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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음악 칼럼

이경규 김국진에겐 자격이 있었다

 

<남자의 자격>이 극적으로 순항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 하나만 보면 별로 극적이랄 건 없지만, 동시에 시작한 <대망>과의 대비가 너무나 확연해서 <남자의 자격>의 순항은 극적으로 보인다.


극적으로 느껴지는 건 또 있다. 이경규가 ‘화끈하게’ 망했던 <라인업>에 이어 또다시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해 결국 성공을 거뒀다는 점이다. 이경규가 <일밤>을 떠나 <해피선데이>에서 마치 <라인업>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며 리얼 버라이어티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많은 매체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놨었다. 하지만 이경규는 보란 듯이 성공했다.


극적으로 느껴지는 이유가 또 있다. <대망>과 <남자의 자격>이 동시에 출발했을 때 화제성은 <대망>이 압도적이었다. <남자의 자격>에 비해 <대망> 출연진이 훨씬 중량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비교해보라.


이경규-김국진-김태원-이정진-윤형빈-이윤석-김성민


김용만-탁재훈-신정환-김구라-이혁재-윤손하


지금이야 <대망>이 확연히 망하고 <남자의 자격>이 성공했으므로 느낌이 다를 순 있지만, 첫 출발 당시까지만 해도 <대망>의 MC들이 드림팀에 가까웠고, <남자의 자격>은 루저와 듣보잡을 끌어 모은 수준이었다. 이 출발 당시의 격차를 완전히 전복시키고 깔끔하게 KO승을 거뒀으므로 극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들의 자격은 -


이 프로그램들의 경쟁에선 시청자가 원하는 ‘MC의 자격’이 제기됐다고도 할 수 있다. 둘 다 포맷은 비슷했다. <대망> 1,2회는 특이했지만 3,4회로 가면 전형적인 집단 MC들의 고생 체험담이었다. <남자의 자격>도 그렇다. 양쪽 다 고생을 하는데, 그 고생을 하는 주체가 누구냐, 즉 MC가 누구냐에서 승부가 갈렸던 것이다.


김용만, 탁재훈, 신정환 등의 고생 체험에 사람들은 무관심했다. 반면에 이경규, 김국진 등의 고생엔 박장대소하며 애정을 표시했다. 보통 뜨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엔 지지자와 함께 강력한 안티가 동시에 형성되는데 반해, <남자의 자격>은 호평일색인 특이한 경우를 보여줬다.


이것은 이경규, 김국진 등에게 호평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는 얘기다. 반대로 <대망>팀에겐 그럴 자격이 없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


<대망>팀은 1인자 내지는 준 1인자들의 집단이었다. 저마다 자신이 전면에 부각되려 하고, 남에게 무시당하기보다는 자신이 남을 무시하고 공격하는 스타일이었다. 김용만-탁재훈-김구라가 그렇고, 신정환은 과거엔 당하는 입장이었으나 요즘엔 공격하는 캐릭터로 변신했었다. 그런 그들이 아주 ‘대단한 고생’을 하며 확 망가지는 것도 아닌, 장난 수준으로 고생하는 것에 시청자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이경규, 김국진 등은 루저 집단이다. 이 두 명과 김태원은 인생을 건 실패담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경규는 과거 1인자 경규에서 최근엔 굴욕 경규, 동네북 경규, 만신창이 경규로 바뀐 상태다. 김국진도 과거엔 황제, 현재는 병졸의 느낌이었다. 이 세 사람에겐 보통 사람들이 친근감을 느끼며 감정이입을 할 만한 허점이 많았던 것이다.


또, <대망> MC들이 자신만만한 프로처럼 보이는 데 반해 <남자의 자격> MC들은 아마추어 군단처럼 보였다. <대망>은 유명 MC들을 조합했고, <남자의 자격>은 이정진, 김성민 등을 끌어들인 것이다.


대체로 <남자의 자격> MC들은 순수하고, 신선한 느낌을 줬다. 글자 그대로 새 얼굴이고 순수한 청년처럼 보이는 이정진, 김성민 말고도, 윤형빈도 순박하게 보이며, 김태원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단지 순수한 사람들을 모아 놓기만 한다고 해서 프로그램이 재미있을 수는 없다. 프로그램엔 핵심이 필요하다. 재미있으며 동시에 시청자에게 호감을 줄 수 있는 사람.


이경규와 김국진이 그 역할을 담당한다. 이 둘은 확실히 재미있다. 그러면서 과거의 실패담이라는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결정적으로 이들은 <남자의 자격>에 임하면서 자신들의 캐릭터를 전복했다. 거기엔 김국진의 역할이 컸다.


<라디오 스타>에서 당하는 역할이었던 김국진이 <남자의 자격>에서 갑자기 가해자가 된 것이다. 피해자는 이경규다. 관계의 전복이었고, 이것이 이끌어낸 것은 바로 ‘신선함’이었다. 시청자의 연민을 이끌어내고 신선함을 주며 동시에 재미까지 책임져 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들의 ‘자격’이었던 것이다.



- 이경규는 학습을 제대로 했다 -


<대망>은 프로 MC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을 줬다. <남자의 자격>은 그냥 사내들의 이야기 같다. 새 얼굴들은 물론이고 기존 인물들마저, 신선함을 주고 대중에게 동질감을 느끼게 하는 실패담의 아이콘들이기 때문에 프로페셔널한 쇼라기보다 우리들의 이야기라는 느낌이 강하다.


거기다 <남자의 자격>은 가족을 표방한 <패밀리가 떴다>보다도 더 강력한 ‘우애’ 즉, ‘정’이라는 코드를 내장하고 있다. 똑같은 <무한도전> 짝퉁이면서 정이 있는 <1박2일>은 대박을 쳤고, 깐족거렸던 <라인업>은 망했는데, 이경규가 마침내 <1박2일> 아저씨 버전을 구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반면에 <대망>은 마치 <라인업> 시즌2같은 느낌이었다. 이경규가 학습을 제대로 한 셈이다. 이런 것도 ‘자격’이다.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능력. <1박2일>과 <라인업>의 비교에서 패배했던 이경규가 다시 <남자의 자격>으로 도전하며 <1박2일>식 코드를 차용해 <대망>을 패퇴시킨 셈이다. 절치부심, 권토중래라고 할까?


여기에 김국진의 변신이 날개를 달아줬다. 26일에 방영된 <남자의 자격>에선 김국진이 마지막까지 이경규에게 ‘쫑코’를 먹이며, 국민 약골 이윤석은 이경규에게 암바를 가해 만신창이로 만들었다. 이렇게 과거의 1인자가 전복적으로 굴욕을 당해주며, 동시에 웃음의 카리스마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받쳐줄 수 있는 능력, 그것이 이들의 ‘자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