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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한밤 구준엽사태, 욕은 하더라도

 

나도 보통 사람이다. 그래서 당연히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한밤의TV연예>의 구준엽 인터뷰 장면을 보며 기분이 나빴었다. 그 장면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데가 분명히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질문자가 보인 공격성 때문일 것이다.


구준엽이 강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도, 질문자는 강압적으로 계속해서 같은 질문을 무례하게 반복했다. ‘당신이 지금 하는 정말 말이 사실이냐?’구준엽이 격앙돼서 결백을 호소하자 정 떨어지게도, 자기 눈을 보고 얘기하라고 하기도 했다.


‘내 눈을 보고 얘기하라’는 표현은 일상적인 상황에선 전혀 안 나오는 표현이다. 이것은 거의 싸움에 준하는 대결상황일 때, 혹은 상대방을 전혀 신뢰하지 않을 때 상대방을 압박하며 적대심을 드러내는 관용어다. 이 말을 통해 관람자는 ‘이 사람은 지금 상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으며, 상대를 공격하고 있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만약 시청자들이 미워하는 사람을 어떤 방송관계자가 이런 식으로 몰아쳤으면 그 사람은 영웅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구준엽은 아니었다. 원래도 아니었지만 특히 그날 방송에서 구준엽이 보인 태도는 동정을 사기에 충분했다.


이런 연유로 해서 <한밤의TV연예> 리포터가 보인 과도한 공격성은 시청자를 불편하게 하는 데 멈추지 않고, 구준엽에게 동정심이 쏠림에 따라 그 반대급부로 시청자의 공격이 <한밤의TV연예> 제작진을 향하게 하는 데에까지 이른 것이다.


- 추성훈의 경우 -


과거에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무릎팍도사>에서 강호동은 추성훈을 매우 몰아쳤다. 그때 강호동은 네티즌으로부터 상당한 비난을 당했다. 강호동이 운동선수 출신이라 국내 운동계의 파벌의식 때문에 추성훈을 죽이려 한다는 황당한 주장까지 난무했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으로 인해 추성훈은 국민 훈남으로, 일약 CF 스타로 거듭 났다. 만약 강호동이 민감한 질문을 다 건너뛰고 <박중훈쇼>처럼 덕담만 했다면? 그래도 추성훈이 국민 훈남이 될 수 있었을까?


민감한 질문을 해도 그렇다. 만약 그때 강호동이 추성훈을 밀어붙이지 않고, 단답형으로 ‘국적 왜 버렸습니까?’, ‘이러저러 했습니다’ ,‘아 예 그렇군요. 다음 질문’ 이런 식으로 밋밋하게 넘어갔어도 그 프로그램의 임팩트가 있었을까?


아니다. 강호동이 약간 과하다 싶을 만큼 밀어붙였기 때문에, 출연자 추성훈이 아닌, 인간 추성훈의 심장이 말하는 상황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추성훈의 얼굴 표정이 숙연해지며 갑자기 일본어를 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때 추성훈이라는 사람의 진면목이 나타났고, 시청자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그 힘이 추성훈을 국민 훈남으로, CF 스타로 만든 것이다.


- 작품을 만들다 보면 -


수많은 리포터가 있고, 수많은 정보 프로그램이 있다. 작품을 만들고 기획하는 사람 입장에선 당연히 ‘차별성’ 부분을 신경 쓰게 된다. 요즘 캐릭터 만드는 게 유행이니 성깔 있는 리포터라는 캐릭터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배려하고 차분한 리포터에서 정신 사나운 리포터로 차별화해 성공한 것이 붐이었다. 기획하다 보면 ‘이번엔 공격적으로 한번 해볼까?’라는 생각을 충분히 해볼 수 있고, 실행에 옮겨볼 수도 있다. 실험의 여지가 있는 행동인 것이다. 물론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를 두려워만 하면 혁신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이때 실패까지 대범하게 감싸 안을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한데, 그게 회사같으면 상사이고, 프로그램에겐 시청자가 되겠다.


이번 같은 경우 나는 보면서 분명히 불쾌했다. 그것과 별개로 이것이 프로그램 차별화와 인간 구준엽의 결백을 드라마틱하게 부각시키기 위한 설정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리포터가 구준엽을 ‘저거 미친 놈 아냐’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하게 몰아붙이다가 어느 순간 입을 딱 닫고,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카메라가 서서히 줌인에 들어갔다. 그리고 리포터의 공격 대신에 배경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바로 구준엽의 눈시울이 붉게 물든 순간이었다. 이 샷이 제작진의 진정한 의도를 보여줬다. 이 샷을 만들기 위해 벽돌을 쌓듯이 도발을 쌓았던 것이다.


백 마디 말보다 그림 한 컷이다. <한밤의TV연예>는 그 순간 ‘클로즈업의 힘’을 보여줬다. 마치 추성훈이 심장으로 말했을 때 시청자가 추성훈에게 감정이입하며 강호동을 ‘나쁜 놈’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구준엽의 눈시울이 붉게 물든 것을 ‘클로즈업의 힘’을 통해 보여주자 그렇게까지 몰아붙인 <한밤의TV연예>와 리포터는 ‘천하의 죽일 놈’이 된 것이다.


이걸 보며 불쾌함을 느낌과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작품 기획하다 보면 별 시도 다 해볼 수 있는 거지. <한밤의TV연예>가 제 한 몸 불살라 구준엽 띄워 준 셈이군.’


- <한밤의TV연예>를 비난해야 하나? -


당연히 비난해야 한다. 필자들도 그 점을 지적하는 것이 맞다. 시청자가 그렇게 강렬한 ‘신호’를 보내야 제작진이 ‘아 이건 아닌가벼’하고 그 설정을 바꿀 것 아닌가. 지나친 공격성이 현 시점에서 시청자에게 인간적인 불편함을 주는 건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시청자는 자신의 불쾌감을 제작진에게 전달할 권리가 있다.


문제는 시청자가 자신의 불쾌감을 드러내는 건 괜찮은 일인데, 여기에 정말로 감정이입하는 경우다. 그 리포터를 정말로 나쁜 사람으로 여긴다든지, <한밤의TV연예>를 막장 방송이라고 생각하며 ‘진심 비난’할 것까지는 없다. 기사에 달린 댓글들을 보니 상당한 적개심이 느껴졌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다.


그냥 ‘니들이 나름 새 시도를 한 건 알겠는데, 그건 아니거든’ 이 정도의 느낌을 깔고 하는 비난이면 족하다.


시청자의 불쾌감을 뻔히 알고도 제작진이 설정을 고수한다면 그건 시청자에 대한 테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첫 시도는 작품 기획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다양한 실험의 일환이었다고 봐줄 여지가 있다.


논란이 되는 막판 굴뚝 연기 동영상은, 남의 눈에서 눈물 난 사건에 대해 너무 가볍게 논평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남겼다는 정도로 보면 된다. 잘못한 건 맞지만 죽을 죄까지는 아니다. 실수로 봐야 한다. 어쨌든 핵심은 클로즈업샷에 있었지 마무리 사족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양한 시도에 관대한 시청자가 결국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향유하게 된다. <한밤의TV연예>는 어차피 욕먹는 수순을 거치는 게 맞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려 했으나, 오늘 본 언론기사의 댓글들이 <한밤의TV연예>제작진들을 진심 증오하는 것 같아서 ‘쿨’하게 가자고 한 마디 보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