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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사회문화 칼럼

붕어빵, 유혜정은 잘못하지 않았다

 

요즘엔 <스타주니어쇼 붕어빵>이 재밌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이야기도 재밌고, 이경규-김국진 콤비의 진행도 재밌다. 너무 과하게 연예인처럼 굴려고 하는 김동현만 빼면 모두 즐거운 아이들이다.


오늘은 ‘엄마·아빠가 가장 후회하는 일은?‘이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그에 대한 아이들의 답 2위가 ’학창시절에 공부 안 한 걸 후회한대요‘였다. 유혜정의 딸인 규원이가 손을 들었다.


초등학교 입학할 당시 학교가 환경조사서를 쓰게 했다고 한다. 규원이가 “엄마는 무슨 대학 나왔어?”라고 물었다고 했다. 그 질문을 받은 유혜정은 얼굴이 어두워지며 “엄마는 그냥 고등학교에서 의상하는 곳으로 갔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더니 갑자기 유혜정이 화를 내며 “왜 학교에선 이런 걸 쓰라고 하니?”라고 따졌다고 한다. 프로그램은 유혜정에게 교육당국에 자신의 부족함을 떠넘기는 이상한 엄마라고 했다.


아니다. 학교와 당국이 잘못한 것이다. 1차적으로 학교가 잘못했고, 그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규제하지 못한 당국의 잘못이며, 국민이 대학 이름과 대학 진학에 예민하도록 방치한 국가가 잘못한 일이다.


아이를 가르치는데 부모의 학력이 왜 필요한가? 규원이가 엄마한테 어느 대학을 나왔냐고 물었다는 것으로 보아 구체적인 학벌까지 조사항목에 들어있었나 보다. 얼마 전엔 부모의 직업, 직위, 재산 정도를 묻는 환경조사서가 물의를 빚었었다.


<미녀들의 수다>에서 한국인은 이상하게 부모의 직업에 관심을 많이 가진다는 지적이 나왔었다. 그러면서 부모의 지위가 높다고 하면 인정해주고, 아니면 심드렁하다는 말이었다. 독일에서 온 사람은 자기네 나라에선 부모에 대해선 궁금해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는다고 했다.


그 사람 본인을 보고 그 사람을 파악해야지 왜 부모라는 배경을 알려고 하나? 아이를 잘 가르치고 잘 보살펴주려면 평소에 그 아이와 많은 대화를 하며 관심을 기울이면 된다. 부모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그런 걸 물어볼 아무 이유가 없다. 그런 배경에 대한 지식은 선입견만 만들 뿐이다.


특히, 여기가 한국이라는 것이 문제다. 한국은 학벌사회고 학벌 콤플렉스의 사회, 학벌 거짓말의 사회, 학벌 차별의 사회다. 이곳에서 학벌은 아주 특별하고 예민한 그 무엇이다. 직장인의 과반수 이상이 학벌 콤플렉스를 느껴본 적이 있다고 했다. 명절 때 대학생이 가장 받기 싫은 질문은 무슨 대학에 다니느냐는 물음이라고 한다.


이런 나라에서 문서상으로 학벌을 까발리라고 학교가 요구하는 건 폭력이다. 학벌 자랑이 하고 싶어 미치겠는 극소수 사람이 아닌 한, 자기 학벌을 까발리며 모멸감을 느낄 것이다. 아이 교육에 아무런 도움도 안 되며 국민에게 모멸감을 안기는 짓을 왜 학교가 한단 말인가?


오히려 아이 교육을 망친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자마자 학교로부터 자신의 학벌을 까발릴 것을 요구받은 부모는, 그러면서 아이에게 ‘내가 어렸을 때 공부를 못했어’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던 부모는, 이를 악물면서 다짐하게 될 것이다.


‘그래, 나는 비록 시기를 놓쳤지만 너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공부를 시켜주마.’


입시경쟁에 혈안이 된 한국의 기괴한 학부모는 이렇게 탄생하는 것이다. 마치 학교가 학부모에게 ‘당신의 아이를 당신처럼 만들지 않으려면 이제부터 마음 독하게 먹고 아이를 다잡으라’고 부추기는 것 같은 모습이다.


유혜정이 화를 낸 것은 당연하다. 나도 화가 난다. 왜 어린 아이에게 부모의 학벌 콤플렉스를 까발리나. 학교가 할 짓이 아니다.


이런 식으로 공교육에서마저 국민의 학벌 콤플렉스를 건드리니, 한국인이 학벌경쟁에 환장하게 된다. 이 프로그램에선 교육당국과 학교는 문제가 없고 유혜정이 이상하다고 나왔다. 거꾸로다. 유혜정은 아무 문제가 없고, 교육당국과 학교가 이상했다.


부모 및 배경, 타이틀, 고향 등을 알아야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파악했다고 여기는 한국인의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 특히 학교는 이런 악습을 절대로 재생산해선 안 된다.


왜 아무 잘못도 없는 유혜정이 프로그램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여야 하나. 별로 내세울 것 없는 학벌, 학력을 가진 대다수 한국 서민의 처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