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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김연아, 빅뱅에게 달려드는 ‘병맛’ 숟가락들

 

한나라당이 당사 회의실에 펼친 홍보물이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 한나라당을 상징하는 파란색 바탕 위에 하얀색 실루엣으로 김연아의 모습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옆에 쓰인 카피는 ‘경제도 김연아처럼’이다.


왜 열심히 잘 운동하고 있는 선수 이름을 가져다가 당 홍보물에 멋대로 쓰나? 이 홍보물이 위하는 것이 진정 한국경제인지, 아니면 정당의 이익인지 삼척동자라도 느낄 수 있다. 정당의 이익을 위해 경제라는 명분을 빌어 국민스타 김연아를 멋대로 이용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에 비하면 최근 시청률만을 위한 무차별 타인 사생활 폭로로 비난 받은 막장 예능이나, 자극적인 설정으로 국민을 바보로 만들고 있는 막장 드라마는 장난 수준이다. 이야말로 진정 막장의 진수, 막장 정치 마케팅의 끝장 아닌가.


타인 사생활 폭로가 비난 받은 이유는, 폭로당한 사람의 명예훼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김연아를 내건 것은, 김연아가 당할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고 김연아의 이미지만을 빼먹으려 한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막장 정치 마케팅이라는 지적을 당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김연아의 이미지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면, 김연아를 모델로 한 공익광고를 제안하면 된다. 물론 사전에 김연아의 동의가 필수임은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이 정도도 선수의 입장을 생각할 때는 부담스럽다. 김연아는 연예인이 아니라 칼날 위에 서서 고도의 집중력으로 세계적 기량을 유지해야 하는 운동선수이기 때문이다. 지나친 기대는 선수의 집중력을 흩뜨릴 수 있다.


한나라당이 한 일의 문제는 이런 수준이 아니다. 한나라당이 김연아의 이미지를 자당 안으로 끌어들인 바람에, 반대급부로 김연아에게 특정 정파의 이미지가 옮아버렸다. 이것은 치명적인 명예훼손이다. 이익은 정당에게, 피해는 김연아에게. 이 무슨 막장 정치인가.

 

- 빅뱅은 또 무슨 죄? -


청와대가 3.1절 및 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나라사랑 랩송 제작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는데, 참여할 가수로 빅뱅을 비롯한 여러 유명가수들이 거론됐다고 보도됐다. 이것은 한국판 ‘위 아 더 월드’ 기획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알려지기도 했다.


‘위 아 더 월드’는 가수들이 아프리카 난민을 위해 자발적으로 노래를 녹음해 이익금을 기부했던 이벤트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환경 관련 이슈로 비슷한 기획이 있었다. 그러나 이건 경우가 전혀 다르다. 정권이 대중음악인들을 동원하는 구조다. 어딜 ‘위 아 더 월드’에 갖다 대나?


이것도 김연아의 경우와 비슷하다. 과거 한국의 독재정권들은 애국심이나 민족이라는 명분을 가져다가 정권의 기반을 다지는 데 이용했다. 그 바람에 피해를 당한 건 ‘애국심’이다. 한국에선 애국심이라는, 자기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사랑하는 지극히 당연한 마음이 언제나 의심 받는 금기로 전락했다. 한 순간 정권의 이익을 위해 국민이 스스로 애국심을 부정하는 이상한 나라를 만든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 또다시 정권이 대중음악인들을 동원해 ‘나라사랑’ 랩송을 띄운다고 하면 국민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 지는 안 봐도 디브이디다. 즉각 떠오르는 것이 전두환 정권의 ‘국풍81’이다.


그 촌스러운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고? 빅뱅도 그렇고, 우리 대중가수들이 무슨 죄인가? 청와대가 빅뱅을 정말로 내세울 생각을 했건 안 했건, 문제는 그 진위여부가 아니다. 왜 대중음악과 애국심을 엮어 구태의연한 ‘쌍팔년도’식 관제 이벤트를 벌이려 하느냐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이건 너무 촌스럽다. 한나라당 홍보물이 김연아에게 민폐를 끼친 것처럼, 빅뱅이건 누구이건 이 ‘나라사랑’ 이벤트에 엮이는 가수에겐 민폐가 된다. 세련되고 쿨한 이미지가 자산인 21세기 가수들에게 촌스러운 관제 이벤트 이미지를 덮어씌워서 또 무슨 욕을 먹으려고 그러나? 이런 식이면 기왕에 있던 나라 사랑하고 싶은 마음도 달아날 판이다.


- 제발 그들을 가만히 두라 -


얼마 전에 다음 달에 있을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하루 전날 미국에서 ‘선전기원 빅토리 콘서트’가 기획되고 있다고 해서 빈축을 샀었다. 이 콘서트는 남의 선전을 기원한다면서, 자기들이 돈을 받으며 표를 판다고 한다!


공연 기획사는 김연아에게 콘서트 참가도 요청했단다. 대회 직전인데도 말이다. 이건 뭐, 선전이고 뭐고 자기들 콘서트 분위기나 띄워달라는 말로밖에 안 들린다. 연예인응원단 사태도 그렇고, 진정한 목적이 응원인지 자기들 이익인지 분간이 안 가는 것이다.


올림픽 대표선수단이 뜨고, 김연아가 뜨니까, 그들이 평생 고생해서 차린 밥상에 자기도 한 숟가락 얹겠다고 달려드는 사람들. 이럴 때 쓰라고 ‘병맛’이라는 인터넷 신조어가 나왔나보다. 난 지금 이 단어를 생전 처음 쓰고 있는데 정확한 뜻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웬지 이 상황의 느낌을 아주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일 것 같다.


정말 안타까운 건 왜 공당이, 그것도 집권 여당이 이 ‘병맛’ 숟가락의 대열에 끼냐는 점이다. 누가 좀 뜬다 싶으니까 이미지 빼먹으려 촐랑댄다는 비웃음 살 일이란 걸 정녕 몰랐단 말인가? 일국의 집권여당이? 나라가 이런 판국인데 ‘나라사랑’ 관제 이벤트 기획하는 청와대도 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