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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강호동에서 개그콘서트로, 백상의 선택

 


#상황 1.


 글자 그대로 현물 기초상품에서 ‘파생’된 금융상품이 파생상품이다. 이 파생상품에서 생겨난 공황이 현재의 세계금융위기다. 미국의 부동산 대출을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이 거대한 거품을 만들어냈다. 그 거품은 너무나 화려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온 세계가 그 신기루를 좇았다. 현물 생산부문에 대한 보호를 버리고 금융투기에 몰두한 것이다.


 그러다 미국 부동산 경기라는 현물시장이 냉각되자 여기에서 파생된 금융거품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렸다. 약 2년여에 걸쳐 여기에 깊은 연관을 맺던 투자금융기관들이 천천히 무너져갔다. 그리고 이제 상업은행과 일반 제조기업이 무너지려 하고 있다. 급기야 그런 파생상품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살았던 우리의 청년들이 실업자가 되고, 아버지, 어머니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현물자산에서 파생된 파생상품이 거꾸로 현실세계를 쥐고 흔드는 것이다. 현물 위에 군림하는 파생의 화려한 질주는 우리 세계를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상황 2.

 버라이어티 예능은 대중예술의 기초분과에서 ‘파생’된, 말하자면 응용종합 장르다. 기초과학에서 파생된 응용과학과도 같다. 기초분과가 풍성하게 발전하면 예능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가수, 배우, 코미디언이 각자의 분과에서 놀라운 성취를 이뤘을 때 그들이 초대된 토크쇼나 버라이어티 예능 프로그램도 자연스럽게 융성하는 것이다. 또, 각각의 분과에서 축적된 예술적 역량은 자연스럽게 예능에 반영돼 대중예술을 풍요롭게 한다.


 그런데 한국에선 이 관계가 역전됐다. 대중음악과 코미디(개그)라는 기초분과는 위축되고 있는데, 예능만 화려하게 도약하는 ‘파생 거품’이 일어나고 있다. 버라이어티가 융성할수록 기초분과는 피폐해진다. 그렇게 역전된 관계 속에서 예능은 기초분과 위에 군림한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것이다. 파생된 예능이 기초분과를 틀어쥔 형국이다. 우리 대중문화계는 기초분과에 대한 보호를 망각하고 예능의 화려함만을 좇고 있다. 마치 화려한 금융상품만을 좇았던 월가처럼.



- 강호동에서 개그콘서트로, 2009년의 선택 -


 2008년 제44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대상 수상자는 강호동이었다. 당시 언론은 이를 두고 ‘백상 최대의 이변이 벌어졌다’며 놀라워했다. 예능 프로그램 MC가 대상을 받은 건 44년 백상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다. 강호동의 대상 수상은 ‘예능 르네상스’를 의미한다며 축하하는 분위기였다.


 나는 당시 이것을 ‘예능 패권주의’가 광포하게 질주하는 시대를 상징하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물론 강호동은 대상을 받을 만한 사람이고, 예능 MC가 대상을 받지 말란 법도 없다. 그것과는 별개로 그만큼 이 시대가 이례적인 예능의 융성기라는 걸 반영하는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융성은 다른 분과의 위축을 토대로 한 것이었으니, ‘르네상스’라는 긍정적인 표현보단 ‘패권주의’라는 부정적인 표현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때 예능 작품상은 <무한도전>이 받았다. 남자 예능상은 박명수였다. 여자 예능상은 신봉선이었는데, <개그콘서트>가 아닌 <해피투게더> 출연이 시상의 이유였다. 버라이어티 예능이 싹쓸이를 한 것이다. 2009년에 <무한도전>의 인기를 이어받은 것은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이다. 올해도 여전히 버라이어티 예능은 질주했다. 그러므로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 라인에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매체들은 예측했다. 2008년의 결과를 보면 당연한 예측이었다.


 하지만 백상은 사고를 쳤다. 올해에도 언론은 시상 결과가 ‘의외’라는 보도를 내보내야 했다. 백상이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개그콘서트>에게 TV부문 예능 작품상을 안긴 것이다. 양 공중파 방송사에서 MC들이 각각 대상을 받았던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의 대결구도만을 주목했던 언론들이 백상에 보기 좋게 당했다. 연기대상을 송승헌이 받는 의외성은 유감스럽지만, 백상이 2009년에 준 의외성은 통쾌했다.


 남녀 예능상은 각각 <개그콘서트>의 김병만과, 줌마테이너 열풍의 상징인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박미선에게 돌아갔다. 2008년의 선택과 확연히 대비되는 결과다. 강호동이 <개그콘서트>로 바뀌고, 박명수가 김병만으로 변했다. 백상은 2009년에 화려한 파생부문을 버리고 기초분과에 대한 격려를 선택했다.


- 패권주의, 혹은 제국주의 -


 앞에서 ‘패권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그것을 ‘제국주의’라 해도 좋다. 버라이어티 예능이 여타 분과를 지배하며 군림하고 있으니 패권주의 아니면 제국주의다. 가수들의 백기 항복과 종속적 번영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8년에 백상예술대상을 받은 강호동의 <황금어장>에선 가수들의 항복 선언이 잇따랐다. 변진섭이 나와 TV예능 활동을 소홀히 하고 음악활동만 한 자신을 반성했다. 이승환도 나와서 ‘식구’들 먹여 살리려면 이길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김종서도 예능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서약을 했다. 이승철은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는 하소연을 하며 대중음악계의 추락한 처지를 보여줬다.


 버라이어티 예능의 패권 아래 들어온 가수들은 정체성을 잃은 대신에 호사를 누렸다. <1박2일>은 4명의 가수와 한 명의 개그맨이 차출돼 황제 강호동과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다. <우리 결혼했어요>는 ‘가수 결혼했어요’라고 해도 될 만큼 가수들 천지였다. 솔비, 앤디, 알렉스, 크라운제이, 서인영, 손담비, 환희, 화요비, 황보, 김현중 등.


 가수가 버라이어티 예능에서 활약하는 것을 두고 가수들의 전성기가 도래했다는 황당한 기사도 여러 차례 나왔다. 언론들은 또 음악인으로서 방송사와 대립한 서태지에게 ‘건방지다’고 했는데, 이는 가수의 위상이 얼마나 추락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기초분과를 ‘식민지배’하는 버라이어티 예능의 패권주의를 여실히 드러내는 또 다른 예가 바로 개그맨들의 처지다. 버라이어티 예능에 출연한 개그맨들은 그렇게 궁색해보일 수가 없다. 개그맨이 개그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왜 다른 곳에 와서 아쉬운 소리를 한단 말인가? 가수들처럼 코미디 부문도 추락했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 예능은 그런 ‘하위 분과’에서 입맛에 맞는 인재들을 차출해 ‘귀족’으로 만들어 준다. 차출된 신귀족은 자신의 원래 분과로 금의환향해 칙사 대접을 받는다. 이것이 2009년 대중문화판의 풍경이다. 이 속에서 백상이 <1박2일>과 <패밀리가 떴다>를 제치고 <개그콘서트>를 선택한 것은 ‘전복’이었다. 그래서 통쾌한 것이다.


 창조성은 종자와 같다. 종자를 당장 배불리 먹을 순 없지만, 오랫동안 인내하며 잘 기르면 결국 우리에게 풍요로움을 안겨준다. 각각의 기초분과는 창조성을 품는 곳이다. 그 종자들이 잘 자라면 파생부문은 저절로 번영할 것이다. 그러나 파생부문이 폭주해 꼬리가 몸통을 흔들게 되면, 파국에 이르는 ‘거품’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