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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꽃보다남자 너무 재밌어서 무섭다

 

꽃보다남자 너무 재밌어서 무섭다


<꽃보다 남자>가 <에덴의 동쪽>을 꺾었다. 하이틴 통속극이 성인 통속극을 잡았다. 혹은 노골적인 막장극이 온건한 막장극을 잡았다. <아내의 유혹>과 함께 <꽃보다 남자>는 막장 쌍끌이, 막장 투톱에 등극했다. 아줌마 막장극과 소녀 막장극이 결국 드라마왕국을 분할하고 말았다.(설 연휴 시청률 1위 <아내의 유혹>, 2위 <꽃보다 남자>)


난 <에덴의 동쪽>을 보다가 <꽃보다 남자>로 말을 갈아탄 시청자로서 점점 무서워지고 있다. 인기가 너무 치솟는다. 물론 인기가 치솟는 이유는 간단하다. 전에도 썼듯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경쾌하고, 밝고, 화사하고, 처녀들의 판타지를 자극한다. 반면에 경쟁작인 <에덴의 동쪽>은 최근 들어 칙칙하고, 처지고, 음울하다. 2008년까지만 해도 <에덴의 동쪽>은 진행 속도 빠른 두 형제의 성공담이었다. 2009년 들어선 주인공의 성공가도는 정체되는데 어두운 분위기는 더 강해졌다. 최근 핏줄 가지고 핏대 세우는 진행은 미칠 듯이 지루하다. 이럴 때 극과 극처럼 다른 정반대의 화사한 작품이 시작된 것이다.


2008년은 아줌마 판타지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이 승승장구했다. 처녀들과 하이틴도 자신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는 막장극을 기다려왔다. 아줌마를 위해 젊고 잘 생기고 능력있고 돈도 많은 새 애인이 공급될 때, 처녀들은 꽃같은 귀족남을 기다렸던 것이다. 아줌마 막장극엔 아줌마들의 한을 풀어주기 위해 전 남편에 대한 복수라는 설정이 들어간다. 처녀들은 복수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환상만 더 강해졌다. 그것이 <꽃보다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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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보다 남자>는 ‘왕’ 막장 -


<꽃보다 남자>는 막장이라는 표현도 부족하다. ‘왕’막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드라마가 재밌는 내가 원망스럽다. 이 드라마는 기존의 재벌물을 뛰어넘어 아예 공화국에선 불가능한 귀족사회를 그리고 있다. 도련님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존댓말을 하고, 직원들이 하인처럼 군다. 물론 공화국에서도 이런 식의 인간관계는 본질적으로 없어지진 않았지만 겉으로는 사라졌다.


왕회장의 가신이 그 아들, 손자에게 순종을 하더라도 겉으로는 반말을 하고, 아들, 손자는 그 나이 먹은 가신에게 공대를 하는 것이 공화국이다. 부하직원이라도 추울 땐 외투를 걸치는 것이 공화국이다. 꽃남에선 하녀들이 야외에서 외투도 안 걸친다. 공화국에서 겉으로만이라도 인간다움, 평등의 원리가 지켜지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렸다. <꽃보다 남자>는 그런 인간의 역사를 비웃고 있다.


왜? 단지 시청자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다. 신데렐라가 되고픈 욕망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백마 탄 왕자를 극단적으로 그려주는 거다. 그것을 위해 F4 주변의 인격은 무시된다. 왕따 하나를 표현하는 것도 극단적으로, 폭력이 난무하도록 그린다. 판타지의 극단, 자극의 극단, 설정의 극단, 오로지 쾌락을 위해서. 시청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 자극에 화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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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투 걸치고 난방기 앞에 있는 '패밀리'와 밖에서 외투도 없이 찬바람 맞으며 두 손 모으고 있는 '하녀'들)

- 이젠 무서워진다 -


난 엄숙주의같은 것하고는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사람이다. 과거에 영화 공부할 때 누구나 떠받드는 작가나 작품들이 있었다. 난 코웃음쳤다. 당시 공부하는 사람 중에 대놓고 헐리웃 영화나 홍콩 영화가 좋다고 했던 사람은 내 주위에선 나밖에 없었다.


한번은 거의 신처럼 경배받는 작가의 대표작 상영회가 있었다. 모두들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작품에 집중했다. 난 의자 4개를 붙여놓고 드러누워 잠을 잤다. 그 이후로 나는 쭉 ‘오락스러운‘ 작품들을 즐기고 있다.


20대까지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뭔가 명작스러운 게 있다고 하면 억지로라도 찾아서 봤다. 주성치와 명작을 번갈아 봤던 것이다. 나이 먹으면서 점점 더 명작스러운 걸 잘 안 보는 경향이 강해진다.


난 <아내의 유혹>과 장서희가 이전에 출연했던 막장드라마인 <인어아가씨>,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되는 하이틴 막장극 <꽃보다 남자>를 모두 좋아한다! 많은 한국인들이 내 수준인 것이 문제다. 아무도 막장극을 비웃으며 명작을 찾아보려 하지 않는다. 심지어 막장극이 바로 명작이라는 주장까지 난무한다. 이젠 무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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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운 엄숙주의 -


나같은 ‘날라리’ 유형의 사람들이 살기 편해진 것이 1990년대 이후다. 1980년대까지는 엄숙주의, 거대 담론, 의무감 같은 것들이 팽배했었다. 당시에 난 운동권 후배들에게 면전에서 무시당하기도 했었다. 날라리라고.


1990년대가 되자 ‘현실 사회주의 붕괴-포스트모더니즘 공습‘과 함께 날라리들의 세상이 찾아왔다. 문화부문이 폭발하면서 어제의 운동권들이 모두 날라리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80년대스러운 문화비평은 자취를 감췄다. 비평가들이 주성치에게 경배를 드리면서 홍콩 액션영화를 분석하는 시대가 됐다.


상업주의와 쾌락주의가 질주할 때 옆에서 ‘가치’를 가지고 딴지 걸던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자 막장 드라마 제작진들이 대놓고 자신들 드라마가 시청률이 높으니 명작이라고 자신만만해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너무 지나치다. 빨간 불이 켜졌다. 최근 들어 막장, 막장, 막장의 연속이다. 드라마들이 너무 막 나가고 있고, 그런 것들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러면 곤란하다. 장기적으로 한국 드라마산업의 상업적 경쟁력도 저하되는 사태다. 다시 ‘가치’를 일부러 찾아야 하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막장 드라마는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으니 이를 어찌 한단 말인가. ‘재미’가 ‘웬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