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신사임당이 그려진 5만원권 지폐가 곧 발행된다. 이건 어느 모로 보나 말이 안 된다. 신사임당은 한국에서 ‘현모양처’의 상징이다. 한국 최고액권의 주인공으로 현모양처가 등장하는 것은 지금 시점에 당치도 않은 일이다.


1. 장영실이 있다


한국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기술경쟁력이다. 우리나라가 ‘샌드위치’ 신세라는 경고가 유행이다. 한국사회 주류의 샌드위치 타령은 과한 감이 있다. 이 세상에 1등과 꼴찌 빼놓고는 샌드위치 신세가 아닌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샌드위치라는 말로 국민을 위협하면서 경제정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억압하고, 교육을 그들 입맛대로 재편하려 한다.


그렇게 악용되는 샌드위치 담론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지금 위기인 것도 사실이긴 하다. 한국은 지금 ‘추격의 위기’에 처해있다. 맹렬히 선진국을 추격하던 한국은 1990년대 이후 주저앉았다. 1970년대에 발진시킨 중화학공업 이후에 태동한 산업은 IT산업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 부문은 우리의 기술경쟁력이 취약해 제품 생산의 태반을 일본부품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그 부품들을 가져다 완제품을 조립하는 것은 중국이 맹렬히 우리를 따라잡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봉착한 경쟁력 위기의 핵심이다. 우리가 우리 손으로 부품과 기계 등 정밀제품들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금융버블과 양극화가 폭주하면서 금융서비스업과 ‘사’자 돌림 전문직 종사자들의 나라가 되어간다. 이들은 기술경쟁력과 상관이 없다. 반대로 이공계와 ‘공돌이’들은 점점 한국에서 설 땅을 잃어가고 있다. 몇 년 전엔 우리나라의 두뇌유출 정도가 OECD 2위라는 발표도 있었다. 이공계 유학자들의 귀국율도 날로 떨어진다. ‘공돌이’가 되려는 한국인은 이제 없다시피 하다. 한국의 ‘현모양처‘들은 제 자식을 영어귀족을 만들려는 데만 혈안이 돼있다. 이건 정말 위기다.


한국 최고액권이라면 이런 문제의식을 담아야 한다. 문과가 지배했던 조선, 육사와 법대가 지배했던 한국, 그리고 금융서비스와 외국자본이 지배하는 현재에 필요한 것은 기술력을 가진 ‘우리의 손’이다. 동시에 사회적으론 양극화 해소, 차별 철폐가 당면 과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상징하는 인물이 ‘노비 기술자 장영실‘이다. 그는 노비이면서 당대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만들어내 차별의 벽을 뚫은 인물이다. 국가가 발행하는 화폐를 통해 국민에게 귀감이 될 인물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노비 기술자‘여야 한다. 그것이 현재의 과제에 부합한다.



2. 유관순도 있다


꼭 여성이어야 한다면 그 취지도 이해는 간다. 그렇다면 유관순이 있다. 한국은 아직까지 식민통치의 잔재를 해소하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금융개방과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이 한국의 자산을 접수하면서 신식민구조로 진입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이다.


한국의 산업자본을 일궜던 사람들의 2세, 3세들은 지금 외국자본의 대리인 역할을 하거나 외국유학 바람을 선도하고 있다. 국가의 건전성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는 형편이다. 요즘엔 영어가 국어 위에 서고 있다. 중국문자가 한글을 압도했던 조선시대로 퇴행한다.


지금 필요한 건 국가적 주체성이다. 유관순은 여성이면서 동시에 결연한 주체적 의지를 상징한다. 꼭 여성이어야 한다면 유관순이 더 적절하다.



4. 허난설헌도 있다


신사임당을 단지 현모양처가 아닌 여성 예술가로 보자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면 ‘현모양처 예술가‘인 신사임당보다 시대와 불화했던 천재 예술가 허난설헌이 있다.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은 한국에 본격적으로 여성억압이 시작되던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특히 허난설헌은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시집살이의 고통을 당했던 여성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집은 중국과 일본에서 간행될 정도로 국제적 인정을 받았으나, 한국의 성리학 가부장사회는 그녀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다. 시집에서 ‘며느리’로 살 것을 강요받은 그녀는 일찍 죽고 말았다.


민주노총의 성폭력, 한나라당에서 강연한 대학총장의 성희롱 발언 등 한국사회는 아직까지 가부장적 악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노동유연화, 입시경쟁, 양극화의 가장 큰 피해자도 여성이다. 여성은 ‘저임금 불안정’ 노동의 상당부분을 담당하며 자식 교육비를 벌어댄다.


수백 년 간 고통 받은 여성의 처지를 이제 바꾸면서 동시에 예술성도 놓치고 싶지 않다면, 현모양처 예술가보다 유교 가부장사회에서 고통 받은 여성을 상징하는 허난설헌이 적절하다.



4. 여성 노동력의 관점에서 봐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 이제 곧 노동력 부족 위기에 빠진다. 인구를 지금 당장 늘릴 수 없다면, 가장 빠르게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은 여성 노동력이다.


한국사회에 지금 필요한 여성상은 현모양처가 아니라 당당히 사회활동하는 이미지라는 얘기다. 이런 맥락에서 봐도 현모양처의 대표주자 신사임당이 최고액권 모델로 등극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지금까지 검토한 것처럼 어느 모로 보나 말이 안 된다. 5만원권 모델을 교체해야 한다. 과거엔 이미 발행한 지폐도 곧 사용중지한 적이 있었다. 1962년에 아이와 엄마를 모델로 발행됐던 100환권이 일년도 안 돼 사라진 것이다. 5만원권은 아직 발행도 안 됐다. 그러므로 모델 교체할 시간은 충분하다. 신사임당은 바꿔야 한다.

Posted by 하재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이전 댓글 더보기
  2. 끝난문제 2009.02.27 22:38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이미 끝난지가 옛날인 일. 아무리 말해봐야 소용 없습니다.

    그리고 신사임당은 현모양처 이미지 말고도...예술가로서의 면모도 있구요.

    (제가 이런말 했다고 오해하실지도 모르겠는데...저도 장영실이 실리기를 바라던 사람입니다.)

    무엇보다...이미 끝난 문제.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지폐 바꿀수도 없고...그렇게 하려면 돈 너무 많이 듭니다.

    • 이 의견 반대합니다. 2009.02.28 00:46  수정/삭제 댓글주소

      디자인이 잘못된 단계에서 바로잡아야지.
      발행 시작한 뒤에는 더 비용이 큽니다.

      매몰비용이라고 들어보셨는지?
      이미 들어간 돈, 그렇기 때문에 '포기 못해'하고서는 끝에 가서는 '내가 왜 그랬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금 도안만 나온 단계에서 '아니다'해야 손해가 줄어듭니다.

    • 현 정부는 돈이 남아돈다고 감세까지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디자인 폐기하는 비용 정도는 감수할 수 있다고 봅니다

  3. 화폐 전체를 개혁해야 2009.02.28 00:5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유로와 미국달러를 참고해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유로에서는 색상과 단위 배치를, 미국달러에서는 인물의 중요성에 따른 배치를 말입니다.

    고액권 발행보다는 단위 삭감이 필요합니다. 외국 화폐에 대한 환율이 천 단위를 기록하는 것은 경제 11위 국가에 걸맞지도 않고, 일본이 일만엔을 가지고 있다고 따라갈 필요도 없습니다.

    1) 100:1의 개혁을 포함하여,
    2) 1/2/5 단위로 색상을 만들 것과
    3) 현대에 귀감이 될 만한 인물 및 사물의 논의 및 배치가

    필요하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4. 신사임당이 현모양처이미자는 후대에 만들어진 것 입니다.
    흔히 말하는 시어머니에게 고순고순 하고 지아비 뒷바라지만 하는 현모양처와는 실제 신사임당은 전혀 다른 사람입니다

  5.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손봐야할 부분은 천원, 5천원에 있는 이황, 이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두분 다 대단한 학자시지만, 이번 고액권 후보선정에서 보듯이
    화폐에 들어갈 만한 다른 많은 인물들이 있지 않았습니까..

  6. 외국 사람들이 이 인물은 누구냐고 설명을 요구하면 아들 잘 키우고 내조 잘한 현모양처로 설명하는 것보다는 예술가라고 설명하는게 낫겠지요? 흠... 아무리 우리들의 어머니상이라고 해도 신사임당은 좀 아닌것 같네요

  7. 신사임당이 오만원권에 들어가는거에대해 저도 불만이 많으나
    신사임당은 우리가 알고있는것처럼 순종적인 현모양처가 다가 아닙니다.
    그 당시 여성들은 자기 주장 당당히 펼칠수 잇는 그런 여성들입니다
    그 정점에 섰던게 신사임당이고요
    우리가 알고있는것처럼 옛날 여자들은 모두 조신하다는 둥 그딴 소리는
    임진왜란이후이며 일제강점기때 더욱 심해진겁니다~~
    뭐 그래도 신사임당은 좀 그렇네요...-_-

  8.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네요. 신사임당은 현모양처의 대표상이죠. 글쓴이님의 말처럼 지금 필요한 것은 현모양처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가기술경쟁력이 필요하다는 말에 정말 공감이 가네요. 요즘 여성들을 보면 현모양처나 할란다라며 생각하고, 집에서 놀고 쉬고 하고 싶다는 여성분들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여성이 많은 직장에서 우위에 서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외에 많은 여성들이 현모양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 많아서,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글쓴이님의 말에 정말 공감이 가네요.

  9. 개밥그릇 2009.02.28 21:24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동감합니다. 저도 여성이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신사임당이 들어가는 것 솔직히 갸우뚱 합니다. 냉정하게 말애서 신사임당은 아들 잘키워서 이름 더 알린 인물 아닌가 싶어서 좀 씁쓸합니다. 여성을 넣을려면 저는 유관순 열사 좋습니다. 어린 나이에 당당한 기개가 참 본받을 점이 많으신 분입니다. 아니면 김구 선생님이라든가 신채호 선생님은 어떨런지... 하긴... 헌라이트(?)가 활개치는 이 나라에서 독립운동가가 나올리가 없죠. 저럴려면 5만원권 거부합니다.

  10. 김해병 2009.02.28 21:5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설득력 충분히 있는 글이네요.
    여러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봐도 신사임당은 좀 아닌 듯.
    장영실, 유관순, 김구, 광개토대왕 등 다른 위인들도 많은데 신사임당은 좀 다른 위인들에 비해 포스가 떨어지죠.
    솔직히 위인이라고 분류하는 것도 조금은 이해 안감.
    세종대왕, 충무공 이순신 등 포스 강한 위인들을 벌써 화폐 모델로 써버린 이유도 있겠지만 신사임당은 정말 아니죠~
    그렇게 모델 할만한 사람이 없으면 차라리 동전들처럼 동식물이나 유물, 유적을 넣는게 낫겄다.

  11. 이맹박 2009.02.28 21:52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남편이 이씨니까??????

  12. 너무나 공감하는 글입니다!
    저도 평소에 이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원래 끝까지 5만원권 지폐에 들어갈 여성 후보로서 경합을 벌인 인물은
    신사임당과 유관순, 이 두 인물이었다죠.
    치열한 경합끝에 유관순이 탈락되고 신사임당이 들어가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 신사임당은 조선시대의 성리학적 가치관에서 보았을 때에나 적합한 인물입니다.
    성리학적 가치관을 비하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종교적으로는 유교 사회로 분류될만큼 우리 사회에 유교가 끼친 영향력은 굉장히
    크고, 또 유교가 전근대사회에서 발휘했던 사회유지적 성격은 인정할만한 것이니까요.
    하지만 그 전통을 생각해본다해도 이미 우리 지폐에는 이황과 이이라는 세계적 성리학자가
    둘이나 들어가있지 않습니까.
    게다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성리학적 세계관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구요.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왜 오늘날 우리 지폐에 들어가게 되는 단 한명의 여성이 (좀 억지처럼 들릴지 몰라도 한국의 여성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겠죠) 가부장적 사회에 순응하며 그 윤리를
    철저히 실천했던 신사임당이 되어야 하는지. 그야말로 한국 여성의 경제 활동을 바라는 한편으로는 사상, 윤리적으로는 성리학적 가치관에 따라주길 바라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이 드러나있는 것
    같네요.
    어디서 듣기로는 유관순이 아닌 신사임당이 5만원권에 들어가게 되고, 김구가 들어간 10만원권 발행이 거의 무산되다시피 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의 기득권을 움켜쥐고 있는 친일 세력의 입김도
    상당히 작용했다고 하더군요.
    뭐 정확히 어디서 들었는지 기억이 안나니 신빙성은 좀 떨어집니다만, 지금 나라 돌아가는 꼴을 보면 꼭 설득력없는 말도 아닌것 같습니다.

  13. 여자를 넣을수밖에없었고
    유관순vs신사임당인데 결국엔 신사임당으로 결정됬을뿐이다
    대체 왜 테클을거는데???
    또 남자넣었어봐라 여성부에서 얼마나 난리를쳤겠냐?

  14. 신사임당 2009.03.04 21:5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역시 여자의 적은 여자다..

    난 신사임당이 5만원권 자격이 있다고 본다. 현모양처, 글 그림에 능했고, 뛰어난 자식을 길러냈다.

    그리고 충분히 국민들에게 인지도 있는 위인이다,

    누굴 정했던 이정도 파장은 있다. 다시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어리석은 사람들아...

  15. 배용배 2009.03.04 23:21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개인적인 바램이지만..

    추모태왕

  16. 모지란노가리 2009.03.15 12:35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흠...시대상황에맞춰서 . 바뀌어나가야하는건데.. 안타깝네요.

    이런 어찌보면 사소할수도있는 곳에서부터 신경을 써야하는데..

    안타까워요

  17. 참요천사 2009.03.19 13:23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누군가가 전에 신문기사에 단 댓글 생각나는군요.
    그분 왈
    내 주위에 신사임당보다 자식 학구열 더 높은 사람도 많은데....
    신사임당을 비하하자는 얘기는 아니고 시대상과 많이 맞지 않는 분인 것 같습니다.

  18. 지나가던 학생이 하도 어이없어 한 마디 올립니다.
    먼저 저는 이공계생으로서 장영실에 한 표 던졌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본문의 내용은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합니다.

    제가 문제삼는 것은 일부 몰지각한 댓글들입니다.

    한나치당이 원하는 여성상?
    쥐박이가 그정도밖에 생각을 못함?
    생각짧은 MB정부?

    댓글들을 보니 정치권에 대한 불신 때문에 진실을 왜곡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많이보입니다.
    진실보다는 왜곡을 따르고 비난과 냉소만 즐기실겁니까?




    사람들이 새 지폐 도안갖고 MB 욕하는데.....
    '노무현 전대통령 임기종료 2개월 전'에 급하게 확정시킨겁니다.
    그리고 각종 단체에의해 변경 요구가 있었으나, 한국은행측에서 절대로 바꿀 수 없다고 말했죠...

    이래도 MB 잘못입니까?
    까려면 제대로 알고 까던가 해야지요.
    여러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노무현님 정권이 임기 얼마 안남기고 부랴부랴 만든건데...

    이제 댓글달았던 여러분들은 노무현을 욕할겁니까?
    그래도 MB는 욕해야 살맛나십니까?
    알면서 그러는건지 정말 몰라서 그러는건지 도통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19. 네티즌 2011.04.23 23:36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주소

    맞는 말씀입니다.

    항상 5만원권의 신사임당을 보며

    도대체 왜!

    신사임당을 도안으로 사용했는가 의문이 남습니다.

  20. ♡ 살아있으므로 태양의 따스함을 느끼고 살아있으므로 너의 사랑의 느껴

  21.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