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드라마 영상 칼럼

1박2일 이수근의 눈물과 함께 승천하나

 

<1박2일>이 시골에서 한국인의 마음을 울렸다. 아기자기한 잔재미를 훨씬 넘어서 심장을 울린 것이다. 연예인이 시골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는다는 설정 자체는 그리 새롭지 않다. 도식적으로 흘러 별다른 감흥이 없거나, 가식적으로 흘러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는 진부한 포맷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진솔한 감동을 이끌어내는 것이 <1박2일>이라는 프로그램의 힘이고, 그 출연자들의 힘이다. 이러니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1박2일>의 성취는 경쟁 프로그램들과 비교되면 더욱 빛난다. 예능의 전쟁터라는 일요일 저녁 시간대. 어떤 곳에선 당대 최고의 톱스타를 초청했고, 어떤 곳에선 집권 여당 최고 실세를 초청하는가 하면, 실제 연인에게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했다. 화제성은 이쪽이 훨씬 강하다. <1박2일>은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길로 갔지만, 오히려 누구보다도 눈부신 성취를 이루어냈다.


단지 웃기고, 1시간 동안 시간을 죽일 수 있게 하는 것 이상의 성취. <1박2일>은 감동과 여운을 남겼다.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시청자도 많다. 관련 기사에서 아래의 댓글을 보는 순간 내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1박2일 보면서 한쪽 눈에 눈물이(한쪽은 실명) 저도 모르게 흘러내리고 코에는 콧물이’


 ‘진정성이라는 거 이런 거 아닐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 향수에 접속하다 -

 

<1박2일>에서 보여준 시골 고향의 모습이 한국인 모두가 직접 경험한 기억은 물론 아니다. 하지만 그런 광경과 느낌은 한국인의 유전자에 공통적으로 박혀있는 아스라한 무의식적 추억과도 같다. 시골출신은 시골출신대로 도신출신은 도시출신대로 그런 광경에서 모종의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에 부담 없이 오락 프로그램을 보던 한국인들이 뜻하지 않게 그 향수에 접속했다. 이것은 진솔하고 인간적인 감동을 이끌어냈다. 사람의 머리가 아닌 심장 깊숙한 데에 위치한 어떤 곳이 <1박2일>을 통해 열렸다. 여기는 바쁜 사회생활을 하던 중에는 닫혀 있는 곳이다. 여기가 내내 닫혀있기만 하면 사람은 삭막하고 메마른 삶에 지쳐가게 된다. 가끔 가다 한 번씩 열려야 하는 곳인데, 예능 프로그램이 그곳에 다다른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 주는 데 성공했다. 마음속의 우울함, 불안감, 긴장감 따위가 해소되면서 마음이 정화되는 것이 카타르시스다. 좁게는 비극을 통해 체험하는 것이지만, 꼭 비극이 아니라도 감동을 통해 이런 것을 느꼈다면 카타르시스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인간적인 정서를 톡 건드렸기 때문이다. <1박2일>은 그동안 ‘정’이라는 느낌을 쌓아왔고, 게스트 시스템도 인간적인 정서를 환기시키는 컨셉으로만 유지했다. 그렇게 축적된 신뢰와 사람냄새 나는 멤버들이, 이 뻔한 기획 뻔한 광경을 감동적인 이벤트로 승화시킨 것이다.



- 이수근의 눈물이 상징한 것 -


당연히 쇼다. 프로그램 속에서 출연자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마치 피붙이처럼 구는 것은 손발이 오그라드는 가식일 수 있다. 하지만 시청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것이 쇼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쇼인 줄 뻔히 알면서도 감동하게 만드는 힘. 그것이 프로그램의 존재감이다.


오락 프로그램으로서 재미를 주면서도 이렇게까지 해준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다. 멤버들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이별할 때 전해준 감동은 <패밀리가 떴다>에서 막판에 포옹하면서 쿨하게 헤어지는 모습에선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눈물도 멤버들이 먼저 흘리며 유도한 것이 아니라, 그 동네 분들이 먼저 흘리셨다. 그건 그만큼 멤버들이 진실이 느껴지게끔 행동했다는 얘기다. 함께 계셨던 분들이 느낀 그 정을 시청자라고 못 느꼈을 리가 없다.


<1박2일> 멤버 중에 가장 악플을 많이 받는 멤버는 이수근이다. 하지만 이수근은 이번 회에서 그가 왜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인지를 보여줬다. 눈물 맺힌 이수근의 모습은 <1박2일>과 그 멤버들이 시청자에게 주고 있는 ‘정’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샷이었다. 비록 재기발랄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정이 가는 모습. 그런 따뜻한 느낌 때문에 매순간 웃기지 못해도 결국은 용서받는 것이다.


마지막에 배경음악으로 ‘트라이 투 리멤버’를 선곡한 것도 절묘했다. 그 음악과 함께 보여준 화면은 추억이 담긴 빛바랜 사진첩을 보는 느낌을 선사했다. 절대로 쇼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 없는 진실한 정서였다.



- <1박2일> 승천하다 -


예전에 <무한도전>이 단지 웃기는 오락물을 넘어서 ‘존경’ 받는 프로그램이 됐다고 쓴 적이 있다. <무한도전>의 도전정신이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내기 때문이다.


<1박2일>은 최근 연이어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이번 ‘집으로’ 마지막 회에서 결정적으로 감동을 주면서 <1박2일>의 존재감도 다른 차원으로 승천하는 것 같다. 단지 웃기는 차원이 아닌 존중 받는 프로그램이라는 차원으로.


시청률로만 따지면 <무한도전>도, <1박2일>도, 경쟁 프로그램들을 압도하지는 못한다. <1박2일>같은 경우는 매 순간 빵빵 터뜨려주는 종류의 오락물도 못 된다. 아기자기한 잔재미도 경쟁 프로그램에 비해 밀릴 때가 많다. 비평하는 것 좋아하는 사람들이 아무리 냉소적으로 봐도 <패밀리가 떴다>가 시청률면에서 순항하는 것은 아기자기함이 있기 때문이다.


<1박2일>은 그런 시청률 수치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감을 획득해가고 있다. 감동이라는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예능 프로그램들이 모두 게스트의 화려함에 기대고 있는 분위기여서, <1박2일>의 행보가 더욱 빛난다. 작년 가을에 비난의 표적이 됐던 처지를 생각하면 그야말로 승천이라 할 만하다. 이대로 국민 오락물이 될 수 있을까?