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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개콘 김병만, 우리가 미안하다

 

오늘 낮에 백상예술대상 TV예능부문 작품상을 1박2일이 받을 지 패밀리가 떴다가 받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 기사를 보고 작품상 후보작에 그 두 프로그램만 오른 줄 알았다. 그러려니 했다. 지금은 리얼 예능 패권시대니까. 그저 둘 중에 1박2일만 응원했을 뿐이다.

1박2일을 응원한 이유는 상을 받는 기준이 단지 시청률이면 안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청률 수치대로만 상을 주면 후보고 뭐고 복잡하게 준비할 필요가 없다. 그냥 건조하게 숫자만 보고 상을 주면 된다.

상은 그래선 안 된다. 시청률은 시장에서 결정되는 흥행결과다. 그것엔 돈과 명성이 따라 다닌다. 시장흥행에 성공한 작품은 이미 시장에서 그에 따른 상업적 보상을 자연스럽게 받는 것이다. 시상은 그것과 별개로 ‘의미’까지 부가해 결정해야 옳다.

최근 한국 대중문화 시상식들이 질타 받는 것은 시장에서의 흥행성적과 시상결과의 싱크로율이 100%이기 때문이다. 이러면 시상식이 박스오피스와 별개로 존재해야 할 의미가 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시청률로만 따지면 패밀리가 떴다가 우세하지만, 의미라는 요소까지 합쳐서 1박2일을 응원했다. 내가 읽은 기사의 후보명단엔 무한도전이 없었기 때문에 선택은 쉬웠다. 패밀리가 떴다는 동일한 설정을 반복하는 예능물이다. 그 설정이란 남녀 멤버들이 시골에 가서 재미있게 노는 것이다.

반면에 1박2일은 최근 들어 설정을 창조적으로 변주하는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한국의 명소들을 소개한다든지, 시청자 등 보통사람들의 삶에 밀착한다든지 하는 일반적인 예능에 부가되는 미덕이 있다. 시청률은 패밀리가 떴다가 더 높지만 1박2일이 더 선이 굵다고나 할까? 그래서 수상작으론 1박2일이 적합하다고 봤다.

- 통쾌한 개그콘서트 수상 -

수상 결과를 보니 예능 작품상은 개그콘서트다. 개그콘서트도 후보에 있었는 줄 몰랐다. 내가 낮에 읽은 기사의 기자 눈엔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만 들어왔었나보다. 아예 다른 후보는 ‘무존재’로 기사에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 무존재가 수상한 것이다. 통쾌하다. 작년 이후 한국 대중문화 시상식에 이렇게 통쾌한 수상 결과를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 시상식엔 시청률보다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기준 말이다. 시청률이나 시장에서의 위상으로만 따지면 개그콘서트를 1박2일이나 패밀리가 떴다에 견줄 수 없다. 개그콘서트가 마이너리그라면 1박2일, 패밀리가 떴다는 메이저리그 명문구단이다. 그 개그콘서트가 상을 받았다.

개그, 코미디의 존재감이 땅에 떨어진 시대에 이것은 통쾌한 사건이다. 패밀리가 떴다와 1박2일의 차이보다 더 큰 차이가 리얼 예능과 개그콘서트 사이에 존재한다. 리얼 예능은 정해진 설정과 캐릭터를 반복 변주한다. 웃음도 ‘우연’이 만들어낸다.

반면에 개그콘서트는 철저히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온전한 문화적 창조물인 것이다. 한국인은 요즘 창조물보다 우연적 요소가 강한 예능에 열광한다. 그러나 우연적 요소만으론 장기적으로 창조적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다. 리얼 예능과 코미디·개그프로그램은 함께 가야 한다.

하지만 최근 개그 프로그램은 2부리그 취급을 받았었다. 인간의 창조적 노력이 폄하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장기적으로 한국 대중문화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다. 창조성의 원천이 말라버리면 예능과 같은 파생부문이 장기적으로 고사할 것이라는 건 명약관화한 일이다. 코미디로 단련되지 않았다면 오늘날의 유재석, 강호동이 가능했을까?

기자가 아예 후보로 언급조차 안 할 정도로 개그프로그램은 우스운 존재로 추락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개그 코미디 프로그램의 몰락을 개탄하는 글을 썼었다. 하지만 백상은 개그콘서트에 작품상을 안김으로서 의표를 찔렀다. 통쾌하다. 모처럼 환영할 만한 수상 소식이었다.

- 김병만, 우리가 미안하다 -

이번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 예능상은 김병만이 받았다. 김병만은 “수근아, 진짜 미안하다,,, 내가 받아서”라고 수상소감을 밝혔다고 한다. 아니다. 김병만은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한국사회가 김병만에게, 그리고 개그맨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얼마 전에 국민적인 화제가 된 1박2일 시청자특집 편에 한민관을 비롯한 개그콘서트팀이 등장했었다. 그들은 개그콘서트의 ‘메인’이었다. 하지만 리얼 예능 속에서의 그들의 위상은 ‘안습’이었다.

1박2일뿐만이 아니다.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공통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다. 개그맨은 2등 연예인처럼 군다. ‘예능인’이 그 바닥의 1등 시민이다. 하지만 밤을 새가며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건 개그맨들이다. 예능인은 순발력 위주다. 왜 순발력이 창조성 위에 서야 하나? 이상하다. 하지만 한국의 현실은 그렇다.

패밀리가 떴다보다 1박2일이 더 창조적인 변주를 한다. 그것보다 무한도전은 더 창조적인 변신을 거듭한다.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창조, 피나는 산고를 개그맨들은 매주 치러낸다. 김병만의 달인 코너는 매회 다른 이야기를 창조해내는 대표작이었다.

사람이 언제나 웃길 수는 없다. 10가지를 창조하면 그 중에 8가지는 안 웃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노력 자체가 장기적으로 우리 대중문화의 자산이 되는 것이고, 그런 창조를 관대하게 봐주는 대중이 결국 장기적으로 그 과실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한국 대중은 예능이 주는 감각적인 재미에만 취해 창작자들을 멀리 했다.

인기와 지명도만으로만 보면 당연히 1박2일에 출연한 이수근이 위다. 그러나 시상식은 이미 말했듯이 인기만으로 상을 줘선 안 된다. 매주 피가 마르는 산고를 치러낸 개그맨을 격려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창작자에게 평소에 그에 상응하는 대우가 있었다면 김병만이 이수근에게 미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리얼 예능이 마치 귀족사회 1부리그고 개그맨들은 평민 취급하는 분위기가 김병만으로 하여금 상을 받고도 마치 제 자리가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한 것이다. 내가 읽은 기사의 기자가 개그콘서트를 무존재 취급한 것은 그런 세태의 반영이었다.

김병만이 아니라 한국사회가 미안한 일이다. 개그맨들에게,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미안한 일이었다. 예능의 재미에만 취해 대중예술의 원천 생산자들에게 소홀한 우리 자신에게 말이다. 예능이 개그맨들과 가수를 휘하에 거느린 지금의 풍경은 확실히 기괴하다. 이런 풍경을 만든 건 결국 우리 자신이다. 김병만이 아니라 개그맨들을 그렇게 위축시킨 우리가 미안해할 일이었다. 백상예술대상은 모처럼 상찬할 만한 시상을 했다. 이번 시상이 아이디어 짜내기로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낸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상이 되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