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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비

화끈하게 망한 대망PD를 만나다

 

화끈하게 망한 대망PD를 만나다

- 오PD는 오PD가 아니었다


일밤 대망이 결국 한 달 만에 하차가 결정됐다. 정말 화끈하게 망했다. 욕은 욕대로 먹고 시청률은 시청률대로 재난이었다. 특히 프로그램 속에서 돌출한 오PD는 집중포화를 맞았다. 끝장나게 망하고, 끝장나게 욕먹은 셈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갔다.


나에게 첫 마디가 ‘패장이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였다. 하지만 들을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내가 ‘PD가 프로그램 말아먹는 건 처음 봤다’고 쓴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하자, 하실 말씀 한 거고 들을 말 들은 거라고 했다. 시청률 다이어트로 7킬로그램이 빠졌단다.


일본의 한 성공한 경영자는 남들한테 비난 받는 사람을 발탁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모두에게 칭찬만 받는 사람은 안일한 무골호인이므로 무의미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튀는 발상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실패할 가능성은 있지만 성공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그는 후배들을 키울 때 일부러 작은 실패를 경험하게끔 유도한다고도 했다. 성공만 경험한 사람보다는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 더 유능해진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도 실패를 중요한 경력으로 친다. 미국 유수의 항공사를 창업한 사람은 애초에 투자받았던 사업에 완전히 실패했었다. 그러나 그는 유사 업종에 다시 도전했고 미국사회는 그런 그에게 투자를 해줬다. 이런 게 미국식 벤처 보육법이다. 그는 결국 재차 도전해 성공했다.


대망 1회를 보고 느낀 건 이 PD가 프로그램을 말아먹은 것은 틀림없지만, 동시에 개성과 자의식과 도전정신이 있다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젊기까지 하니 실패 자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재차 도전하면 되는 일이다.


프로그램 속에서 계속 ‘나는 오PD다’라고 돌출했던 그 오윤환PD를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막상 들어보니 나를 비롯해 수많은 사람들이 비난했던 그 ‘오PD'는 자기가 아니라 그저 프로그램 속 캐릭터에 불과했다고 한다. ’오PD'는 현실 속 오PD가 아니라 제3의 출연자였던 것이다.


너무 리얼리티를 강조하느라 무책임한 우왕좌왕 방송을 한 것 아니냐는 비난에 대해서도, 그렇게 리얼리티에 집착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저 쇼를 구성했을 뿐인데 시청자와 코드가 안 맞았던 것이다. 아래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짧게 편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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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회 하고나서 사람들이 엄청 욕했잖아요. 그런데 4회에서도 ‘나는 오PD'다 이러는 것을 보면서, 뭔가 고집이 있나, 신념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죠.


오PD : 재밌으려고 그랬던 건데, 재미도 없고 시청률도 안 오르고. 어쨌든 담당 PD로서 말아먹은 건 분명하죠. 그런데 그게 저 혼자의 고집만으로 그렇게 된 건 아니고, 선배들도 있고, 회의라는 걸 하거든요. 원래 그렇게 하기로 했었어요. 1,2회는 MC들을 캐스팅한다는 느낌으로 가고. 요즘 MC들과 야외에서 찍으면 무한도전, 1박2일을 벗어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신에 중간중간에 관점을 PD관점으로 해보자는 얘기가 회의에서 나왔고, 그런 느낌으로 가면서 3회부터 체험으로 간 거죠. 그런데 이미 3회부터 시청률이 떨어졌고, 4회에는 또 멸치가 안 잡혔어요. 장소 헌팅 갔을 때는 멸치잡이 아 이거 괜찮겠다.


 멸치잡이가 사진으로 찍으면 그림이 나오죠. ㅎㅎㅎ.


오PD : 예. ㅎㅎ. 멸치까지 안 잡히길래, 아 운이 없구나 그렇게 생각했어요.


 대망과 남자의자격이 너무 극명하게 비교되잖아요. 성공과 실패가.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지.


오PD : 재미가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그 이유가?


오PD : 난해했죠.


 난해했다? 그러니까,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랑 차별성을 두기 위해 PD가 개입하는 방식을 취했는데 그것이...


오PD : 그게 정확히 전달이 안 됐는데, 오PD라는 캐릭터는 제가 아니었어요. 그냥 가상의 PD로서 역할을 맡았던 거죠. 그런데 그게 전달이 안 되고, 시청자들은 오PD 건방지다고... 결국 연출의 실수죠. 미숙한 점이 있었고. 원래는 김PD나 박PD로 하려고 했어요. 근데 제가 오씨고 MC들이 뻔히 오PD라고 부를 텐데 김PD라고 할 수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오PD로 간 거죠.


 아 그랬군요.  1,2회도 리얼리티라는 명목으로 너무 무책임하게 풀어놓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사실은 PD와 MC들이 신경전을 벌인다는 내용의 쇼였군요?


오PD : 네! 쇼였어요. 물론 대본은 없지만 그런 방향의 설정과 기획은 분명히 있었죠. 근데 사실 패잔병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 자체가 의미없는 일이고...


 하하하, 왜 자꾸 패잔병이라고. 근데 한 달도 안 돼서 폐지하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오PD : 폐지라기보다는 포맷전환인데요.


 일요일 시간대는 전쟁인가봐요? 3개월 정도 봐준다 이런 거 없고.


오PD : 거의 전쟁이죠. 봐주는 건 없어요. 타 방송도 그럴 거에요. 일요일 밤시간대의 위상은 절대적이죠.


 그래도 어떨 때는 6개월 정도는 가다가 폐지시키고는 했는데.

 

오PD : 지금 상황에선 뭐. 시청률도 워낙 낮았구요. ㅎㅎ...ㅠ_ㅠ...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프로그램 자체도 먹힐 상황이 아니어서... 빨리 내리는 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어요.


 이경규 씨가 타사로 간 것에 대해서, 대망이 망한 것이 이경규의 저주다, 이경규와 관계가 안 좋다, 이런 얘기들이 있잖아요?


오PD : 호사가들이 하는 말이에요. 경규형은 언제나 PD들에게 경규형이죠.



 사람들이 남자의자격을 왜 좋아할까요? 남자의자격 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오PD : ... ... 훈훈해서? 훈훈해서 그런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대망에선 훈훈한 느낌이 없고 모두 까칠한 느낌. 거기다 PD까지 끼어들어서 PD와 출연자 간, 출연자와 출연자 간 까칠까칠까칠.


오PD : 그게 실수였던 것 같아요. 블랙코미디처럼 가고 싶었는데 일요일 밤 시간대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패밀리 시간대니까?


오PD : 그렇죠. 이번에 또 하나 배운 거예요. 저희끼리 회의할 때는 야 이거 재밌다 그랬는데, 사람이 산에 빠지면 숲을 못 보듯이...


아 이게 오타쿠 마인드로 만든 거군요? ㅎㅎㅎ


오PD : 오타쿠라기보단 그냥, 새로웠고.. 근데 뭐 시청자에게 다가가진 못했죠. 저는 꼭 리얼리티가 있어야 한다기보다, 하나의 텍스트로서 프로그램이 67분 동안 말이 되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알쏭달쏭 버라이어티’를 표방했었어요. 원래 제가 생각했던 느낌은 그냥, 한 권 짜리 만화책이에요.


 그냥 재밌는 쇼를 만든다?


오PD : 예. 쇼를 만드는 것일 뿐에요. 안타까웠던 건 그냥 신입PD가 짓궂은 PD들과 고군분투한다는 컨셉의 만화였는데, 그게 재미도 없고, 전혀 전달이 안 된 건 제 책임이죠.


 시청자들은 진짜 PD가 설친다고 생각했는데요.


오PD : 게시판에서 욕을 엄청 먹었습니다. 프로그램 망하면 힘들긴 해요. 이번에 한 7킬로 빠졌거든요. 그래도 여기에 빠져 있지 말고, 다음 작품기획에 집중해야죠.


 7킬로요?


오PD : 쫙쫙 빠져요 진짜. 흔히 우리들이 시청률 다이어트라고... 조연출들도 모두 비슷한 코드였어요. 독립영화 좋아하고, 독특한 거 좋아하고. 한 명이라도 좀 메이져한 감을 가지고 있었다면, ㅎㅎㅎ.


 조연출이라면 같이 만담쇼한 최PD를 비롯해서요?


오PD : ㅎㅎ. 네. 이게 어떻게 보면 좀 메타적인 프로그램이잖아요. 약간 소격효과도 바라고.


 생각이 참 많았군요, ㅎㅎㅎ. 소격효과까지 나오고. 시청자는 감정이입하길 원하는데, 제작자가 소격효과로 나와버리면, 시청자 입장에선 화가 나죠. 제가 PD가 프로그램 말아먹었다고 했거든요.


오PD : 그렇죠... 겸허하게 받아들여야죠. 죄 많이 진 것 같아요.


 하하하하. 몰입 안 되는 거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로 치면 마이너 내지는 작가주의, 영화제 전용 감독들, 흥행감독 아닌 사람들인데, 그걸 일요일밤 시청률 전쟁에서 밀었으니.


오PD : 그렇죠... 다음에 잘 해야죠.


 대망 바로 직전에 ‘돌아온 일지매’가 내레이션으로 욕먹었는데, 그 얘기들은 안 했어요?


오PD : 이번에 겪어보고 한국에선 내레이션은 안 되나보다...


 감정이입을 방해하니까. 흐름을 끊으니까. 사람들은 이입하고 싶어 미치겠는데 말이에요.


오PD : 마법진 구루구루라는 만화 아세요?


 아 그거 광팬입니다. @_@


오PD : 거기도 성우가 나오잖아요. 그 느낌을 생각했었는데... 그런 거를 잘 녹여낼 수 있도록 수련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대망 보면서 느낀 게, 이 PD는 자의식이 강하고, 개성이 있고, 실험정신이 있는 것 같다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오PD : 미학과 출신이 다 그래요.


 하하하. 머리에 든 게 너무 많았군요. 시청률 전쟁에 뛰어들기에는.


오PD : 그 동네를 멀리 해야죠. ㅎㅎㅎ.


 앞으로 시청자 대중과 접점을 만들어나가는 작업을 하시겠군요.


오PD : 네 실험영화 작가가 아니라, 공중파 PD니까요. 실패도 경험하면서 해나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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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환PD의 도전정신이 대중의 환영을 받는 날을 기대하며 대화를 마쳤다. 오윤환 PD는 또 기획회의가 있다며 총총히 사라졌다. 오PD의 앞날에 시청률 다이어트가 사라지길.


마법진 구루구루 식의 내레이션으로 마지막을 장식하자면,


‘오PD는 레벨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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