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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연예인착취, 기획사만 잡으면 해결되나

 

성상납 문제로 연예인 착취 문제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노예계약이라든가, 신인 배우들이 당하는 부당한 대우들이 이슈로 불거질 때마다 항상 반복되는 일이다. 원인분석과 대안도 언제나 비슷하다.


기획사들의 불투명한 운영행태가 문제이니 제도적으로 규제해야 한다는 얘기, 한국 연예산업이 외형에 걸맞는 제도와 의식의 성장을 이루지 못했으므로 하루 빨리 선진화해야 한다는 얘기, 연예인 착취구조를 밝히고 일벌백계해야 한다는 얘기, 젊은 연예인을 우습게 생각하는 풍조를 고쳐야 한다는 얘기 등이다.


맞는 말이다. 맞기는 한데 이것들이 다는 아니다. 혼탁한 사교육 문제를 사교육 시장의 투명화와 제도적 선진화 등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것과 같다. 물론 아이들의 인권을 짓밟고 돈을 갈취하는 악덕 학원들이 있다면 규제해야 하는 건 맞다. 그렇게 해서 투명하고 선진적인 사교육 기관들이 생겨나면 사교육 시장의 문제는 사라지는 것일까?


사학개혁을 반드시 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것이 한국 교육의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구조와도 같다. 지난 민주화 정부들은 사학개혁에 전력투구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교육자유화를 추진했다. 개별 학교 개혁에 치중했던 것이다.


한국 교육의 구조적인 문제는 개별학교의 부패가 아니라 모든 학교들의 자율적인 시장경쟁에 있다. 그 속에서 단 하나의 일류대, 그 학교를 둘러싼 몇 개의 귀족학교를 모든 학생들이 열망하기 때문에 초유의 경쟁률이 생겨난다. 이것이 입시경쟁이라는 것의 정체다.


개별학교가 아무리 투명화 되고 합리화 되더라도,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문제는 지속된다. 사태의 핵심은 ‘초유의 경쟁률’에 있다. 극히 좁은 문에 모두가 들어가려 경쟁하는 한 어떤 식으로 학교와 학원이 변하더라도 사태는 악화될 뿐이다. 지난 민주정부들은 개별학교 투명화(사학개혁), 자율화, 다양화, 내실화 등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결국 실패했다.


- 모두가 미쳐 돌아가는 판 -


연예계에서 벌어지는 일들도 과도한 경쟁률에서 비롯된다. 기획사 권력이 문제라는 것은, 거꾸로 연예인의 지위가 낮다는 걸 의미한다. 당연하다. 노동예비군이 많을수록 노동자의 지위가 떨어지고 임금이 삭감되는 것처럼, 연예인예비군이 많아서 경쟁률이 올라갈수록 연예인의 지위는 떨어지게 된다.


연예인 지망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시대다. 그에 따라 기획사도 난립한다. 당연히 시장질서가 문란해진다. 과거엔 일부 ‘날라리’들만 연예인을 지망했었다면 이젠, 그 범위가 정말 광범위하다. 한 초등학생 설문조사에서 연예인이 희망직업 1,2위를 다툰다고 나온 적도 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부모들도 자식을 연예인 만들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것은 최근 연예인들의 고소득이 화려하게 매체를 장식하고 나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과거에 연예인이 밤무대나 전전하며 추레하게 사는 인생이라고 여겨졌을 때는 사람들이 연예인을 열망하지 않았었다. 배용준 등이 벤쳐부자 대열에 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연예인이 ‘인생역전’이 가능한 수직 엘리베이터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자식이 서울대를 못 갈 바엔 연예인이 되어도 좋다는 부모들이 나타났다. 어차피 모로 가도 잘 먹고 잘 살기만 하면 되니까. 그 코스가 학벌코스이건, 연예코스인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사회양극화와 민생파탄은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욕망을 키우면서, 동시에 잘 먹고 잘 살 코스들을 줄여나가고 있다. 그래서 몇 개 안 남은 코스를 향한 열망이 점점 커져 가는데, 전통적인 학벌코스와 사자 돌림 전문직, 소심하게 공무원, 그리고 화려한 연예스타와 운동스타를 향한 열망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구조에서 마치 과거에 로또 상금이 400억 원 대까지 누적됐을 때 국민들이 로또에 미쳤었던 것처럼, 연예스타 대박의 규모가 수백억 원 대까지 치솟자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연예계에 미치는 것이다. 미쳐 돌아가는 판에서 온갖 사건사고가 터지는 것은 당연하다.


- 기획사만 규제할 것이 아니라 -


한국의 젊은이들이 꿈꿀 수 있는 미래는 점점 축소되고 있다. 특히 여성이 자부심을 느끼며 동시에 안정된 소득까지 누릴 수 있는 길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한 세대만 더 지나면, 보다 심화된 형태로 빈곤이 대물림된 남미식 빈민들이 드디어 등장할 걸로 예측된다.


남미의 빈민들은 미래가 없기 때문에, 여자는 성형수술로 외모를 가꾸며 연예인을 꿈꾸고, 남자는 축구공과 야구공을 들고 프로스타를 꿈꾼다. 그것이 유일한 ‘인생역전’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지금처럼 교육비가 올라가면, 어느 순간 일반 국민들이 더 이상 교육경쟁에 뛰어들기를 포기하게 될 것이다. 그때 젊은이들이 꿈꿀 것은 스타의 길밖에 없게 된다.


요즘 문제가 된 성상납 사건은 연예인이 강제로 당한 것이지만, 무조건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이가 자신의 육체적 매력을 자발적으로 이용하는 경우가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악덕 기획사는 그들의 욕망을 이용해 연예인을 착취하는데, 이런 악덕기획사를 그때그때 단속해도 욕망의 폭주를 막을 길은 없다.


민생파탄으로 내수가 줄어드는데, 그것은 문화시장의 파이축소로 나타난다. 지망생은 늘어나는데 먹을 떡이 줄어드는 것이다. 경쟁률이 더욱 상승하고, 그나마 그 떡은 소수 스타가 대부분 독점한다. 게다가 장르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날로 막장화하는 경향은 결국 ‘몸’이라는 1차적인 상품의 경쟁만을 격화시킬 것이다.


기획사 단속이나 규제를 하지 말자는 말이 아니다. 그런 건 시장합리화를 위해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진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처럼 양극화가 진행되고, 청년들이 벼랑끝으로 내몰리면 결국 스타를 꿈꾸거나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민생이 피폐해질수록 사람들의 돈을 향한 열망이 커지는데, 그건 다시 화려한 생활을 동경하는 젊은이와 돈을 앞세워 인간을 착취하는 자들을 양산하게 된다.


그러므로 국가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국민 빈곤화, 불안정화를 막는 일이다. 교육과 함께 이것이 만악의 근원이다. 그런데 거꾸로 친부자 정책이 추진되며 국민 삶의 불안정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동시에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교육파탄도 진행된다. 이런 식이면 아무리 기획사들을 단속해도 문화계는 무너질 것이다.


게다가 더욱 황당한 것이 있다. 언제나 지적되듯이 기획사들의 영업행태가 후진적인 이유는 그들이 자율적으로 영업했기 때문이다. 국가가 규제하지 않는 시장에 정의는 없었다. 연예계뿐만이 아니라 모든 부문에서 약자는 규제를 통해서만 보호받는다. 그러나 현 정부는 오로지 ‘자율’과 ‘탈규제’만을 주장한다. 강자에 의한 약자 침탈을 막을 수 없다. 기획사 규제를 넘어 한국경제사회 전체에 약자를 보호하는 규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