이 아니다.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국민의 사기도 저하된다. 그것은 특권의 승리, 민주주의의 절망으로 이어져 공화국을 파괴한다.


인기인이 언론에 나와 눈물 좀 흘리면 모든 게 용서된다? 인기인 아닌 일반 국민은 어떡하라고? 어떻게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특권층의 사익을 옹호하는 글이 포털 메인에 걸리나? 이건 말하자면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대형언론의 왜곡보도를 정당화하고, 재산권이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세력의 사익을 정당화하는 것과 같다. 병든 민주주의다.


유승준을 용서하자는 주장은 국민이 감수한 희생에 대한 배신이다. 이것은 국민의 공동체에 대한 건전한 기대를 꺾는다. 국민이 공동체의 정의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는 것은 정치적 냉소, 패배주의로 이어진다. 귀결은 국가파탄이다.


유승준 말고도 공화국의 정의를 저버린 사람이 많이 있다면 그들을 공격해야 한다. 거꾸로 유승준을 옹호해선 안 된다. ‘이 사람 말고도 나쁜 자는 많다’는 논리를 적용하면 이 세상에 처벌은 없다. 친일파도, 나찌부역자도, 시민혁명기의 귀족-왕족도, 누구도 처벌할 수 없다. 그러므로 아무리 좋게 봐줘야 하나마나한 주장이고 물타기다. 국민을 맥 빠지게 하는 물타기.


유승준은 공화국에서 시민의 의무를 저버리고 사익을 탐한 상징적인 존재다. 용서는 말도 안 된다. 그것은 사익추구에 대한 해방령이 될 것이다. 국가기강이 무너진다. 나도 국민개병제 반대한다. 그건 다른 문제다. 적어도 국민개병제가 유지되는 한, 그래서 국민이 군대에 가는 한, 사익을 위한 병역기피는 민주주의 파괴가 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이것을 옹호하는 건 정말 말도 안 된다.


(노파심에서 다시 말하자면, 공공적 가치관에 따른 신념에 의해 불이익을 감수하고 군대를 거부하는 건 민주주의에 부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