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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일밤 대망 PD는 건방지고 MC는 희망이

 

한국인은 건방지거나 어설픈 것을 싫어한다. 미국이라면 건방진 것도 일종의 개성으로 비춰질 수 있겠다. 그러나 한국인은 건방진 것에 대한 적대감이 상당하다. 어설픈 것은 말할 것도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설픈 것을 좋아라하는 경우는 없었다. 요즘 대중이 아무리 ‘날 것’, ‘거친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것이 ‘어설픈 예능’에 대한 용납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야심차게(?) 선보인 <MC생태보고서 대망>은 이 두 가지, 즉 건방진 것과 어설픈 것을 동시에 보여줬다. 게다가 그것을 PD가 직접 나서서 주도했다. PD가 이렇게 전면에 나서서 프로그램을 말아먹는 건 드문 경우다.


<명랑히어로>의 연출자인 김유곤 PD도 과거에 코미디 프로그램에 직접 등장해 시청자에게 괴로움을 줬었다. 하지만 그땐 김유곤 PD가 등장하는 순간만 괴로웠을 뿐이다. <MC생태보고서 대망>에선 PD가 전면적으로 개입해서, 전면적으로 말아먹었다.




1. 어설픔


PD가 두렵건 말건 대중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대중이 PD가 두려워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은 어떤 조건이 충족됐을 때뿐이다. 바로 대중이 그 PD에게 감정이입했을 때다. 그땐 PD가 두렵거나 슬퍼하거나 하는 것에 대중이 함께 일희일비할 것이다.


우리 국민들이 요즘 감정이입하고 있는 김연아가 ‘신정환이 나를 두렵게 한다’라고 했으면 국민들이 화들짝 놀라며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그러나 ‘듣보잡’ PD가 ‘먹고 살 걱정 없는 신정환이 나를 두렵게 한다’라고 내레이션 해봤자, 시청자 입장에선 ‘그래서 뭐?’. 남 얘기일 뿐이다.


문제는 그 누구도 관심 없는 PD의 정신세계를 왜 시청자가 공중파를 통해 봐줘야 하냐는 거다. 그 육성까지 직접 들으며! PD의 지나친 돌출이다.


윤손하를 소개하면서도 PD가 ‘난 아직 일본 방송을 본 적이 없으므로 (윤손하에 대해선) 판단보류다’라는 내레이션을 내보냈다. 여기서도 ‘나’라는 표현이 대놓고 등장한다. 개인 칼럼에서야 ‘난 이렇게 느꼈다’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으로 그러는 것은 학생들의 습작이나, 다큐멘터리, 영화 등에서나 하는 일이다.


<MC생태보고서 대망>의 대책 없는 중구난방식 진행, 즉 리얼이면 다 된다는 식의 진행과 맞물려 ‘나’의 돌출은 휴먼다큐나 작가주의 작품이라기보다 마치 학생의 습작같은 분위기를 형성했다. 그것은 시청자로 하여금 ‘이 프로그램은 어설프다’라고 느끼게 한다.


공중파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메인MC의 전작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데도 태연히 PD가 자신의 육성으로 윤손하의 전작을 보지 않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염경환이 <명랑히어로>에서 어설픈 개그를 꾸며내다가 김구라, 지상렬 등으로부터 질타를 받았었다. 메인MC의 전작을 모른다는 내레이션도 시청자에겐 어설픈 개그처럼 느껴질 뿐이다.


만약 그걸 사실이라고 받아들인 시청자가 있다면, 프로그램을 더욱 어설프게 느꼈을 것이다. PD가 MC가 누군지 파악도 못한 상태에서 일단 카메라부터 돌리고 보는 콩가루 프로그램이라는 소리니까. 어느 모로 보나 어설프다.




2. 건방짐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전진은 주도권 다툼을 벌려 둘 사이에 끊임없는 신경전을 조성한다. 그 때문에 이 커플은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하는데, 그 결과가 이시영에 대한 비난으로 나타난다. 이시영도 물론 상당히 특이한 성격이긴 하지만, 전진의 끝없는 보채기와 실없는 장난이 원인을 제공한 측면이 크다.


<MC생태보고서 대망>의 PD는 전진 곱하기 100배다. 그런데 당하는 MC들은 이시영처럼 나름 문제 있는 사람이 아니라,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이다. 그런 MC들을 상대로 ‘말도 안 되는‘ PD가 주도권 싸움을 걸었다. 이건 건방지다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말도 안 되는’ PD라고 한 건, 그 PD가 정말로 그렇다는 말이 아니라 프로그램 상에서 그렇게 비쳤다는 말이다. 그 PD는 희대의 천재일지도 모른다. 그런 건 어차피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프로그램에 비친 PD의 모습은 그야말로 엉터리였다. 사전에 아무 것도 기획하지 못한 상태에서 현장에서 대뜸 카메라부터 돌려대는 PD가 세상에 어디 있나? 그렇게 자기 일도 제대로 못하면서 MC들을 상대로 주도권 다툼이나 벌이니 시청자에겐 짜증이 되는 것이다.

  

초기 식사할 때 ‘저라고 왜 강호동 유재석과 하고 싶지 않겠습니까?’라며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망언을 내뱉었다. 하지만 이 정도는 방송을 전제로 한 상태에서 웃기려고 한 말이라고 이해해줄 수 있었다. 이것과 똑같은 발언이 <절친노트>에서 나온 적도 있으니까.(그때 꽤 웃겼었다)


하지만 <절친노트>에서 그 말을 한 사람은 출연자였는데, <MC생태보고서 대망>에선 PD라는 게 다르다. PD가 연출력으로 안 웃기고, 직접 출연해 말로 웃기려고 하면 작품은 삼천포가 가게 된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에서 PD들은 자기들끼리 웃기는 설정까지 하는 것 같다. 아무튼 여기까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문제는 점점 더 심각해졌다.


자기의 권력을 확고히 하기 위해 MC들에게 어쭙잖은 파이팅 포즈를 시키고, 그걸 성실하게 수행하는 MC들을 보며 “흐흐 나한테 잘 보이려고 난리가 났다”며 좋아하는 모습은 ‘4가지’없는 철부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PD들이 꼽은 ‘예능계가 넘지 못한 산’ 리스트를 MC들이 못 맞췄다고 한심해하는 내레이션도 황당했다. 아니, PD들의 생각을 왜 MC가 따라가야 하나? PD들 생각에 힘든 예능 아이템이 있는 것이고, MC 생각에 힘든 아이템도 있는 것이다. 둘 중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다. 하지만 <MC생태보고서 대망>은 PD들의 설문이 정답이고 그걸 못 맞춘 MC들이 한심하다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그때까지 PD의 무책임한 행태와 맞물려 이것도 역시 PD를 건방지게 보이도록 했다.


이런 상황에서 PD가 자꾸 끼어들어 MC들의 말에 안 웃긴다는 내레이션을 내보낸다. 이미 시청자는 불쾌한 상황이다. PD가 ‘안 웃긴다’할 때 시청자는 ‘짜증난다, 당신한테’하게 된다.



- MC들은 희망 -


반면에 MC들은 희망을 보여줬다. 이들이 이 프로그램에서 보인 것은 ‘비상한 각오’다. 몸을 던지고 망신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웃기고야 말겠다는 각오. 그것이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미덕이다.


PD의 건방짐은 반대급부로 MC의 호감도를 상승시켰다. 이것은 의도한 것이라기보다 예기치 않은 부산물로 보인다. 점점 권력자처럼 느껴지던 한국 최고의 MC들이 초짜 PD의 황당한 지령에 졸병처럼 따르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은 그들을 더 친숙하게 느끼도록 했다. PD가 건방져지면서 MC가 안 건방져진 것이다.


특히 오만하거나 안일한 것처럼 보였던 김용만과 탁재훈이 망가지는 모습은 이들에겐 보약이었다. 최근 <명랑히어로>에서 후배들에게 ‘씹힌’ 이경규는 생동감이 있었고, 후배들이 대우해준 최양락은 존재감이 빈약했다. 김구라는 이경규에게는 ‘씨’라고 막 부르면서 최양락에게는 ‘선배’라고 했는데, 그렇게 존중받을수록 시청자로부터는 멀어진다.


김용만과 탁재훈은 브라운관 속에서 격하되면서, 브라운관 밖 시청자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PD가 브라운관 속에서 스스로를 높여 비호감이 된 것과 정반대의 이미지 효과다.


<MC생태보고서 대망>의 미래를 현재로선 예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PD의 과다한 돌출을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MC들의 자세는 좋다. 이 프로그램의 PD에겐 새로운 양식에 대한 야심과 의지가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좋다. 시행착오가 있더라도 새로운 시도를 받아줄 관용도 필요하다. 그 시도가 건방짐과 어설픔이 아닌 방식으로 신선함을 줄 수 있을 때 프로그램은 성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