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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영상 칼럼

무한도전의 비호감 길 유희열 2탄 될까

 

<무한도전>을 별 생각 없이 보다가 점점 더 놀랐다. 길이 웃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웃기고 있는 길을 보는 심정은 복잡했다. 길은 그동안 개인적으로 비호감이었다. 비호감인 사람이 웃기고 있는데, 그렇다고 즉시 호감으로 돌아 서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웃기는 건 좋아보이고, 복잡한 심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길은 어느 날 갑자기 <놀러와>에 메인으로 등장했다. 예능에 메인으로 나올 정도면 입담이 상당한 사람일 거라는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러와>에서 보인 모습은 기대이하였다.


냉정하게 말해 외모부터 호감형이 아니다. 거기다가 그다지 웃긴 말도 잘 하지 못하며, 분위기를 거북하게 만드는 ‘오버’를 종종 했다. 더 결정적으로 길은 <놀러와>에서 자기 라인 자랑하는 사람으로 등장했다. 툭하면 스타 연예인들과 친하다고 자랑했던 것이다. 본인은 못 웃기면서, 친한 사람 자랑이나 하고, 와중에 외모까지 별로이니 비호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더 결정적인 것이 있다. 길은 거짓말로 이야기를 꾸며대는 캐릭터였다. 요즘 예능에서 거짓말로 토크를 하는 사람은 네티즌의 공적이 될 정도로 거짓말 토크의 비호감성은 크다. 또, 여자한테 무작정 들이대는 무차별 껄떡쇠의 이미지도 있다. 이런 것들이 종합돼 길이 처음 등장했을 때 느꼈던 호기심과 기대감은 철저한 배신감으로 바뀌고, 비호감이 분출됐다.



- 너무 자연스러워보였다 -


이번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은 일부러 빠지고 넘어지고 하는 것이 예능에서 제일 나쁘다고 지적했다. 맞는 말이다. 이것은 웃기려고 말을 꾸며대는 것이 비호감인 것과 같다. 웃기려고 넘어지는 것이 티 나는 몸개그는 보는 이를 싸늘하게 만든다.


옛날에 짝짓기 프로그램에 당시 신인이었던 이영아가 나온 적이 있었다.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었는데, 게임을 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엎어지자마자 즉시 ‘빵’ 터지면서 이영아도 주목 받기 시작했었다.


그것을 본 다른 여자 연예인들이 저마다 이영아처럼 몸을 던져 넘어졌는데, 일부러 넘어지는 것이 너무 티가 나는 바람에 웃기지도 않고, 비호감인 인상만 남았다. 이것과 비슷하게 길은 그동안 웃기려고 너무 꾸며대는 것이 티가 났었던 것이다. 


(한예슬식 표현으로) 그런데 웬걸! 이번 <무한도전>에선 싱크로율 100% 수준으로 자연스러워보였다. 부담스럽게 ‘오버’해서 억지웃음 주는 장면이 없었다. 길은 마치 제 집 안방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태까지 <무한도전>에 초대받은 개그맨들은 바짝 긴장해서 존재감이 사라지거나, 아니면 너무 오버해서 정신 사납게 만들었었다. 길은 정말 자연스럽게 <무한도전> 멤버들과 어울렸고, 능청스럽게 웃겼다. 존재감이 미미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오버하지도 않았다.



- 길에 대한 비호감이 흔들리다 -


이번 <무한도전>에서 길은 주연급이었다. 보조 MC의 수준이 아니었다. 후반부는 완전히 길의 독무대였다. 유재석이나 박명수가 할 역할을 길이 했던 것이다. 여섯 명을 앞에 앉혀놓고 길이 상황을 주도적으로 진행했다.


이런 자리에 세울 경우 웃기거나, 최소한 자연스럽게 자기 위치를 감당해내기라도 할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다. <무한도전> 멤버들도 그렇다. 하지만 길은 전혀 당황하지도, 힘들어하지도 않고 진행을 이어나갔다.


지금까지 길에 대해 느꼈던 인상과 너무 달라서 깜짝 놀랐다. 길에 대한 비호감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길을 본이래 처음이다. 이런 느낌은.



- 유희열 2탄이 될 수 있을까? -


가수 방송인으로 최근 가장 핫한 인물은 유희열이다. 유희열이야말로 2009년에 ‘발견’된 방송인이라고 할 수 있다. 윤종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의 충격 그 이상이다. 유희열은 음악 프로그램을 최고의 토크쇼로 만들 만큼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노래가 나올 때보다 유희열이 말할 때 더 화면에 집중될 정도다.


가수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주체적으로 웃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보통은 리얼 버라이어티라는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행동함으로서 웃음에 일조할 뿐이다. 반면에 윤종신이나 유희열은 자신의 토크 능력으로 웃긴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길도 가수 출신이다. 그동안은 실망스런 모습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이번 <무한도전>에서는 전혀 의외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것이 길의 진면목일까, 아니면 단지 우연일 뿐이었던 것일까?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앞으로 지켜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건 이번 <무한도전>에서 길은 역대 초대 인턴 중 가장 성공적인 진행능력을 선보였다는 점이다. 이것이 길의 진정한 능력이라면 길은 2009년에 유희열에 이은 성공담을 써내려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웃긴다고 다가 아니다. 요즘엔 웃기는 능력보다 자연스러워보이면서 정이 가는 느낌이 더 중요하다. 이래야 많은 시청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사실 개그는 좀 못해도 된다. 길의 경우 자연스러운 건 됐지만 아직 정이 가지는 않는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느끼는 것 같은 ‘비호감의 이미지’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지가, 길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