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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강호동, 승자의 저주를 피할 수 있을까

승자의 저주는 무섭다. 승자의 저주란 승자가 오히려 어려움에 봉착한다는 뜻이다. 주로 경제부문에서 쓰이는 말이다. 최근엔 한화가 승자의 저주에 당할 뻔했다.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경쟁의 승자였다. 그러나 그 때문에 회사가 어려워질 거라는 전망이 제기됐다. 결국 한화는 승자의 지위를 물렀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포기한 것이다. 그 때문에 한화의 가치는 오히려 상승했다.


예능계에서도 승자의 저주가 화제가 된다. 탁재훈 때부터다. 탁재훈이 대상을 받은 후 하락세를 보인다는 것이 지적된다. 지난 주 <무릎팍도사>에서도 김건모와 탁재훈을 거론하며 승자의 저주 얘기가 나왔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거론된 것이 강호동이었다. 강호동은 2008년 연말에 아주 큰 부담을 안고 승자가 됐다. 강호동이 대상을 받을 때마다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강호동은 이제 ‘당신이 대상? 어디 얼마나 잘 하나 두고 보자.’라는 시각에 직면하고 있다.


반면에 두 방송사에서 강호동에게 밀린 유재석에겐 동정여론이 생겨났다. 강호동은 능력을 입증하지 못하면 두고두고 승자의 저주 사례로 회자될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2009년은 그에게 중요하다. 한화처럼 승자의 지위를 무를 수 없는 이상 강호동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 자존심을 지키느냐 웃음거리가 되느냐의 기로다.


- 강호동에게 부족했던 것 -


<야심만만 - 예능선수촌>의 신년개편은 최양락에게 그리고 강호동에게 놀라운 기회가 됐다. 제3의 전성기를 맞을 수 있는 최양락에게야 당연한 것이고, 강호동에게 기회란 건 이런 얘기다.


강호동의 탁월한 진행능력이 인정받는 건 <무릎팍도사>뿐이다. <1박2일>은 팀웤과 설정의 힘이고, <스타킹>에서의 주인공은 출연자들이고, <야심만만-예능선수촌>은 그저 무난한 정도의 느낌이었다. 강호동은 무난한 수준이어선 안 된다. 그 정도로는 ‘대상’에게 쏟아지는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유재석은 <패밀리가 떴다>와 <해피투게더>에서 동시에 웃음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무한도전>이 팀웤 중심이고 <놀러와>가 무난한 정도의 느낌이라고 해도, 강호동보다 유재석에게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프로그램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이렇게 수상과 상반된 현실은 시청자의 반발심을 부를 수 있다. 강호동에겐 <무릎팍도사> 말고도 ‘진행‘으로 강렬한 느낌을 주는 프로그램이 최소한 하나 더 필요했다. 말하자면 유재석에게 <해피투게더>같은 것.


강호동이 유재석에 비해 부족한 것이 또 있다. 강호동에겐 콤비가 없다. 유재석에겐 박명수가 있다. 강호동의 개그를 빛나게 해줄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의 입지가 훨씬 탄탄해질 것이다.



- 강호동과 최양락의 해피투게더 -


그런 의미에서 <야심만만 - 예능선수촌>의 신년개편은 강호동에게 기회였다. 강호동에게 천운이 내린 것일 수 있다. 그 천운이란 바로 최양락이다. 최양락에게도 강호동은 천운이다.


최양락의 고정 MC 첫 무대에서 강호동은 최양락을 살렸다. 강호동은 그 체구와 목소리 자체가 최양락을 살리기 위해 타고난 사람 같았다. 후배인 강호동이 엄청난 덩치와 호탕한 목소리로 좌중을 장악할 때, 바로 옆에 쪼그려 앉은 과거의 황제 대선배가 허둥대며 깐족거리는 모습은 환상의 조화였다. 이 둘은 마치 콤비를 하기 위해 과거부터 준비해온 것처럼 잘 맞았다.


강호동의 역할은 단지 선천적인 몸매와 목소리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첫 무대에서 최양락은 허둥대다가 중간에 방송사고를 냈다. 퀴즈를 내는 역할인데 정답을 말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맥락과 아무런 상관없이 밑도 끝도 없는 실수였다. 스튜디오엔 일순간 정적이 돌았다. 윤종신은 최양락에게 실수했다고 알려줬다. 보통의 경우엔 여기서 한번 웃고 핀잔주고 끝냈을 것이다.


강호동의 ‘오버액션’이 이것을 핵폭탄으로 만들어버렸다. 강호동은 정말 노련하게 최양락을 쥐었다 폈다 하며 그를 궁지로 몰았다. 마지막엔 언성을 높이며 ‘지적질’을 해댔다. 가뜩이나 웅크렸던 ‘소심형님’ 최양락은 어쩔 줄 모르며 당황스러워 하더니 급기야는 같이 흥분하며 강호동에게 항변했다.



이를 두고 일부 네티즌은 강호동이 최양락을 너무 몰아붙였다고 비난했다. 아니다. 강호동이 최양락의 실수를 살린 것이다. 강호동은 최양락이 치면 치는 만큼 반응하는 순발력의 소유자란 걸 알았다. 그래서 실수 후에 일단 ‘간’을 보고 감이 오자 ‘연예대상’ MC답게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강호동이 몰아치자 최양락은 ‘꽁트’의 대가답게 상황극을 펼쳤다.


최양락의 실수로 인해 빚어진 이 상황극은 놀랄 만큼 웃겼다. 그리고 강호동의 캐릭터와 최양락의 캐릭터가 선명하게 대비되며 이들의 콤비로서의 가능성을 각인시켰다. 강호동의 뒷받침 덕분에 최양락의 소심형님 캐릭터는 빛을 발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막판엔 최양락이 단지 영어를 번역하기만 해도 웃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최양락의 힘과 그것을 살린 강호동의 능력이다. 강호동이 스스로 자신의 수상이 정당한 것이었음을 증명했다. 강호동은 최양락을 살리고 그것으로 자기 자신을 살렸다. 


순발력과 노련함을 공유하되 대비되는 캐릭터를 가진 이 두 사람. 체구와 목소리, 개그스타일까지 모든 것이 대비되는 가운데 선보인 놀라운 호흡. 막강콤비의 가능성이 보였다. 그것은 <야심만만-예능선수촌>을 무난한 오락프로그램에서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진화시킬 수 있다. 강호동에게도 유재석의 <해피투게더>에 해당하는 프로그램과 콤비가 생길 수 있다는 얘기다. 최양락과 강호동이 성공한다면 승자의 저주는 강호동을 빗겨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