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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1박2일 지옥에서 생환한 괴물

 

<1박2일>의 ‘같이 가자! 친구야’편이 호평 속에 끝났다. 이번 편을 보며 느낀 것은 <1박2일>의 은근한 뚝심이다. 그리고 영리한 전략. 뚝심 있게 자기 길을 가긴 가는데, 그것이 단지 ‘똥고집’이 아니라 영리한 전략적 행보다. <1박2일>은 영리함과 뚝심으로 기사회생했다.


한때 <1박2일>은 노쇠했었다. 캐릭터의 참신한 매력이 다했고, 전개는 식상했으며, 사람들의 견제심리만 커졌다. 물에 빠지거나, 옷을 벗거나, 야구장에서 쇼를 하거나, 무슨 일을 해도 욕만 먹었다. ‘식상지옥’과 ‘비난지옥’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이야기로 무장한 <패밀리가 떴다>로 발길을 돌렸다.


<무한도전>도 비슷한 위기에 처했었으나, 매회 달라지는 참신한 기획으로 ‘회춘’하며 시청자의 충성도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었다. <1박2일>은 <무한도전>처럼 회춘하느냐, 아니면 그대로 지옥에서 안락사하느냐의 기로에 서있었다.



- 결기와 뚝심으로 회춘하다 -


겨울에 접어들면서 <1박2일>은 결기를 보였다. 야생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며 추운 날 옷을 벗고, 음식 쟁탈전을 벌여댔다. 당시 사람들은 야생이 아니라 가학이라며 비난했다. 하지만 그것은 추세가 역전되는 변곡점이었다.(요즘 기자들은 리얼 버라이어티 가학논란 기사를 쓰려고 대기하고 있는 것 같음)


곧이어 함박눈이 쏟아지는 날 물에 빠질 때도 가학이라며 비난이 일었다. 하지만 <1박2일>은 자신들의 결기를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매회 또 빠지고 또 빠졌다. 가학 논란은 박찬호 편에서 쑥 들어갔다. 그다음부턴 얼음을 깨고 들어가도 사람들은 별 소리 안 한다. 이번 ‘친구야’편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원없이 물에 빠져줬다. 한국에서 가장 이른 계절에 물놀이하는 방송이라는 자신감을 내보이며.


<1박2일> 덕분에 <남자의 자격>은 그 찬물에 들어갔어도 가학이라는 욕을 먹지 않았다. <1박2일>에서 스포츠로 단련된 젊은 사내가 냉수욕을 한 것 가지고 가학이라며 난리 치던 사람들은, <남자의 자격>에서 국민 약골이 차갑다며 내지르는 비명에도 가만히 있었다. <1박2일> 효과다. 엉뚱하게 같은 시기 <무한도전>에서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가학논란이 터졌다. 찬물 입수 가학 비난을 못하게 되니, 다른 것으로 건수를 올려야 했나보다.


추위에 맞서 야생의 결기를 뚝심으로 밀어붙인 <1박2일>은 회춘하는 데 성공했다. 작년 늦가을 무렵과 현재의 <1박2일>의 위상은 사뭇 다르다. 늪에서 자력으로 일어선 프로그램은 ‘존중’을 받게 마련이니까. <무한도전>처럼 단지 재밌는 프로그램 이상의 존재감을 획득하는 데 성공했다.



- 영리한 전략이 괴물을 만들었다 -


쇼프로그램 게스트는 당연히 톱스타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 <박중훈쇼>는 프로그램을 시청자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 톱스타 전략을 펼쳤다. 이것이 그리 특이한 행보는 아니었다. 아주 당연한 것이었고, 시청자는 그런 당연한 전략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렸던 <1박2일>은 그런 당연한 전략을 답습하지 않았다. <1박2일>은 고정된 출연진이 고정된 패턴의 여행모습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변화가 필요했다. 게다가 위기국면에서 센 한 방이 필요하기도 했다. 이때 누구라도 톱스타의 유혹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1박2일>은 ‘사람’으로 갔다. <1박2일>이 초청한 박찬호는 당대의 톱스타가 아닌 과거의 인물이었다. 전혀 ‘핫’하지 않은 인물이었던 것이다. 전성기를 지난 운동선수의 인생을 쓸쓸할 뿐이다. <1박2일>은 그를 끌어안았다.


나는 과거에 <1박2일>의 핵심코드가 ‘정’이라고 했었는데, 바로 그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이라는 느낌을 뚝심 있게 유지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리한 것이기도 했다. 모두가 톱스타와 화려함으로만 승부하려고 할 때 전혀 다른 길을 간 것은 차별성이라는 이득이 있었다. 그런 이점을 냉정하게 간취한 셈이다.


<1박2일>은 그 전략을 계속 이어갔다. 모두가 아이돌 소녀들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1박2일>은 평범한 시청자들과 여행을 떠났다. 전혀 화려하지도, 섹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 강호동은 운동부 여학생과 딱밤게임을 하고 일반 시민이 복불복에 동참했다. 이것은 ‘대박’이었다.


이번 ‘친구야’ 특집에도 그런 영리한 전략은 이어진다. ‘스타의 친구를 소개했는데 알고 보니 예비 연예인이더라’, ‘모두가 선남선녀더라‘라는 식의 익숙한 패턴은 없었다. <1박2일>팀이 초대한 친구들은 그저 보통 사람이었을 뿐이다. 연예인이지만 아슬아슬하게 초대된 이선규도 철저히 ’민간인‘스러웠다.


이런 식의 ‘사람냄새‘가 <1박2일>의 정체성이다. 바로 그것이 차별성이고, 위기국면에서도 그런 차별성을 허물지 않은 전략은 영리했다. 따뜻한 느낌은 <1박2일>을 단지 재밌는 여타의 프로그램과는 다른 차원으로 격상시키고, 강력한 충성도를 만들어낸다. 그것에 호응하는 팬들에 의해 <1박2일>은 지옥 문턱에서 당당히 생환한 ’괴물‘이 될 수 있었다.


과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인간다운 느낌을 가르치기로는 요즘 학교보다 <1박2일>이 더 나은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