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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무한도전이 살고 우결이 죽는 이유

 

정형돈이 열애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데도 우결에서 버젓이 정형돈이 태연과 사랑행각을 벌이고 있다. 물론 앞으로 하차할 예정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시청자들은 여전히 정형돈과 태연의 사랑놀이를 지켜봐야 했다.


제작진한테도 여러 가지 사정은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 출연자가 당장 하차하면 공백을 메울 길이 없다. 하차할 땐 하차하더라도 인수인계 시기까지는 시간을 끌어주는 것이 프로그램의 매끄러운 진행을 위해 좋은 일이다.


그래서 정형돈의 열애사실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의 완결성을 위해 시청자는 정형돈의 가짜 사랑행각을 지켜봐줘야 하는 것이다. 태연도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는 정형돈을 좋아하는 티를 전혀 내지 않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싫어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의 파행을 막기 위해 이들은 여전히 우결 속에서 젤리니 푸딩이니 하고 있고, 시청자는 그것을 봐주고 있다.



- 무한도전은 프로그램을 돌보지 않았다 -


리얼은 무한도전이 시청자에게 한 약속이다. 시청자는 그 약속이 지켜질 거란 전제 하에 무한도전을 지켜본다. 만약 돈가방 뺏기 싸움이 사전에 정해진 각본대로 진행된 것이었다면 그렇게 큰 화제를 모을 수 있었을까? 시청자들은 그 싸움이 우발적인 것이라고 신뢰한 상태에서 상황에 몰입했다.


시청자들의 신뢰와 작품의 완결성 사이에서 무한도전은 어떤 입장을 취했을까?


상당한 물량을 투입해 준비했던 ‘28년후’특집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그 특집은 2주 편성을 목표로 했을 정도로 야심찬 기획이었고, 방영 전에 광고를 통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런데 프로그램이 시작되자마자 박명수의 돌출행동과 유재석의 실수로 상황이 종료돼버렸다. 2주 편성은커녕 한 주 분량도 못 채울 상황이 된 것이다. 광고를 통해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허탈해했다. 프로그램엔 재난이 닥쳤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특집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방영했다. 프로그램의 완결성을 높이려, 혹은 2주 편성을 매끄럽게 이어가기 위해 없는 상황을 지어내지 않은 것이다. 망하면 망한 대로, 실수는 실수대로, 예측할 수 없었던 조건과 결과를 담담히 반영해 방송했다. 그리고 엄청난 비난을 감당했다.


당시 거의 모든 매체가 무한도전을 비난했다. ‘방송이 장난이야!’라든가, 무책임한 날림 방송이었다는 지적이었다. 원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재촬영을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던 매체도 있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럴 경우 무한도전의 전제가 깨지기 때문이다. 바로 ‘리얼’이라는 시청자와의 약속 말이다. 이것이 깨지면 신뢰가 사라진다. 전혀 예상치 못하게 때론 흥하기도 하고 때론 망하기도 하는 것이 세상사다. ‘리얼’은 그런 현실을 반영하겠다는 약속이며, 시청자는 프로그램 매 회의 성공 여부보다 그 근본적인 대전제가 지켜질 때 신뢰를 유지하게 된다.


무한도전은 프로그램이 당장 망하더라도 근본적인 신뢰, 즉 시청자가 가지고 있는 ‘리얼’에 대한 판타지를 지켜주는 것을 택했다. 그것은 당장 죽더라도 길게 살 수 있는 토대를 구축한 것과 같다. 이런 사즉생의 자세로 인해 무한도전은 가장 충성도 높은 팬층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 우리 시트콤 찍어요? -


우결과 시트콤의 시청률은 다르다. 우결은 한때 일요일밤 예능의 주력상품이었을 만큼 시청자의 사랑을 받았다. 시트콤을 외면하는 사람조차 우결을 사랑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대본과 리얼의 차이다. 사람들은 우결에서 리얼이라는 판타지를 보려 했다. 대본으로 짜인 사랑엔 시큰둥하던 사람들이 우결의 사랑놀이에 열광한 것은 오직 하나, 그것이 리얼한 사랑이라는 환상 때문이었던 것이다.


최근 그 환상/신뢰가 깨지는 사고가 잇따라 발생했다. 신애와 화요비가 우결 촬영 당시 두 집 살림을 했었음을 짐작케 하는 일들이 밝혀진 것이다. 거기에 현재 촬영에 임하고 있는 정형돈의 열애사실까지 터져 나왔다.


이러면 환상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우결에서 정형돈은 열애설과 상관없이 예정된 일정상 5월에 하차한다고 한다. 시청자들의 신뢰를 깨는 사건이 벌어졌음에도 프로그램의 안정된 일정대로 그냥 간다는 얘기다. 너무 무신경하다.


프로그램이 당장 위기에 처하더라도 리얼이라는 신뢰를 깨지 않았던 무한도전과 정반대의 길이다. 제작진이 열애사실이 분명히 드러난 정형돈을 여전히 출연시킴으로서 ‘우리 시트콤 찍어요’라고 공표한 셈이다. 결국 애초에 시청자들이 우결에 열광했던 이유인, 마치 진짜같은 알콩달콩한 사랑이야기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시트콤일 경우 우결이 줘야 할 재미의 강도는 아주 높아진다. 리얼이라는 환상이 유지될 때는 소소한 일상도 감정이입을 이끌어낼 수 있었으나, 시트콤이라면 밋밋한 스토리로는 자극을 줄 수 없다. 힘든 길을 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결이 살 길은 리얼 판타지성을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정형돈을 계속해서 출연시킴으로서 제작진이 스스로 판타지를 깨는 형국이다. 이런 식이면 시청자들의 열광이 돌아오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