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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그바보 황정민이 대박이었다

 

전운이 감돌던 수목 드라마 전쟁이 드디어 개막됐다. 일반적인 경우로는 진작부터 터를 잡은 <신데렐라맨>이 유리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엔 경우가 다르다. <신데렐라맨>이 대중적 지지도를 확고하게 높여놓지 못했고, 새로 시작한 두 작품의 기대치가 너무나 커서 사실상 원점에서부터 출발하는 3파전이 오늘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그저 바라 보다가>는 1회부터 강렬한 인상을 줬다. 황정민의 캐릭터가 대박이었다. 벼락처럼 엄청난 행운을 얻어맞은 인간미 있고, 순박하고, 훈훈한 남자. 물론 황정민이 훈남 캐릭터로 나올 거란 건 충분히 예상한 일이었으나 기대이상이었다.


<신데렐라맨>에서 권상우에게 감정이입하는데 1주일이 소요됐고, <내조의 여왕>에선 눈물이 터진 이번 주가 돼서야 김남주의 연기력 논란이 사실상 완전히 종식됐다는 걸 감안하면 황정민의 장악력은 발군이라고 할 수 있겠다. 황정민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육박해왔다.


황정민이야 원래부터 소박하고 인간미 있는 캐릭터를 잘 연기해왔던 사람이다. 그것 자체로는 그리 새로울 것이 없다. 만약 <그바보>가 훈훈한 전원 드라마로 황정민이 착한 심성의 농촌 총각으로 나왔어도 연기는 잘했겠지만, 별다른 느낌은 없었을 것이다.


위에 말했듯이 캐릭터가 대박이다. 황정민이 보통 착한 사람이 아니라, 엄청난 행운을 맞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이 이 캐릭터가 뿜어내는 매력의 핵심이다. 그 극에서 극으로 이어지는 엄청난 변화를 연기할 사람으로 황정민은 적절했다.


누가 보더라도 황정민은 보통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당대의 스타가 보통 사람에게 다가온다는 판타지가 아무런 거부감 없이 수용됐다. 만약 황정민이 꽃미남이나 귀티 나는 도회적 이미지였다면 극 중 캐릭터에 감정이입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황정민은 귀티하고는 담을 쌓은 사람이다. 그래서 누구라도 황정민과 자신을 동일시할 수 있고, 그 때문에 여자 스타가 자신의 삶에 끼어든다는 기적 같은 사건에 놀라워할 수 있는 것이다.



- 황정민과 설정의 힘 -


이 드라마는 아기자기한 개그로 웃기는 스타일은 아니다. 황정민은 ‘오버’하지 않고 진지하게 연기한다. 그것이 이 말도 안 되는 판타지를 현실처럼 느끼게 한다. 그렇게 축적된 현실감이 나중에 말도 안 되는 사건이 벌어질 때의 폭발력으로 전화하는 것이다.


<그바보> 1회에서 그 폭발적인 사건이 일어난 시점은 김아중이 우체국, 즉 황정민의 일상 공간 안으로 진입했을 때다. 그전까지 개그 한번 없던 드라마가 이때 크게 터뜨렸다. 설정의 힘이다. 설정의 힘으로 터지는 건 잔재미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터질 땐 크게 터진다.


<그바보> 1회는 마지막에 또 한번 크게 터뜨리며 다음 회를 기다리게 했다. 김아중이 황정민에게 ‘저랑 사귀는 사이로 해주실래요?‘라고 했을 때, 극중 황정민과 시청자인 내가 동시에 경악했다. 나는 물론 이렇게 스토리가 흘러갈 것을 다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극중에 김아중이 곧 우체국으로 간다는 것도 미리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 다 경악했다.


너무나 보잘 것 없는 보통 사람에게 엄청난 행운이 닥친다는 설정이 그만큼 잘 표현됐기 때문이다. 그 중심엔 당연히 황정민이 있었다. 행운을 상징하는 김아중도 그리 이상하지 않았다. 만약 시각적으로나 이미지상으로, 황정민이 ‘보통 사람’을 표상하지 못하고. 김아중이 ‘엄청난 행운’을 표상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황정민의 연기가 정감어리지 않았다면 뻔한 스토리에 경악은 없었을 것이다.



- 뿔난 남자들 폭발하나 -


그동안 보통 여자에게 엄청난 행운이 찾아온다는 설정의 드라마들이 판도를 장악했었다. 남자들은 이 드라마 저 드라마에서 여자들의 인생역전에 박수를 쳐주며, 가장 최근엔 ‘꽃남’ 열풍에 휩싸여 뻘쭘한 자세로 드라마 트렌드에 들러리를 서왔다.


<그바보>엔 정말 오랜만에 부잣집 2세 훈남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찌질 훈남 황정민이다. 꽃남은 스트레스였으나 황정민은 아무 부담이 없다. 인생을 역전시켜 주는 주체도 정말 오랜만에 남자가 아닌 여자다. 황정민은 남자들이 그 인생역전극을 자기 것처럼 느끼며 감정이입하게 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여성 판타지에 치어 스트레스 지수가 오를 대로 오른 남자들이 ‘열폭’할 만한 드라마가 나온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황정민이 얼마나 보통 사람같아 보이며, 김아중이 얼마나 슈퍼스타 여신처럼 보이느냐가 향후 이 드라마의 폭발력을 좌우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남성만을 위한 드라마는 아니다. 여자들이 아무렴 재벌2세 꽃남만 좋아하겠는가. 황정민에겐 ‘따뜻함’이 있다. 이것도 분명히 ‘로맨틱함’의 한 요소가 된다. 극적인 사랑 이야기는 그 자체로 ‘판타스틱’하다.


또 이 드라마에는, 황정민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작품 전편에 ‘따뜻함’과 ‘편안함’이 흐른다. 정직하고 순박해보이며 미소를 머금게 한다고 할까? 요즘 막장이거나, 트렌디코믹이거나, 하드보일드한 미니시리즈만 봤던 사람들에게 나름대로 차별성을 느끼게 할 수 있는 대목이다.


수목 3파전 때문에 괴롭다. <신데렐라맨>, <시티홀>, 그리고 <그바보> 모두 만만치 않다. <신데렐라맨>은 지난 주에 발동이 걸린 상태고, <시티홀>에도 방심할 수 없는 면면들이 포진해있다. 그리고 1회에 벌써 두 번이나 터뜨린 <그바보>까지. 왜 갑자기 몰려서 하나. 편성이 원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