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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연예계 추문 근본적인 문제는


성상납 사건으로 연예계 추문이 다시 불거졌다. 연예계 추문은 이번처럼 성상납이나 불공정계약의 문제로 나타난다. 힘이 없는 자가 힘을 가진 자에게 성을 제공하거나, 폭행 등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내용들이다.

성상납은 워낙 비밀스러운 일이라서 그 내용이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불공정계약의 문제는 사례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솔비는 과거 기획사로부터 감금을 당해 탈출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이돌 그룹이었던 클레오의 멤버도 비슷한 고백을 했다. 원티드의 멤버도 과거에 감금과 폭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그에 따라 연예계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드높다. 대체로 진상을 드러내 일벌백계해야 한다, 남성들의 여성관과 접대문화를 개선해야 한다, 기획사들을 단속하고 규제해야 한다, 정당한 계약문화와 선진적인 기획사 영업 방식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다.

모두 맞는 말이다. 특히 기획사들을 단속하고 규제 제도를 정비하는 것은 실질적인 차원에서 당장 실행할 수 있는 일이고, 문제제기도 이 부문에 집중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근본적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연예인 지망생과 신인 연예인이 당하는 설움을 ‘표준계약서’가 해결해줄 수 있을까?

-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이 문제다 -

100만 연예인 지망생 시대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가요계가 어렵다는데도 가수 지망생만 10만에 달한다고 한다. 회원이 10만을 넘는 연예인 지망생 카페가 활동하고, 연예인에 환호하며 동시에 연예인을 꿈꾸는 열혈 팬클럽의 괴성은 나날이 커져만 간다. <개그콘서트>에선 요즘 청소년들 열에 아홉이 연예인을 꿈꾼다고 꼬집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인 것이다.

경쟁률이 너무 높다. 일반인에서 연예인이 되기까지, 그리고 연예인에서 스타가 되기까지 엄청난 경쟁을 이겨내야 한다. 이렇게 너도나도 연예인을 열망하며 부나비처럼 달려드는 지망생들은 결국 연예산업계의 ‘봉’일 수밖에 없다. 신인 연예인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 것은 그 지위가 낮기 때문인데, 그것은 꼭 계약서 때문만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숫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공급초과가 시장가치하락으로 이어진다는 건 경제법칙이다.

그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에 비해 그들이 누릴 것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일단 대중음악시장은 붕괴됐다. 아이돌 가수의 화려함을 보고 연예인을 지망하는 10대들이 부지기수지만, 그들이 안정된 부를 누릴 가능성은 극히 낮다. 국내 3대 아이돌 기획사가 작년에 모두 적자였다. 가수들의 소득이 대부분 유통과정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스타 가수조차 빈곤을 호소하고 있다.

영화 쪽도 점점 위축되고 있다. 드라마 시장도 마찬가지다. 최근 <꽃보다 남자>는 과도한 PPL 광고로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 판권판매만으로는 제작비 회수조차 안 되는 상황이다. 거기에 정규 CF 판매가지고도 이익을 확보할 수가 없다. 결국 변칙 광고에 의지하게 되는 것이다. 그만큼 시장상황이 열악하다. 이것은 연예인들의 입지가 점점 줄어든다는 뜻이다.

화려함에 대한 열망과 현실과의 큰 차이는 예술활동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메워질 수밖에 없다. 기획사는 연예인들을 내돌리거나 금융적 우회도로를 모색하게 되고, 연예인 지망생은 예술활동이 아닌 자신의 다른 매력을 통해 그 화려함에의 열망을 실현하려고 하게 된다. 그에 따라 스타로 가는 극히 좁은 통로를 장악하고 있거나, 자본을 가진 측의 권력은 점점 강해지고, 이런 힘의 불균형은 결국 이번 같은 파열음을 내게 마련이다.

IMF 때 절감했듯이, 시장상황의 악화는 양극화를 부른다. 즉 빈익빈부익부가 심화되는데, 연예계에서 이것은 스타권력의 증대로 나타난다. 그에 따라 연예인 지망생을 끌어들이는 스타의 빛은 더 눈부시게 된다. 따라서 연예인 지망생이 늘어난다. 반면에 스타권력 증대의 반대급부로 연예인 지망생들의 입지인 신인 연예인의 위상은 하락한다. 즉 경쟁률은 더 올라가고, 지위는 더 하락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계약서 등 제도정비만으로는 뒤집을 수 없다. 계약서와 상관없이, ‘너 뜰려면 이 자리 가야 한다’는 말 듣고 안 갈 사람 드물고, ‘돈 필요하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말 듣고 거부하기 힘들다.

- 사회경제적 토대가 문화융성의 근본 -

연예인 지망생을 늘리는 원인과, 대중문화산업을 붕괴시키고 있는 원인은 같다. 국민이 빈곤해지고 문화가 척박해지는 것이 그 이유다. 빈곤하고 미래가 없는 국민은 결국 연예스타 혹은 스포츠스타를 꿈꾸거나 범죄를 저지르게 된다. 남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그리고, 문화성이 척박한 곳에서는 예술적 재능보다 1차원적인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몸’이 중요한 자원이 된다.

언론들의 보도태도도 여기에 한몫한다. 한류스타의 화려한 면만을 부각시키는 보도는 그렇지 않아도 절망에 빠진 국민들을 달뜨게 만든다. 삶이 불안할 때 도박에 빠지는 것처럼, 화려한 대박의 유혹에 국민을 빠뜨리는 것이다. 이것은 연예인 지망생과 기획사 업자들에게 모두 영향을 미친다. 시장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는데 거꾸로 대박을 향한 열망은 커지니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다.

한국의 10대들은 현재 지옥에 살며 미래의 불확실성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학교는 이미 공황상태다. 탈학교 10대가 수만을 헤아린다. 고등학생의 20%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다. 10대의 미래는 한 단어로 표상된다. 바로 ‘청년실업’이다. 얼마 전엔 한·중·미·일 4개국 중에 한국 청소년이 가장 미래불안에 시달린다는 연구발표도 있었다. 이런 속에서 아이들은 맹목적으로 스타를 열망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인이 모두 빈곤해지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가 상대적으로 빈곤해질 때 소수는 상대적으로 부유해진다. 이른바 양극화다. 그에 따라 소수의 힘은 커지며, 빈곤한 다수의 처지는 다급해진다. 이 구조가 연예계에 투영되면 다수 신인 연예인과 소수의 권력관계가 된다.

국민들이 보다 여유 있게 살면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해 문화시장을 키우고, 10대들이 안정된 학교생활을 하면서 다양한 사회진로를 꿈꿀 수 없는 한, 연예계 러시와 문화계 추락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사회경제적인 토대가 받쳐줘야 문화가 사는 것이다. 문화적 척박함은 연예인을 예술적 전문직이 아닌 육체의 매력을 돈으로 바꾸는 직종 정도로 여기게 만들고, 그것이 온갖 문제를 양산한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반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암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