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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연아가 살인참사불황을 이겼다

김연아의 인기는 단순한 유명선수의 인기 차원이 아니다. 이건 하나의 신드롬이다. 우리 국민들은 김연아에게서 단지 잘 하는 운동선수 이상의 그 무엇을 보고 있다. 그건 무엇일까?


빛이다.


오늘 다시 한번 그것을 확인했다. 어쩌다보니 오늘 지난 일주일치 9시 뉴스를 한꺼번에 보게 됐다. 연쇄살인, 용산참사, 경제불황 이야기가 한 주 내내 연일 이어졌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러려니 하면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 앵커가 ‘모처럼 기분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하면서 김연아 소식을 전하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우울한 사회 속에서 살아왔었는지가 새삼 느껴졌다. 김연아의 소식은 지난 한 주를 통틀어 유일한 낭보였다.


연쇄살인과 용산참사와 경제불황으로 점철된 뉴스 속에서 오직 김연아만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러니까 국민들이 김연아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그녀는 화면 속에서 빛을 뿜어냈다. 이 어둡고 음울한 한국인의 답답한 마음속으로.


김연아가 연기를 끝마치고 보이는 그 당당한 표정. 이 표정에서 경제불황과 사회적 파탄으로 열패감에 빠져있던 한국인들은 다시 희망을 본다. 한국인도 이렇게 당당하고 자신감 있게 웃을 수 있는 민족이었던 것이다.


지난 한 주 뉴스 속에서 김연아 홀로 빛났던 것은 그동안 벌어졌던 일들의 축약판이었다. 김연아 신드롬은 대체로 이런 구조 속에서 형성됐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이 최근 몇 년간 겪고 있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두 번째 얻어맞고 있다. 첫 번째 크게 얻어맞은 것은 1997년 외환위기다. 곧 극복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는 제2의 외환위기를 향해 차츰차츰 파탄의 길로 접어들었다. 모든 지표가 파탄을 가리키고 있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치솟는 자살률, 세계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은 출산률, 엄청난 수의 조기유학, 중산층 붕괴, 자영업 붕괴, 노동소득하락, 투자급감, 우울증 증가, 증오범죄(연쇄살인, 묻지마범죄, 문화재방화) 증가 등 한국이라는 공동체는 스트레스 속에서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2008년 들어 두 번째 얻어맞았다. 경제위기가 가시화됐다. 그 모든 파탄상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을 그나마 지탱하고 있던 버블이 붕괴되면서 최악의 금융불안이 찾아왔다. 한국인의 열패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인터넷엔 일본 자본이 한국을 접수할 것이니 일본어나 배우자는 말들이 흉흉하게 나돌고 있다.


김연아나 박태환은 그런 속에서 우뚝 솟아오른 별이었다. 박태환보다 김연아가 더 화려하다. 그건 피겨스케이팅이라는 종목 자체의 특성이기도 하고, 김연아가 박태환과는 달리 세계 최고의 자리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 김연아와 박태환은 신한국인의 표상 -


김연아와 박태환은 진화한 한국인의 표상이다. 그들의 얼굴에선 한의 흔적 따윈 없다. 한없이 밝고 자신감에 넘친다. 굴종 따윈 상상도 못해봤다는 듯한 얼굴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여태까지 언감생심 생각도 못했던 종목에서 놀라운 성적을 내고 있다. 한국인은 이렇게 새로운 영역에서 막혔던 벽이 무너질 때 열광한다. 박찬호가 메이저리그라는 벽을 무너뜨렸을 때, 박세리가 미국 프로골프라는 벽을 무너뜨렸을 때, 한국 축구대표팀이 월드컵 4강이라는 벽을 무너뜨렸을 때, 그리고 박지성이 프리미어리그라는 벽을 무너뜨렸을 때 열광했던 것처럼 말이다.


김연아가 그중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다른 선수들처럼, ‘세계 최고 수준이 되었다’가 아니라, 전 세계를 통틀어 ‘원 톱’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 혼자서 우뚝 섰다. 한국인이 최근 겪고 있는 열패감을 속 시원히 상쇄시켜 주고 있다.


외모의 덕도 빼놓을 수 없다. 김연아의 당당함은 그 외모에서도 드러나는데, 특히 김연아의 한국인답지 않은 체형은 한국인의 오래된 ‘숏다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있다. 숏다리 콤플렉스는 결국 서구 콤플렉스인데 김연아가 서구인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종목으로, 서구인들 본바닥에서 ‘퀸’의 칭호를 받으며 ‘원 톱’이 된 것이다. 그것도 일본까지 제치고서.


지난 한 주 뉴스 속에서 유일하게 빛났던 김연아는 사실 지난 몇 년간 그런 구조 속에서 있어왔다. 이것이 김연아 신드롬의 정체였다. 얼마 전 병원에 갔었는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김연아 경기에 넋을 잃고 빠져드는 모습에서 김연아 신드롬을 실감했었다.


만약 한국이 원래부터 자신감이 넘치고, 먹고 살 것이 풍족하고, 좋은 소식들이 넘쳐나는 나라였다면 일개 종목 세계 1위가 나타났다고 해서 국민적 신드롬이 터지진 않았을 것이다. 김연아의 신드롬이 빛나면 빛날수록 그건 그만큼 한국사회가 어둡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런 열패감 속에서 한국인은 김연아와 박태환이라는 신한국인, 실패를 모르고, 두려움을 모르는 새로운 유전자를 가진 ‘승리의 한국인’에게 열광하는 것이다. 대한민국 60년 만에 가장 진화한 유전자를 표상하는 듯한 김연아. 그가 보여주는 가능성과 승리의 통쾌함. 그 김연아가 살인, 참사, 불황 소식들로 점철된 지난 한 주 속에서 국민을 구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